김홍국의 정치 시평

[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11월 8일 열리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한창 열기를 내뿜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1차와 2차 TV토론에서 승기를 잡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대선 승리를 굳혀가는 양상으로 보인다.

▲ 김홍국 편집위원

거친 막말로 빈축을 사고, 과거 행적을 보여주는 동영상과 증언이 잇따라 나온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당내에서마저 후보 교체 논란이 나오는 등 위기 상황이지만,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그의 정치력도 만만치 않기에 승패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내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의 과거 음담패설을 담은 녹음파일이 폭로된 이후 클린턴이 본격적인 상승세를 탄 조사결과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부 조사에서는 클린턴이 불안한 오차범위 내 우위를 달리거나 초접전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어 승부는 여전히 팽팽한 상황이다.

최근 공개된 NBC 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WSJ) 여론조사(10월 10∼13일·1천명) 결과에 따르면 클린턴이 48%의 지지율을 기록해 37%에 그친 트럼프를 11%포인트 앞섰다.

반면 워싱턴포스트(WP)와 ABC 방송이 공개한 새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 격차가 4%포인트에 그쳤다. WP-ABC 방송의 여론조사(10월 10∼13일·740명) 결과 클린턴은 47%의 지지율로 43%를 얻은 트럼프에 4%포인트 앞섰다. 자유당의 게리 존슨과 녹색당의 질 스타인은 각각 5%, 2%를 얻었다. 오차범위를 고려할 때 두 사람은 팽팽한 지지율 경쟁으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19일 국제문제 놓고 90분간 운명의 3차 TV토론 진행

이번 대선의 분수령은 10월 19일(현지시간) 열리는 제3차 TV토론이다. 폭스뉴스의 앵커 크리스 월러스가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네바다 대학에서 90분간 진행하는 가운데 국제문제를 놓고 트럼프와 클린턴 간에 마지막 용호상박의 대결이 펼쳐질 예정이다.

진행자인 월러스는 부채와 사회보장 수급, 이민, 경제, 대법원, 외국 분쟁지대, 대통령 적합도 등 6개 주제를 내걸었다. 매 주제 당 15분씩 진행자의 질문에 답하거나 후보 상호 간 토론을 펼치는 방식으로, 북핵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두 후보의 해법과 전략이 나올 전망이다.

위기에 놓인 트럼프는 3차 토론에서 장기인 네거티브 공세를 펼칠 전망이다. 이번 TV토론이 막판 대역전의 마지막 기회이기에 트럼프로서는 클린턴에 대해 사력을 다한 공격을 예고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폭행'과 피해 여성들을 주제로 공격했던 2차 TV토론에 이어 마지막 토론에서는 클린턴의 약점을 전방위적으로 공격하는 진흙탕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클린턴을 거짓말쟁이, 사기꾼이라고 공격해온 트럼프는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 '선거 조작' 주장을 제기하는 등 거침없는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는 15일 트위터에 "사기꾼 힐러리를 당선시키기 위해 거짓되고 근거도 없는 주장, 노골적인 거짓말을 쏟아내는 미디어에 의해 선거가 조작되고 있다"며 "힐러리는 (이메일 스캔들로) 기소돼 감옥에 갔어야 한다. 그런데도 기소는커녕 현재 이 조작된 선거판에서 대선 후보로 뛰고 있다"고 맹공격을 가했다.

이어 다음날인 16일에도 트위터에 "이번 선거는 사기꾼 힐러리를 미는 부정직하고 왜곡된 언론에 의해 완전히 조작됐다. 많은 투표에서도 그렇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트럼프의 측근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비롯해 지지자들은 연일 '선거 조작'을 주장하며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뉴욕주 헴스테드의 호프스트라 대학에서 첫 TV 토론을 하기 전 방청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헴스테드=AP/뉴시스

그는 17일 위스콘신 주 그린베이에서 가진 유세에서 "워싱턴 D.C. (정가의) 오물을 걸러내야 할 때"라며 “정부 관리와 상·하원 의원의 퇴임 후 로비를 막는 강력한 규제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클린턴을 겨냥했다. 그는 이날 정부 관리가 공직을 떠나고 5년 동안 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방안을 재도입해야 한다며,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윤리 개혁안을 제시했다.

그는 또 관료들이 퇴임 후 규제 관련 분야의 컨설턴트나 고문을 맡지 못하도록 로비스트의 개념을 확장하는 일도 필요하다며, 외국인 로비스트가 미국 대선에서 선거자금을 모으거나 고위 관리가 외국 정부를 대신해 로비하는 행위도 금지하는 선거자금 개혁안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이어 상·하원과 의회 관계자들도 의회를 벗어난 이후 5년간 정부 상대 로비를 하지 못하게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린턴-신중하게 승기 지키기, 트럼프-네거티브 대공세 예고

반면 클린턴은 반대로 승기를 굳힐 기회라는 점에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의 '음담패설 녹음파일'과 잇단 '성 추문 논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 공격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5일 '트럼프를 향한 격노에도 클린턴이 과거 문제로 입을 다물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싣고, 클린턴의 최근 행보는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메일 계정 파문에 이어 월가에 친화적인 발언이 포함된 자신의 과거 월스트리트 고액강연이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의해 공개되는 등 클린턴에 대한 비호감이 높은 것도 큰 부담이다.

클린턴은 3차 토론에서 국무장관과 상원의원의 경험을 강조하며, 국제문제와 전 세계 외교에 대한 식견과 통찰력을 보임으로써 트럼프의 공세를 무디게 할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이는 클린턴이 대선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미국의 의회 전문지 <더 힐>에 따르면 발행 부수를 기준으로 한 미국 100대 언론매체 가운데 지금까지 클린턴을 지지한 매체는 43개에 달하는 반면 트럼프를 지지한 매체는 하나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클린턴을 지지한 대표적인 매체로는 NYT와 WP,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 보스턴 글로브가 꼽힌다. 2008년과 2012년 대선 때 모두 공화당 후보를 밀었다가 이번에 클린턴 지지로 돌아선 매체는 댈러스 모닝 뉴스, 애리조나 리퍼블릭, 샌디에이고 유니언-트리뷴, 콜럼버스 디스패치, 오마하 월드-헤럴드, 신시내티 인콰이어러 등이다.

역대 공화당 후보가 100대 매체로부터 한 곳의 지지도 받지 못한 것은 미 대선 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2012년,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존 매케인(애리조나) 상원의원은 당시 35개, 22개 매체의 지지를 각각 확보했다.

민주당 소속 오바마 대통령은 롬니와 싸운 2012년 대선에선 43개, 매케인과 맞붙은 2008년 대선에서는 50개 매체의 지지를 각각 얻었다.

미국 언론인들이 클린턴에게 낸 정치자금 역시 트럼프에 비해 압도적인 비율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비영리 저널리즘 단체인 공공청렴센터(Center for Public Integrity) 공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 1일부터 올해 8월 30일 사이 미국 언론인은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 후보에게 39만6천 달러(약 4억5천164만원)를 정치자금으로 냈다. 이 중 96%인 38만2천 달러(4억3천567만원)가 클린턴에게 집중된 반면 트럼프에게 간 언론인 정치자금은 고작 4%인 1만4천 달러(1천597만원)에 불과했다.

클린턴에게 돈을 낸 언론인은 약 430명, 트럼프에게 기부한 이는 50명이다. 클린턴을 사실상 지지한 언론인이 트럼프보다 8배나 많은 것으로, 클린턴이 미국 지성사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개표 순간까지 알 수 없는 치열한 접전 펼쳐질 것

▲힐러리 클린턴 미 공화당 대선후보가 지난 9일(현지시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2차 TV토론에서 발언하는 동안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뒤에 서서 말하고 있다. 세인트루이스=AP/뉴시스

문제는 대선 승리를 누가 차지할지는 마지막 개표 순간까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형식적으로 지지율로는 클린턴이 앞서고 있으나, 선거인단 제도를 취하는 미국 대선의 특성 상 경합주에서 어느 정도의 승리를 이끌어내느냐가 최종 승리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갈수록 쇠락하는 삶과 이민자들의 약진에 분노한 백인들의 감정을 자극해온 트럼프의 기세는 좀체 꺾이지 않고 있다.

실제 미국정치에 정통한 재미 시민참여센터(KACE)의 김동석 상임이사는 최근 대담에서 제2차 TV토론과 관련, "트럼프가 상당히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생각보다는 선방했다. 특히 토론 중 트럼프가 클린턴에게 ‘내가 대통령 되면 너 감옥 보낼거야’ 라는 발언은 어떻게 대통령 후보가 저런 말을 할 수 있냐며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트럼프와 소통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통쾌한 발언"이라고 평가하며, 트럼프의 향후 행보를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김 이사는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해 보려면 경합주,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에서 기존의 공화당이 아니라 트럼프를 지지하는 중하층 백인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를 관찰해야 한다"며 "선거에서 이기는 것을 목표로 봤을 때 트럼프는 지지자들을 이끌어내기 위해 나름의 적절한 표현을 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2차 TV토론은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정확한 진단이다.

과연 클린턴이 그동안 잡아온 승기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트럼프가 분노한 백인과 중산층의 마음을 사 대역전극을 이룰 것인가? 누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과 남북관계까지 큰 영향을 받기에 치밀하고 차분한 분석과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불과 20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의 향배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때, 불필요한 정쟁과 다툼을 지양하고 국제사회의 지정학적 변화에 맞설 사회적 역량을 키울 때이기도 하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사회부·경제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정치학)로 YTN 등 보도 및 종편 TV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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