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전 세계에서 호전적인 국가범죄를 저지르는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다.

▲ 김홍국 편집위원

타국을 침략하고, 주민을 살상하며, 여성을 성노리개로 짓밟고, 글자까지 빼앗는 만행을 하는 나라는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식민지를 경영했던 열강 국가의 그런 탐욕스럽고 야만스러운 전근대적 행태는 역사를 통해 지탄받아왔고, 특히 1945년 유엔 등 국제기구가 출범한 후에는 그런 호전적이고 침략적인 제국주의나 군국주의적 행태는 비판과 질타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국제관습법과 일정한 국제조약에 의해 규정되는 전쟁법 위반행위인 전쟁범죄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는 끔찍한 범죄로 평가된다.

국제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째, 반평화범죄로 침략전쟁을 준비하거나 개시하는 경우, 둘째, 점령지역 민간인 거주민에 대한 살인, 부당한 처우, 추방을 포함한 전쟁범죄, 셋째, 반인도범죄로 전쟁 전이나 전쟁 중에 일체의 민간인 거주민에 대한 정치적, 인종적, 종교적 박해와 집단살해 등을 주요 전쟁범죄로 분류하고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국제사회는 범행장소가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은 주요 주축국 전범들을 재판하는 국제군사재판소를 마련하기 위한 런던 협정에 조인하면서 전쟁범죄 처벌에 나서기 시작했다.

런던협정 헌장은 개인의 책임과 관련해 반평화범죄, 전쟁범죄, 반인도범죄 등 3가지 범주의 범죄를 열거한 뒤 △국가원수 혹은 정부관리라는 피고인의 지위가 책임을 면제하거나 처벌을 경감시키지 못하며, △정부의 명령을 받아 행동했다 해도 피고인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않으나 형벌의 경감사유가 될 수 있고, △재판소는 집단에 대하여 범죄성이 있었다고 선언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로써 협정 조인국의 법원은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었다는 이유로도 해당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재판에 나서게 됐고, 국제사회는 1945년 10월 18일 24명의 나치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베를린에서의 재판과 이어진 뉘른베르크에서의 재판을 포함해 다수의 전쟁범죄 재판에서 범죄행위를 단죄해왔다.

전쟁범죄 불구 반성 참회 않는 일본, 역사를 돌아보라

전쟁범죄를 저지르고도 아직까지도 진정한 반성과 참회를 하지 않는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이웃나라 일본이다.

▲ 옛 일본군 군복을 입은 남성들이 2차 세계대전 전사자들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 과거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를 들고 일본 도쿄의 야스쿠니(靖國) 신사에서 행진을 벌이고 있다.【도쿄=AP/뉴시스 자료사진】

제국주의 일본이 아시아에서 저지른 끔찍한 전쟁범죄는 난징 대학살, 100인 참수 경쟁,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라하 대학살, 알렉산드라 병원 대학살, 숙칭 대학살, 바탄 죽음의 행진, 마닐라 대학살, 731 부대, 516 부대, 100 부대, 1855 부대, 2646 부대, 8604 부대, 9420 부대, 1644 부대, 죽음의 철도, 산다칸 죽음의 행진, 카이밍 세균 무기 공격, 창더 화학 무기 공격, 산둥 학살, 삼광 작전, 평정산 사건, 웨이크 섬 대학살, 관동 대학살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그 선두에는 늘 ‘욱일기’(Rising Sun Flag , 旭日旗)가 있었다. 욱일기는 독일 나치당의 당기였던 하켄크로이츠와 함께 일본 제국주의가 군기로 사용된 뒤 현재도 일본 자위대의 군기로 사용되고 있는 전범기다.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는 일본의 국기인 일장기에 16줄기의 햇살이 도안된 모양을 하고 있다. 붉은 태양 주위에 16줄기의 햇살이 퍼져나가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햇살 줄기의 수는 4개, 8개, 12개, 24개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욱일기는 일본이 군국주의를 강화하던 187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1870년 16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문양의 욱일기가 일본 제국주의 육군의 군기로 공식 채택됐으며, 1889년에는 해군도 군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40년대 태평양전쟁 당시에는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면서 ‘대동아기’(大東亞旗)로 부르기도 했다.

독일 나치의 갈고리십자가인 ‘하켄크로이츠’(Hakenkreuz)의 경우 욱일기와 같은 전범기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정부는 하켄크로이츠의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했다.

반면 일본은 욱일기를 종전 이후 잠시 사용하지 않다가, 1952년 해상자위대와 육상자위대를 창설하면서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해상자위대는 군국주의의 깃발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육상자위대의 깃발은 줄기 수만 8줄기로 바뀌었을 뿐이다.

전범기 욱일기에 대한 세계인의 분노, 이성을 회복해야

일본 내에서는 욱일기를 전범기로 인식하지 못하며, 규제 없이 상품의 로고, 응원기, 대중문화 곳곳에서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등 시민단체가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 국제관함식 참석 일본 군함의 전범기(욱일기) 사용 중지 및 일본제국 침략전쟁, '위안부' 피해, 강제징용 피해 등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뉴시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인식과는 달리 한국과 중국에서는 욱일기를 전범기이며,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영미권을 비롯한 서구권에서는 ‘아시안 홀로코스트’(Asian Holocaust)란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일본군의 전쟁범죄는 잔인하고 끔찍했다.

한 영국인 참전 군인은 당시 상황에 대해 “미얀마 정글에서 있었던 행진은 죽음의 행진이었다. 다리 건설에 동원되기 위해 현장으로 이동하던 중 한 일본인 장교는 곧 있을 검술대회 연습을 위해 포로 몇 명을 모았다. 키가 작았던 그는 영국군 포로들에게 우월감을 표시하기 위해 큰 나무 상자 위에 올라섰다. 그리곤 포로들의 목을 베었고 매우 흡족해 했다. 다리 건설에 투입되기 전에 이미 수많은 나의 전우들이 재미로 혹은 아무런 이유 없이 살해되었다”라고 회고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일본군과 경찰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고문을 당했고, 성노예로 수탈당한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슬픔과 분노를 반영하듯 매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는 1992년 시작되어 2018년 10월2일 현재 세계사에 유례 없을 정도인 27년 동안 1354회째 열리고 있을 정도다.

욱일기에 대한 아시아인들의 거부감은 매우 크고 강렬하다. 2013년 7월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일전 경기에서 관중석에 등장한 욱일기로 인해 파문이 일었고, 욱일기가 사용되는 각종 행사나 책, 잡지 등에 대해서는 불매운동이나 폐기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는 욱일기가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침략, 수탈의 주체인 일본 군부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북한,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와 동남아시아 등의 일본제국주의 및 태평양 전쟁 피해 국가에서는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으로서 욱일기를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정부, 욱일기 내리고 국제사회 평화 여망에 부응해야

제주도 국제관함식에 초청받은 일본 해상자위대 군함의 욱일기 게양 문제가 현안으로 부상하면서 한일간 외교갈등이 일고 있다.

▲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열린 지난 5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비를 막기 위한 우비가 씌워져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일본은 ‘자국 국기와 태극기만 달아달라’는 우리 해군과 외교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전범기인 욱일기 게양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여러 경로를 통해 밝히고 있다.

일본은 “욱일기는 자위대 함기이고, 함기 게양은 일본 국내 법령상 의무”라며 우리 요구를 ‘예의 없는 행위’라고 폄훼하는 적반하장식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우리 영토인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끔찍한 전쟁범죄 사실을 부정하는 비정상국가 일본의 모습이 욱일기 사태에서 다시금 세계인들의 분노를 촉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 해군은 일본 해상자위대에 욱일기를 사용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고,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1일 “일본은 욱일기가 한국인들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섬세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외교적 교섭이 진행되고 있다.

분노한 국민감정을 고려해 정치권에서는 일본의 관함식 참가를 불허하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2일 국내에서 욱일기 등 일본 제국주의 상징물의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형법과 영해 및 접속수역법, 항공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욱일기 파문은 확산일로다.

관함식은 주최국의 입장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국제관례다. 일본 정부는 한국 국민의 정서와 감정을 고려해 욱일기를 게양해서는 안될 것이다.

욱일기는 1870년 일본 육군의 첫 사용후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아시아 각국을 침략할 때 전면에 내건 깃발로, 일본 군국주의의 호전성과 전쟁범죄를 상징하는 전범기이다. 한국·중국 등 주변국이 욱일기 게양에 반발하는 핵심 이유다.

독일이 형법 제86조에 ‘나치를 상징하는 깃발, 휘장, 제복, 슬로건을 배포하거나 사용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한다’며, 하켄크로이츠 등의 사용을 금지한 것과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반인류적, 반인도주의적 처사다.

국제 사회는 욱일기를 고집하는 자위대와 일본의 침략행위를 미화하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군국주의적 행태를 바라보며, 과거 끔찍한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우려하고 있다.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2016년 10월 23일 도쿄(東京) 네리마(練馬)구 아사카(朝霞)주둔지에서 열린 육상자위대 사열식에 참석해 오픈카를 타고 행진을 벌이고 있다. 아베 총리 뒤쪽에 한 자위대원이 자위대의 상징인 욱일기를 들고 있다. 【도쿄=AP/뉴시스 자료사진】

일본이 전쟁과 갈등을 부정하고, 평화와 번영을 원하는 정상국가이자 보통국가라면, 스스로 전범기인 욱일기를 내리고 국제사회의 여망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통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평화지향적인 일본이 될 때 세계인들은 우정과 신뢰를 나누며 일본을 친구나라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경제부 정치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로 YTN 등에서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MBA(기업경영)를 취득했고, 리더십과 협상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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