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일본이 아시아 항만 권익 확보에 사활을 걸고 중국에 맞설 태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본국제협력기구(JICA)는 최근 캄보디아 최대 상업항구인 시아누크빌(Sihanoukville) 항만공사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시아누크빌은 바다를 접하는 캄보디아 유일의 국제항만으로 2011~15년 연평균 컨테이너 취급량이 13%나 늘었다고 한다.

▲ 이동준 교수

이 항만 정비에는 거액의 엔 차관이 투입됐지만, 중국계가 주식 매수에 나서 중일 간에 쟁탈전이 벌어져 왔다. 시아누크빌은 중국 주도의 광역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신실크로드)의 전략 항구다. 중국과 캄보디아는 일대일로 공동건설 협력에 관한 정부 간 합의서를 체결한 상태다.

일본 미쓰이(三井)물산은 인도 최대 기업집단 타타그룹과 공동으로 스리랑카 콜롬보항의 확장 공사 및 운영의 일괄 수주를 도모하고 있다. 두 회사가 수주를 따내면 일본국제협력은행(JBIC)과 해외교통·도시개발사업지원기구가 투융자를 할 전망이다.

콜롬보항은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에 위치한 해상 요충지로 물류 거점이다. 일본 정부가 지난 4월 스리랑카의 해양 경비를 지원하기 위해 순시선 2척을 제공하고 450억엔(약 4500억원)의 차관을 공여하기로 한 것도 어떻게든 중국의 해양 공세를 견제해 보겠다는 의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일본은 앞으로 정부개발원조(ODA) 등을 활용해 해상 수송로 연안국과의 관계를 강화할 방침이다. 일본은 이를 위해 2015년 외국군이 관여하는 사업이라도 재해 구조 등의 목적에 맞으면 ODA를 공여하기로 규제를 완화했다.

일본의 이런 움직임은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 남중국해, 인도양을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해상로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고 있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에 다름 아니다.

전후 일본은 막대한 엔 차관과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을 통해 이 해상로의 주요 거점 항구의 인프라를 정비하는 등 사실상 ‘관리’해 왔다. 이 해상로 주변이 일본이 중동에서 수입하는 원유와 천연가스, 유럽으로 가는 컨테이너의 수송로와 겹치기 때문이다.

▲ 허리펑(何立峰)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이 지난 3월 17일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 참여국에 500억 달러 넘게 투자했다고 밝히고 있다. 【베이징=AP/뉴시스 자료사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아시아와 인도양 연안국의 연계를 강화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건 것은 안정적인 해상 수송로 확보의 일환이다.

하지만 일본이 중국의 해양 공세에 전면적으로 맞서기는 현실적으로 역부족인 듯하다. 아베 총리가 최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대해 일정정도 협력 의사를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아베 총리는 6월 5일 도쿄에서 열린 제23회 ‘아시아의 미래’ 포럼 연설에서 “(일대일로는) 동서양과 그 사이의 다양한 지역을 잇는 포텐셜(잠재력)을 가진 구상”이라면서 일대일로 구상이 국제사회의 규칙에 따라 추진된다면 “협력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제사회의 규칙에 따라 추진된다면’이라는 조건 하에서만 가동되는 어중간한 협력 의사 표명인 셈이다. 해상로와 거점 항구 확보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신경전은 상당기간 지속되고 점점 가열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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