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 국악가사 이야기

[이코노뉴스=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1980년대 대학가에서 많이 불렀던 노래 중에 ‘진주난봉가’라는 것이 있었다.

▲ 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여러 가지 버전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그 내용은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노래한 것이다.

그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한 여인이 남편 없이 시집살이를 3년 동안 하고 있다. 남편이 온다는 기별이 왔으니 시어머니가 빨래를 하라고 한다. 진주 남강에 가서 빨래를 하다 보니까 남편이 말을 타고 지나간다. 집에 돌아와 사랑방에 가보니 남편이 기생첩과 희롱하고 있다. 이런 남편이 있나 하며 화가 난 며느리는 약을 먹고 목을 메달아 자살한다. 그제야 남편은 “기생 정은 삼 년이고 본댁 정은 백년인데”라고 후회하면서 사랑타령을 늘어놓는다.

경상도 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 중에 짚신 삼을 때나 베 짤 때 불렀다는 ‘쌍가락지 노래’가 있다. 다음은 경북 고령에서 채집된 가사이다.

“쌍금 쌍금 쌍가락지/호작질로 닦아내여/먼데 보니 달일레라/젙에 보니 처잘레라/ 그 처자 자는 방에/숨소리가 둘일레라/홍둘바시 오라버님/거짓말씀 말아주소/ 동남풍이 딜이 부니/풍지 떠는 소릴레라/ 죽고지라 죽고지라/밍지수건 목을 매고/ 자는 듯이 죽고지라/엄마 우리 엄마/요내 나는 죽거들랑/앞산에도 묻지 마고/뒷산에도 묻지 마고/ 연대밭에 묻어 주소/연대 꽃이 피거덜랑/날만 이기 돌아보소/눈이 오마 쓸어주고/비가 오마 덮어주소“

‘호작질’은 낙서를 하는 등의 손으로 조금씩 무엇을 하는 행위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 ‘젙에 보니’는 가까이 보니, ‘딜이 부니’는 몹시 부니, ‘밍지수건’은 명주수건, ‘날만 이기’는 날만 여겨 이다. 다만 ‘홍둘바시’가 해석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경상남도 함양에서 채집된 같은 노래의 가사에는 이 부분이 “홍당 박씨 오라반님”으로 되어 있다. 때문에 ‘홍둘바시’든 ‘홍당 박씨’든 이 부분은 사람 이름을 뜻하는 고유명사이며 동네 혹은 친척 오라버니로 볼 수 있다. 이 노래를 알기 쉽게 재구성하면 이렇게 된다.

한 처자의 결혼을 앞두고 집안에서는 쌍가락지를 꺼내 광을 내는 등 혼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흉흉한 소문이 나돈다. 이 처자가 혼자 자는 방에서 다른 사람의 숨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그 소문의 진원지는 친척 오라버니가 아니면 동네 남자(‘홍둘바시’ 혹은 ‘홍당 박씨’)다. 이 처자는 그런 소문이 치욕스러워 명주수건으로 목을 매어 자살한다. 죽음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소리의 정체는 동남풍이 몹시 불 때의 문풍지 떠는 소리였던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가사는 혼사를 앞 둔 처녀가 이상한 소문 때문에 자살했다는 이야기다.

상주 지방에서 잘 알려진 민요로 ‘상주 모심기노래’가 있다. 위의 민요와 같이 전체적으로 하나의 스토리로 짜여진 노래가 아니라 여러 종류의 노래가 분절 형식으로 모여 있는 민요이다.

그 가사 중에 “능청능청 저 비리 끝에/야속하다 우리 오빠/나도야 죽어 후생(後生)가면/우리 낭군 섬길라네”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비리’는 절벽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그렇다 해도 이 노래 가사는 생략과 비약이 심해 이 가사만으로는 도무지 해석이 불가능하다.

▲ ‘진주난봉가’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그 내용은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노래한 것이다. 사진은 매년 10월 진주에서 열리는 개천예술제에서 진주지역 명창들이 촉석루에서 ‘진주난봉가’등 민요를 부르고 있다. (사진=네이버 캡처)

여기서는 경상도 지방의 전설을 들어야 한다. 이 전설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낙동강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여자 둘이 있다가 강으로 떨어졌다. 이 둘은 시누와 올께 관계다. 그런데 남편이자 오빠인 남자가 한 여인 밖에 구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과연 누구를 구했을까. 바로 자신의 아내였다. 그러니 죽은 여자가 오빠를 원망할 수밖에 없다. 이 노래 가사는 죽은 여자가 화자(話者)가 되어 넋두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역시 여자에게는 남편이 소중하니 다음 생에 태어나면 낭군을 섬기겠다는 것으로 맺음을 하고 있다.

이런 민요들은 전문소리꾼이 부른 노래가 아니라 ‘정선 아라리’와 같이 노동 행위를 하면서 일상적으로 불렀던 노동요이거나 노동요에 가깝다. 늘 부르는 노래에 왜 이런 끔찍한 죽음의 이야기를 담았을까. 위에서 두 여자는 자살했고 한 여자는 사고로 죽었다. 왜 이런 것을 되새김질해야 했을까. 우리가 한(恨)이 많은 민족이고 시집살이가 고통스러워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노래 속의 죽음을 통해서 진짜 죽음을 길들이기 위해서다. 죽음에의 친연성(親緣性)을 통해 우리는 저 두려운 죽음을 조금이나마 극복한다. 이 민요들은 그래서 강하다.

 

※ 하응백 서도소리 진흥회 이사장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옥봉의 몽혼’(2009)등 20여 권의 편저서가 있으며 ‘창악집성’(2011)이라는 국악사설을 총망라한 국악사설 해설집을 펴내기도 했다.

2002년 ‘휴먼앤북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하 이사장은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를 취득했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민대학교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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