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차를 팔았다. 어느 날 아침 잠 깨는 순간 아 이제 자동차를 팔아버려야겠다 중얼거렸으니 이는 차를 팔라는 신탁이 내린 것 아니겠는가.

▲ 김미영 칼럼니스트

서울 양천구 목동 살 때는 요기서 조기 갈 때도 차를 썼다. 습관성 만행이기는 했지만 변명거리가 없지는 않은 것이 그 동네가 인구밀도가 높고 보기보다는 걷는 데 친화적이지 않았다.

그래도 장롱면허를 10년 넘게 유지했으니 친환경 의무복무는 한 것 아닐까? 첫 아이 아기 때 들쳐 안고 여기저기 다니며 ‘불쌍해서 태워줬다’는 버스기사 멘트도 들어봤고 (별 게 다 불쌍하네) 단지 안으로 들어가 달라는 소리에 폭력적으로 나오는 택시기사도 겪었다.

출장 가 없는 남편 대신 우리 세 식구 가족모임에 태워 가려고 일부러 들른 시아주버니의 눈치도 여러 번 봤다.

그림자 노동의 책무가 구체적으로 압박해오니 생태주의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었다. 요즘 방영하는 자동차 광고는 무려 독립영화계의 김혜수(?)인 김새벽이 나와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꼬맹아 나를 엄마로 만들어줘 고마워 어쩌고 하며 심금을 울리던데, 많은 여성이 차를 굴리게 되는 이유를 잘 그리고 있다.

아이들 학원 실어나르고 학교에도 실어나르고 하며 운짱 노릇을 6~7년 했다. 단지를 관통하는 중심 도로가 일방통행길인 목동은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작은 애 고등학교가 걸어가면 40분 버스 타도 갈아타고 어쩌고 해서 40분 차 타고 가면 10분 위치에 있으니 아침마다 실어 날랐다.

▲ 김새벽 '현대자동차 더 뉴 싼타페 엄마의 탄생' 영상 캡처

강남구 대치동 논술학원 뭐 대단히 좋은 줄 알고 두 아이 합쳐 2~3년을 방학 때마다 그 아수라장, 유명 논술학원 부근 도로의 아수라장에 일익을 담당했다. (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논술 배운 아이가 대학을 더 잘 갔다.) 그러면서 차와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렀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어 미적대다가도 아 오늘 지방강의 가는 날이지 하면 가뿐하게 일어나졌다. 레드 제플린이나 국카스텐 틀고 신나게 달리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한창 때는 중부고속도로를 시속 140~150km에 굴러먹었다. 차가 살짝 뜨면서 날아가는 느낌이라니.

비 퍼 붓는 속에 대형 트럭과 나란히 질주하기도 하고(지붕 뚫고 하이킥 엔딩 분위기 작렬!) 여성 운전자가 끼어든 것이 못 마땅했던지 따라 붙어서 피우던 담배를 (강조컨대 불 붙은 채) 내 쪽으로 던지는 남성 운전자를 가볍게 따돌리며 메롱 하기도 했다.

시어머니는 내가 자신감 넘치게 운전한다 하시고 조카는 외숙모 차를 타니 일산에서 마포구 합정동까지 20분 만에 왔다고 감탄하고...그게 다 칭찬인 줄 알았다. 일 년에 한 두번은 과속 범칙금을 냈다.

정유정의 <7년의 밤>을 보면 나쁜 놈 대마왕 의사 아빠는 과속을 일삼아 앞의 차들을 다 빗자루로 쓸어버리고 다닌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걸 보며 내 질주 본능이 약간 사이코스러운 것인가 자문하게 되었다. 좀 점잖게 다닐 나이가 되었지 싶기도 하고.

서대문구로 이사 오면서 차는 찬밥 신세가 되었다. 이 동네는 대중교통이 불편하지만(아 그렇다고 무슨 경전철입네 뭐네에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요) 걷는 데 덜 적대적인 환경이다. 주택이 상점으로 개조되어 어수선하지만 그럭저럭 동네 마실 다니는 기분이 든다.

우리 동네 뿐 아니라 서울 같은 대도시는 20분 정도 걷는 게 겁나지 않으면 그리고 아이 포함, 무거운 짐이 없으면 차 없이 다닐 만 하다. 대중교통이 지하철에 버스에 마을버스에 아주 정성껏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차 타고 두어 시간 가야 목장 하나 나오고 또 한 동안 가야 민가 하나 나오고 그러는 나라가 아니다.

▲ 서울 관악구 관악산 등산로 입구에서 등산객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걷기를 즐기는 지금도 4차선 넘는 도로에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곁을 걷는 것까지 좋아하진 않는다. 장딴지 근육이 펌프질을 잘 하면 뭐하나 폐가 말라가는데. 크게 우회하는 게 답이다. 서울에는 산과 강이 많다. 안산, 인왕산, 북한산 둘레길, 청와대 앞길, 북악산 등으로 돌아서 다닌다. 물론 시간 많은 은퇴자 얘기.

차는 두어 달에 한 번 쓸까 말까. 김장 김치 얻으러 다닐 때, 서오능이나 헌능 근처 화원에 꽃 사러 갈 때, 제사 장 보러 다닐 때. 몇 달 전 후배들 태우고 정부세종청사를 갔는데 운전을 이렇게 잘 하면서 왜 차를 안 갖고 다니냐 난리더라. (너희들 기사양반 노릇하기 싫어 그런다!)

세워 놓으니 보험료도 줄고 좋네 했더니 탈이 잦다. 간만에 차 좀 써야겠다 하면 시동이 안 걸린다. 배터리 방전. 서너번 같은 일을 겪다가 하이패스 카드 꽂고 전원을 켜놔서 그런 것을 삼년 만에 깨달았다. 그것까지 꺼놓고 방전 방지용 주행을 한 두 시간 하고 한 시름 놓은 기분이었는데 지난 3월에는 도로 복판에서 시동이 꺼져 다시 안 걸리는 소동이.

▲ 학원들이 밀집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에서 교통 도우미로 나선 모범운전자가 교통 흐름을 관리하고 있다./(사진=강남구 제공)

마스크는 썼지만 그게 웬 개쪽팔림인가. 점화코일, 점화 플러그 등을 교환하고 엔진 오일까지 가니 수십만원 깨졌다. 수리기사가 뭐라 뭐라 전문 용어를 말하는데 내 이해하기로 차를 하도 안 쓰니 엔진으로 신호를 연결하는 부분이 무뎌지고 매번 새롭게 가동되느라 힘이 들어서 탈났다, 이런 소리인 듯.

코로나 사태가 환경파괴 탓이란다. 다 아는 얘기지만 새삼 환경문제를 돌아보게 되지 않는가. 차 처분 결정에 마지막 한 방울을 들이붓는 효과.

차를 저렇게 마냥 세워 두는 것은 차의 본질에 맞지 않는 일이다. 세워 두어 탈난다고 일부러 차 쓸 일을 만드는 것은 웃기는 짓이다. 결론은? 차를 팔아버리자. 정 아쉬우면 차차 봐서 전기차 한 대 장만하든가.

그런데...

허전하고 슬픈 마음이 드는 것은 무슨 조화? 그 심정을 토로하니 칠 팔년 위 연배인 분이 차 끌려가는 뒷모습 봤냐고, 눈물 난다고 하더라. 나만의 감상이 아닌 듯.

새로 시작한 예능 프로 <신박한 정리>를 보니 신애라는 필요냐 욕구냐 라는 양자택일을 외치며 마구마구 정리하고 버리고 하던데, 타인에게 (쇼가 아니라 진짜로)그러면 그것은 폭거다.

필요한 물건만 소유한다고? 추억은 사진으로 남기라고? 이 무슨 원시인 회귀 멘트인고. 인간이 인간인 것은 잉여/과잉 덕분이다. 그래서 가성비를 칼같이 따지다가도 자기에게 고급 초콜릿을 상으로 주고, 수입이 줄어 이 집 저 집 전전해도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 못하는 소공녀들이 있는 것이다.

대의나 돈이나 취향이나 어느 모로 보나 (내게) 옳지 않은 자동차 소유를 청산했다. 걷는 자라는 나의 자아상에 어울리지 않는 차, 쓸 일 적어 세워 두기 일쑤이니 필요하다 할 수 없는 차, 그런 차를 처분했다.

후회하진 않지만 나는 조금 슬프다. 아침마다 아들 태우고 함께 듣던 검정치마(이미 안녕을 고했지만)와 못을 떠나 보내는 기분. 나만의 호젓한 공간이 사라졌다는 깨달음. 나의 한 시절이 저물었다는 자각. 시속 150km를 밟을 수 있는 시간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예감.

▲ 서해안고속도로 서평택IC~서평택JCT 구간에서 차량들이 시원스럽게 달리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도 애도의 물결이 일었으니, 딸내미 고등학교 동창들. 아 그럼 우리 차가 없어진 거야? 그렇게 인사도 없이? 날씬한 내 차에 기스를 낸 그들, 신촌 바닥으로 동해안 어디로 내 차를 끌고 다니며 상처 낸 그들. 그들에겐 그들대로의 추억이 있겠지.

그들과 의논이라고 했어야 했나? 나도 모르는 공유경제였군.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을 김영하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행의 이유>에서. 반려자가 뭐 그렇게 자주 죽고 없어지느냐고. 반려식물, 반려물건까지 운위하면 뭐라 할까.

내 두 번째 차(이고 아마도 내 마지막 차), 9년 동안 내 것이었던 차, 총 8만9123km를 함께 달린(10만을 기약했건만 최근의 방치로...) 내 차, 은회색 날렵한 고것에게 뒤늦은 인사를 보낸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려대, 홍익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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