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의 정치시평

[이코노뉴스=김홍국 교수]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원치 아니한 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 땅에 오지 않을 수 없을 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원컨대, 우리 조선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김홍국 편집위원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여 저희들은 성스럽게 택함을 입어 가지고 글자 그대로 민족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우리들의 책임이 중차대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고 우리 자신이 진실로 무력한 것을 생각할 때 지와 인과 용과 모든 덕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 이러한 요소를 저희들이 간구하나이다.

이제 이로부터 국회가 성립되어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되는 모든 세계만방이 주시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며 또한 이로부터서 우리의 완전 자주독립이 이 땅에 오며 자손만대에 빛나고 푸르른 역사를 저희들이 정하는 이 사업을 완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이 회의를 사회하시는 의장으로부터 모든 우리 의원 일동에게 건강을 주시옵고, 또한 여기서 양심의 정의와 위신을 가지고 이 업무를 완수하게 도와주시옵기를 기도하나이다.”

웬 기도문일까? 바로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의사당에 울려 퍼진 기도문구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대한민국에서 웬 국회에서의 기도냐고 의아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당시 제헌국회 임시의장에 선출된 이승만 대통령은 이윤영 의원에게 기도를 올려달라고 요청했고, 일제의 탄압과 학정에 시달리던 대한민국의 출발은 이같은 기도로 시작됐다. 당시 상황을 반영한 이례적인 국회 역사의 한 장면인 셈이다.

이 기도문에는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된 대한민국의 출발을 축하하면서, 도탄에 빠져 고통받는 민생을 구하고,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원하는 우리 민족의 염원을 담고 있다.

▲ 제헌국회의 국회의장인 이승만 박사가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헌법에 의한 통치라는 민주공화정의 이념을 기초로 한 제헌 헌법에 서명한 뒤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뉴시스=월드피스자유연합 제공

국회의원들이 양심의 정의와 위신을 갖고, 민생수호 자주독립 남북통일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한 것을 다짐하고 있다.

20대 국회, '민생수호 자주독립 남북통일 세계평화' '소통-협치' 이뤄야

20대 국회가 개원했다. 제헌국회로부터 68년에 걸쳐 숱한 굴곡과 좌절, 성취를 이루면서 19대의 국회를 보내고, 대망의 20대 국회가 문을 연 것이다. 20대 국회는 어느 때보다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정부의 실패와 정당의 행태에 실망한 민심이 부여한 여소야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한국정치는 소통과 협치가 시험대에 놓이게 됐다. 더불어 제헌국회가 제시한 민생수호 자주독립 남북통일 세계평화는 여전한 대한민국의 과제다.

여소야대 국회 앞에는 역대 어느 국회 못지않은 무거운 사명이 놓여 있다. 우리 사회는 빈부격차와 불평등, 세대, 지역, 이념, 노사 등 각종 갈등에 직면해 있고, 대외적 안보위기와 경제불안이 심화되는 위기 국면에 놓여 있다.

국회는 갈등적 이해관계를 관리하고 조정해야 하는 정치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국민의 대의기구로서의 위상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입법부를 무시하는 극단적인 대통령제의 폐해와 행정부의 독선과 무능이 주 원인이기는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실천하지 못한 국회의 책임도 이에 못지않다.

20대 국회는 21세기에 들어선 한국사회의 갈등과 민생을 위협하는 현안들에 맞서 입법과 정책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 제도적인 측면에서 입법부와 국민의 대의기구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그동안 제왕적 대통령제로 인해 왜곡된 한국정치의 제도적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정당의 역할을 존중하더라도 당론에 매몰되는 현재의 정당 관행을 개선하고, 국회의원들이 헌법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하도록 제도 개선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국민을 위하고 섬기는 봉사라는 목적에 걸맞게 과도한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한 행사와 독단을 견제하고 감시하면서도, 21세기의 급격한 변화를 주도하는 입법과 정책 생산 기능을 갖춰야 할 것이다.

▲ 정세균 국회의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43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상임·상설특별위원장 선거 투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정세균 신임 국회의장은 지난 9일 취임 연설을 통해 “첫째,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국회를 만들겠다. 국회는 3부 중에서 '민주적 정통성'이 가장 높은 대의기구다.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핵심적 대의기구로서 국회의 위상과 역할을 확립하고 3권분립의 헌법정신을 구현해 나가겠다. 이제 국회도 '책임정부' 이상으로 ‘책임의회’를 지향해야 한다. 단순히 견제하고 감시만 하는 역할에서 머무르지 않고, 국정의 당당한 주체로서 부여된 권한을 적극 행사하되 그에 따른 책임도 함께 지는 협치의 모델을 정립해 나가겠다.

둘째,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국회를 만들겠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대한민국은 더 이상 기회와 가능성의 나라라고 확신하기 어렵다. 평화의 위기, 양극화 위기, 경쟁력 위기, 인구절벽의 위기 앞에서 정말 이대로 계속가도 괜찮은 것인지 많은 국민들께서 걱정하고 또 불안해하고 계신다.

국회가 명실상부한 책임정치의 주체로서 당면한 경제위기, 앞으로의 구조적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여 위기극복에 앞장서도록 하겠다. 선진국 의회 모델을 잘 분석하여 우리 국회도 국가의 중장기 전략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를 만들겠다. 지금까지 국회는 갈등의 조정자가 아니라 조장자라는 여론의 질타를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의회는 국민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사와 이해를 수렴하여,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이를 국민의사로 결집해내는 공간이다. 때로는 이 과정에서 정당 간 경쟁과 갈등이 격화돼 긍정적 가치보다는 부정적 현상이 부각되는 측면도 있었다. 국회의장으로서 유능한 갈등 관리와 사회통합의 촉매 역할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에게 짐이 아닌 ‘힘’이 되는 국회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의 실천을 기대한다.

정세균 의장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 약속 지켜주길

정 의장의 제안처럼 29년째 되는 87체제의 산물인 현재의 5년 단임 대통령제에 대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노력도 20대 국회가 해야 할 시급한 과제이다.

대통령에 집중된 과도한 권력의 배분, 레임덕의 일상화와 독단적이고 무책임한 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 여야의 대립과 갈등 등을 다당제를 통해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법적 개선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행 소선구제의 폐해를 극복하고, 지역과 세대간 갈등을 줄이려는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대 국회 임기 초에 여야 합의에 의한 개헌 특위 구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제도적 보완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애초부터 개혁은 기대하기 어려운 연목구어에 불과할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주도할 20대 국회는 실질적인 제도적 혁신에 앞장섬으로써 정치가 주인인 국민을 섬기는 제대로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개혁에 나서야 할 것이다. 20대 국회가 제 일을 해내는 성공적인 국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사회부·경제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정치학)로 YTN 등 보도 및 종편 TV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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