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임태형 대기자] 우리는 지금 기부, 자선, 나눔, 사회공헌과 같은 단어에 충분히 익숙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그만큼 삶의 여유가 생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높아진 소득 평균치의 이면에 빈부격차가 있고 상대적 빈곤층이 존재한다는 것 때문에 가진 자의 선행을 더욱 강조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임태형 대기자

사회공헌은 무척이나 딱딱한 어감을 가진 듯하다. 그래서 기업이나 공공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이라는 단어는 어색하지 않으며 개인은 자선이라는 단어가 왠지 어울린다.

그런데 최근에는 ‘나눔’이라는 단어가 공공과 기업, 민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용 언어의 변화는 그 나라의 당시 문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한데,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새삼스럽게 나눔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보면 그 등장의 이유를 수긍할 것 같다.

나눔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주고받는 행위’를 뜻한다. 기부와 자선이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주는 것’이고 ‘위에서 아래로 선심으로 베푸는 것’과 같은 일방향적(一方向的)인 시혜(施惠)의 의미를 가진다면, 나눔은 양방향적(兩方向的)인 ‘교환(交換)’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의 전통적인 나눔에 대해 얘기할 때 400년을 이어간 경주 최부자 가문을 대표적 사례로 든다.

최부자의 선행에 우리는 현대적인 용어로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노블리스 오블리쥬)’라고 해석도 하지만, 최부자집이 13대 400년간 지속된 이유는 바로 ‘나눔’에 있었다고 재해석을 할 수 있을 듯하다.

즉 최부자 가문이 6훈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을 보자면, 일방적 자선에 그치지 않고 자선을 통해 시민과 이해관계자의 인정을 받았고 세상 돌아가는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나눔이라는 단어에도 쌍방향의 주고받음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처럼, 나눔활동이 일방적인 활동이 되어서는 안된다.

회사 차원의 사회공헌에서, 개인의 자선에서 우리는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했다든다, 적지 않은 기부를 했다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해하고 흐뭇해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 방문객들이 조선시대 만석군 집안이었던 경주 최부자집 고택의 곳간앞에서 가문대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육훈(六訓)을 읽어보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그런데 내가 기쁜 만큼 수혜자 입장에서도 행복하고 만족스러웠을까를 생각해 보자. 혹이라도 우리는 기계적으로 내키지 않은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억지웃음을 보이며 부담스러웠던 자리가 빨리 끝나길 기다린 적은 없었는가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자.

마음은 행동을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나의 감정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상대방도 결코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눔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과 내가 줄 수 있는 것 사이에서 조정되어 주는 자와 받는 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나눔의 궁극적인 목적에 더 가까워지게 된다. 나눔의 목적은 상대방의 만족이나 행복감을 넘어 수혜자나 지역사회의 변화다.

발전적인 변화를 중시하면서 나눔의 방법도 진화해 왔다. 자원봉사에서는 핸즈온 활동이나 재능봉사, 프로보노를 통해서, 공익사업에서는 빈곤층을 자선의 대상이 아닌 고객으로 보고 그들을 위한 상품을 개발하는 BOP(Bottom Of Pyramid) 경영전략, 적정기술, CSV(Creating Shared Value, 공유가치창출)를 통해서 과거보다 더 만족도를 높이고 보다 근원적인 사회문제 해결방안을 실천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보면 나눔이 ‘충만한’ 사회라고 할 만큼 기업과 개인의 기부에다 다양한 대상과 분야를 위한 공익프로그램 등 나눔활동이 넘친다.

적지 않은 현금과 현물에다가 학생까지 포함한 수많은 자원봉사 자원이 곳곳에서 나눔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도움의 손길은 부족하다고 한다. 공공의 복지에 더해 민간이 그 빈틈을 메우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공공과 민간(기업, 개인, 학생 등)의 나눔자원을 편중이나 중복없이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여전히 나눔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하고 까탈스럽게 평가를 함으로써 나눔문화의 확산을 더디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원봉사를 하러 가면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나올 것을 요구한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당연시 여기고 전략적인 사회공헌활동이라며 순수하지 못하다고 평가절하를 하기도 한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는 음덕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하지만 서로 1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왼손이 하는 일을 어떻게 오른 손이 모르게 할 수 있을까?

선행을 하면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나눔활동에 대해 좀 더 넉넉한 마음으로 칭찬하고 크게 박수를 쳐주는 문화도 필요하다. 그래야 더 많은 사회공헌 자원이 분출되게 된다.

칭찬과 박수도 나눔이다. 자와 현미경을 갖고 나눔을 깐깐하게 평가하기 보다는 칭찬과 박수를 치면서 자신도 조금씩 동참해 나가는 것이 행복해지는 방법일 것이다.

지금까지 남의 나눔에 관중의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나눔의 그라운드에 나가 직접 달려보기를 바란다. 관중 보다는 선수로 뛸 때 재미와 보람이 더하다.

※ 임태형 대기자는 삼성사회봉사단 창설 멤버(차장)이며 KT사회공헌정보센터 소장을 역임하는 등 30년 가까이 기업 현장에서 사회공헌활동을 연구하고 실천한 CSR 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