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의 정치시평

[이코노뉴스=김홍국 교수] 4·13 총선 결과 나타난 여소야대 국면으로 인해 ‘협치’(協治)가 주목을 받고 있다.

‘협치’는 행정 용어인 영어 단어 ‘거버넌스’(Governance)를 번역한 것으로, 정부가 여야 등 정치권 및 시민사회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 관계자와 함께 소통하고 협력해 정책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 김홍국 편집위원

협치는 국제적 협치, 국가적 협치, 지역적 협치, 지방적 협치 등 다양한 차원과 수준에서 각각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 국가 중심의 협치, 시장 중심의 협치, 시민사회 중심의 협치 등의 차원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정치 분야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합의를 통해 협력하는 정치라는 형식적인 의미에서부터 연립정부나 거국내각 등 연정을 포함한 여야 공동정권을 뜻하는 정치적 의미까지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총선 결과 여당인 새누리당과 여당 성향의 무소속을 합칠 경우 129석에 불과,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당과 야당 성향의 무소속의 합인 171석에 42석이 미달한다.

여당이 자력으로는 법률안 통과를 포함한 어떤 일도 쉽게 해낼 수 없는 상황에서 ‘협치’는 국정 운영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주목받고 있다.

상호 존중과 협상, 국민 존중의 정치가 해법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민생 고통이 극심해지고, 경제와 안보 분야의 위기로 미래를 알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든 상황이다.

20대 국회는 노동개혁 등 4대 구조개혁 법안 처리, 기업 구조조정과 재원 마련, 20대 국회에 대한 원(院) 구성 협상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20대 국회는 3당 체제에서 야당이 제1당이고, 여당은 제2당에 그치고 있다. 3당 모두 어느 당의 영향력도 절대적일 수 없기 때문에, 정상적인 국회 운영을 위해서는 협치가 필수적인 덕목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후 청와대 접견실에서 3당 원내대표·정책위의장과 회동,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의장, 박지원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 박 대통령,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정책위의장,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 /뉴시스

협치는 여당과 야당의 정치적인 협력을 필요로 한다.

협치의 대표적인 사례는 프랑스의 코아비타시옹이다. 이는 원래 결혼하지 않은 남녀의 '동거'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정치 분야에서는 좌ㆍ우파가 대통령과 총리를 나눠 맡아 국정을 함께 수행하는 좌우 동거정부를 지칭한다.

프랑스와 같은 이원집정부제 국가에서 가능한 정부 형태로, 직선 대통령이 있지만 내각은 의회 다수당이 구성토록 한 제5공화국 헌법에 따라 가능해졌다.

여당이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 획득에 실패해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될 경우 의회 다수당에서 총리 및 행정부 구성을 맡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에서는 모두 세 차례의 코아비타시옹이 발생했다. 1986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총리, 1993년 미테랑과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 사이에 이뤄진 코아비타시옹에 이어, 1997년 총선에서 사회당을 주축으로 한 좌파 연합이 다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코아비타시옹을 이뤘다.

미테랑 대통령은 특히 1986년 패배한 총선으로 생긴 초유의 여소야대 상황에서 자신의 사임을 요구하는 하원과 극한대립을 빚었고, 이로 인해 국정혼란이 이어졌다.

미테랑은 유권자의 의사를 존중해 하원 다수파의 수장을 총리로 임명한 뒤 조각권과 실질적 국정 운영권을 부여하며 여야 공존을 수용했다. 이에 따라 극한으로 치닫던 국정 혼란이 진정됐고, 미테랑은 이를 새로운 이미지 변모의 기회로 삼아 2년 뒤인 88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지난해 2월 23일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인 고(故) 박영옥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김 전 총리를 위로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한국에서 성공한 협치는 DJP 연합이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DJ)과 김종필 총리(JP)가 연합해 이룬 연립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국정 운영의 안정적 기반을 만들고 다양한 제도와 법규를 만들어냈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 보수진영 측에서는 이를 권력 나눠먹기로 해석하지만, 이 기간 민주주의에 근거한 다양한 사회적 틀과 콘텐츠가 형성된 것은 연정과 협치의 힘이었다.

DJP 연합은 200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 문제로 파탄에 이르게 되지만, 외환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다양한 사회경제적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협치의 성공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필자는 해석한다.

미국에서도 이같은 사례가 발생하곤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3년 자신의 2기 국방장관으로 공화당 소속인 척 헤이글 상원의원을 임명했다. 헤이글은 베트남전에 참전해 부상을 입기도 했으며, 참전 과정에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대표적인 반전 운동가로 활동하는 등 미국내에서 신망이 두터운 인물이었다.

이슬람국가(IS) 격퇴 문제와 에볼라 대책 등을 놓고 결국 오바마와 불화를 일으킨 끝에 사임했지만, 2년 동안 국방장관으로서 높은 업무 역량을 평가받았다.

코아비타시옹, DJP연합 등을 타산지석 삼아야

2016년 한국정치는 여소야대 국면이 도래하면서 많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기존의 국정 운영 스타일을 바꿔 야당을 존중하고 협치에 나선다면 위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제도와 역사의 차이가 있지만, 협치정신이 발휘된 프랑스의 코아비타시옹, 한국의 DJP연합, 미국의 상대 정당 인재 기용 등의 사례는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대통령은 향후 정치에서 수직적 당청 관계에 집착해 집권당을 거수기로 간주하고, 야당에 대해 발목을 잡는 적대세력으로 보고 비판하던 과거에서 탈피해야 한다.

과거 방식을 고수할 경우 끊임없는 마찰과 대립, 충돌에 따른 국정 대혼란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5.18광주민주화운동 36주기를 맞아 ‘님을 위한 행진곡’의 5.18기념곡 제정과 제창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협치의 가능성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같은 마찰과 대립을 벗어나 협상과 협력의 정신을 발휘해야 국정의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다. 대통령과 정부, 여·야당이 서로 양보와 협력의 정신을 발휘해 협치의 틀을 만들어내길 기원한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사회부·경제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정치학)로 YTN 등 보도 및 종편 TV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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