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한필이 칼럼니스트] 한낮의 나뭇잎들이 혀를 내밀고 늘어져 있습니다. 햇볕은 선명히 거리를 가릅니다. 하지만 열기 품은 공기는 자칫 마음도 너부러지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 7장으로 들어갑니다.<대학>이 '도가와 불가에 대응해서 유가의 형이상학적 논리체계를 제공하기 위해 편집되었다'라는 설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이 마음꼴에 대해 디테일한 묘사가 구체화 됩니다.

대학

傳文7정심수신(正心修身)

所謂修身(소위수신) 在正其心者(재정기심자)

身有所忿懥(신유소분치) 則不得其正(즉불득기정)

有所恐懼(유소공구) 則不得其正(즉불득기정)

有所好樂(유소호락) 則不得其正(즉불득기정)

有所憂患(유소우환) 則不得其正(즉불득기정)

이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이른바 자기 스스로를 닦는다는 것은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 자신에게 노여워하는 바가 있으면,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좋아하고 즐기는 바가 있으면, 걱정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극심한 경쟁, 세대간 충돌, 젠더간 마찰 등등 월급쟁이의 일상은 쉴 틈 찾기 참 어렵습니다. 하루를 살아내는 마음이란 것이 흡사 좌우로 출렁이게 하고, 수직으로 요동치게 하는 파도 거친 밤바다 같습니다.

그것이 허망한 꿈 속인줄 알았다해도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여전히 공포스럽습니다. 깨어나고 싶다가도 꿈의 바다속으로 더욱 깊히 잠기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이 온갖 요상하고 잔망스런 허상들은 너무도 생생해서 기억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서 현실속 고통으로 뜨개질 해내기도 합니다.

번뇌의 소용돌이를 일으켜 고통의 심연으로 밀어넣기도 합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 해일을 일으켜 현재를 지워버리기도 합니다. '이래가지고서 도무지 나를 가다듬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라는 회의가 거세게 밀려오기도 합니다.

이런 조화 풍경을 그려내는 화가이자 넋을 빼앗기는 허기진 도화지가 마음입니다. 고요와 평화를 원하면 원할수록 마음 속 파도는 거칠어지기만 합니다. 춤추는 너울을 잡으려 하면 할수록 뱃멀미만 점점 심해집니다.

내뱉는 혀는 술 취한 듯 어지럽고, 행동은 독에 취한 듯 비틀댑니다. 생각은  총소리에 놀란 고삐 풀린 말처럼 내달립니다. 몸과 마음 안팎이 통째로 지옥의 불구덩이가 너울대는 허허벌판에 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난리통 속에도 숨을 가다듬으며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일관되게 흐르는 가느다란 빛줄기 같은 것이 있습니다. 꿈쩍도 안하는 거대한 산 같기도 합니다.

이게 뭐지? 그래서 이제 그 가느다란 실 같은 것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불지옥을 가만히 들여다 본 것이 오늘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노여움, 두려움, 과도한 들뜸, 걱정 등이 보였겠지요.  이 네 가지는 상하좌우 치우친 대표적인 극성(極性)들로 볼 수 있겠죠. 마구 설치거나 길길이 날뛰는 이를 보면 "아, 그 사람 참 극성맞네"라고 하지요. 이 극성들은 마음에 화재를 일으키는 인화성으로 더운 날 자연발화되는 성냥갑 같습니다. 출렁이면 위험한 휘발유 같습니다.

파도치고 불바람 부는 마음 속에 가느다란 실 같기도 하고, 빛같기도 한 그것을 따라 마음의 동굴속으로 좀 더 들어가 봅니다.

가다보면 꼴을 유지하고, 균형을 잡아주는 저울(錘·추)같은 것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정(正)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정(正)이라는 글자를 써서 벽에 붙이고 모양새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꽉 짜여진 정사각형안에 십자가가 들어있는 밭전(田)자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동시에 팽글거리며 돌아가는 동그라미 원(圓)을 연상시키는 만(卍)자를 보게 되기도 합니다.

몸도 비슷합니다. 가끔 동네 헬스클럽에 가기도 합니다. 운동이라기 보다도 '오랫만에 내 몸을 우선 느껴보자'라는 생각으로 몸이 움직이는대로 놓아봅니다. 그러면 몸안에 보이지 않는 수평축, 수직축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머리와 몸통 중심을 관통해주는 선이 있습니다. 그 선 좌우로 천칭처럼 좌우를 맞춰주는 또 다른 균형선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오장육부의 제 자리를 알려주는 선들입니다.

이 몸과 마음의 수직선과 수평선을 합해 그려보면 밭전(田)자안에 꽉 찬 동그라미(왼쪽 도형)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르게 선 마음(正心)은 엔진과 원자로를 돌리는 모터를 닮았습니다.

모터가 잘 돌아가려면 우선 먼저 축의 중심이 잘 잡혀야 겠지요. 그래야 저항없이 잘 돌아서 비로소 강력한 회전력을 얻을 수 있겠지요. 그것으로 전기를 만들기도 하고, 자동차 엔진을 돌릴 수도 있겠지요.

마찬가지로 뭔가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 스스로를 더욱 성장시키고 싶다면 마음의 축을 제대로 세워야 겠지요. 그것이 다름 아닌 바른 상태(正) 아닐까 싶습니다.중심이 조금만 흔들려도 모터는 열을 받아 멈춰섭니다. 항상성의 문제는 늘 있습니다. 엔진도 정비해줘야 하고 기름칠도 해줘야 하듯이 마음도 그런 것 같습니다.

마음도 가끔 고장납니다. 그러면 그러려니 합시다. 그냥 선선히 한계를 인정하는 그 마음이 멜트 다운된 원자로를 복구하는 길 아닌가 싶습니다. 서늘하게 마음속 십자가 균형추를 다시 세워봅니다. 마음도 공냉식이라죠? 숨 한번 크게. 인 아웃. 인 아웃.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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