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의 정치시평

[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지난 9일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새 선장에 선출된 이정현 대표의 행보가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총선 기간 내내 밀짚모자를 쓰고 수행원도 없이 자전거를 탄 채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 마을회관에서 잠을 자며 할아버지 할머니와 막걸리잔을 나누는 소탈한 장면, 전당대회장에서는 밀짚모자와 점퍼를 벗어던지고 일하고 싶다고 울부짖던 순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 김홍국 편집위원

그는 평당원에서 시작해 17단계의 성공 궤적을 그려내며 집권여당의 대표가 되는 입지전적 신화를 써냈다. 명문가 출신이나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시작한 정치 엘리트들이 주도하던 한국정치사에 변혁의 단초를 만들어냈다.

그는 호남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영남 주류의 새누리당에서 실무 당직자로 일해 왔다. 1958년 전남 곡성 출신으로 광주 살레시오고와 동국대 정외과를 졸업한 그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이 한창인 1985년 전남도지사 출신이었던 당시 민정당 구용상 의원의 비서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후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본부 전략기획단 단장과 당 정책기획팀장, 상근 부대변인 등 오랜 당직생활을 거치며 특유의 성실함과 전략적 사고로 주변의 신임을 받았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광주에 출마했다 낙선한 이후 당시 박근혜 대표에 의해 당 수석부대변인으로 발탁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호남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20여년간 출마해서, 20대 총선에서 전남 순천에 당선되는 것을 포함해 모두 2번 당선됐다.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거친 이정현 신임 당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이다. 친박계의 총선참패 책임론으로 격론이 벌어진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그는 계파가 아닌 독자적인 친박 후보를 자임했고, 박 대통령과의 의리를 지키며 친박계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인왕실에서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 오찬에 앞서 이정현 신임 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뉴시스

우직한 뚝심, 성실성과 진정성으로 비주류 신화를 만들어내며, 사실상 TK정당인 새누리당에서 호남 출신의 대표가 된 것은 놀라운 정치적 사건이기도 하다.

그가 당 대표 선거에서 승리한 직후 한 수락연설에서 “저는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그 노랫말처럼 모두가 등 뒤에서 비웃었지만 저는 꿈을 키워왔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섰다. 우리 사회를 거대한 벽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 꿈을 잃고 좌절하는 사람들, 제 심정은 이 분들을 태우고 거위처럼 날개를 활짝 펴서 벽을 넘겨드리고 싶다. 이 꿈이 현실이 되도록 오늘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의 삶에 가득했던 꿈을 명징하게 설명하고 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의 협력-협치 이끌어내는 것이 최선

그러나 이정현 현상이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의 선출 자체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가득한 그의 행보에 대한 친박 진영의 전략적 선택에 따라 이뤄졌다.

그 스스로 밑바닥에서 성장한 것이지만, 그의 성공에는 박 대통령과의 긴밀한 상하관계와 그의 절절한 충성심이 뒷받침이 되어 있다.

그가 야당과 협상에 나서고 보수진영의 성공을 위해 독자적인 선택을 하는 순간, 박 대통령이 그에 대한 신뢰를 거둘 것이고 그의 운신의 폭은 삽시간에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이미 2017년 대선 레이스는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사실상 출마 의사를 밝혔고, 김무성 전 대표는 이미 전국일주를 통해 대선행보를 시작했다.

대선 국면으로 급격하게 진입할 경우 그가 중심을 잡고, 다양한 계파와 이익에 기반한 정치적 행보를 조정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선거운동 기간 겪었던 수차례 위기도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는 악재다.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 대표와 김시곤 KBS 전 보도국장 간의 통화 녹음이 공개돼 논란이 됐던 것은 중요한 사건이다. 명백하게 언론에 대한 간섭이고, 압박이며, 최악의 언론통제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홍보수석의 당연한 업무라고 대응하고 있지만,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그의 행태를 비판할 것이다. 선거 막판 소위 오더(order·지시)투표인 ‘청와대의 이정현 후보 지원설’이 쟁점으로 떠올랐던 것 역시 그에게는 큰 부담이다.

당권주자 4명 중 유일한 친박계 후보로 당 대표가 된 이 의원인 만큼 당의 최우선 숙제로 꼽히는 ‘계파청산·당내화합’ 과제는 앞으로 대선 국면 내내 그를 괴롭힐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철학과 가치로 무장한 큰 정치인이라기보다는 박 대통령을 추종하면서 성장해온 현장형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누리과정 예산 대치, 불평등의 심화와 민생고, 침체에 빠진 한국경제의 위기상황, 개성공단마저 중단된 대결상황의 남북관계, 사드 배치 논란과 외교적 갈등 등 난제가 가득하다.

무능한 정부의 각종 정책, 야당과의 대화 및 갈등 국면 해소, 시민단체와 사회단체와의 협력과 조정 등 다양한 현안에서 그가 정치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 2014년 7월 30일 치러진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순천·곡성지역 이정현 당선인이 전남 곡성군 곡성읍에서 자전거를 타고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야당과의 대화나 협상을 사실상 거부하며 주요 현안마다 일방적인 독주를 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정치와 선을 긋고, 야당과 매 사안마다 협치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300석 중 129석에 불과한 새누리당의 의석으로는 매 현안마다 야당과 갈등에 직면할 경우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와의 관계에서도 잘못된 사안에 대해서는 견제와 비판을 하고, 야당과의 협상을 끌어내며 협치의 관계를 만들어야만 여소야대 국면에서 성공적인 대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과 민주주의 섬기는 것이 정치인의 역사적 의무

2000년대 중반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필자와 고등어 백반을 먹는 점심시간 내내 박근혜 대통령의 장점과 미덕을 설명하고, 왜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인지를 역설하던 이정현 대표의 과거 모습이 떠오른다.

그가 자신이 섬길 대상을 박 대통령 한 사람으로 국한해온 기존의 정치행보를 반복할 경우 그에게는 매우 위험한 순간이 올 가능성이 크다.

그는 한 사람의 정치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정당인이 아니라 국민과 민주주의를 섬기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이 그 과정에 기여하게 하는 정치력을 발휘할 때 온전한 정치인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현 대표가 그 역할을 눈물을 참고 해낼 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은 다가올 것이고, 그의 존재는 역사적으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가시밭길이 될 그의 전도에 현명한 판단과 인내 가득한 열정, 그리고 행운이 가득하길 빈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사회부·경제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정치학)로 YTN 등 보도 및 종편 TV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