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개포 3단지’에 다녀왔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   

누가 이사갔다 소리 듣고 빨리 집들이하라고 조른 건 살다살다 처음이다.

따옴표를 붙힐 만큼 이 시대의 의미심장한 기표인 그 곳 혹은 그 것. 거길 구경갔다는 것은 대략 두 가지 뜻이다.

첫째, 나의 지인이 부자라는 것. 오래된 부자인지, 신생 부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지금 부자라는 것. ‘개포 아파트’ 그것은 전설의 압구정을 무려 4위로 밀어내고 반포에 이어 2위를 기록하는 서울시 강남의 ‘똘똘한’ 부동산이다.

30평 짜리가 20억원을 훌쩍 넘는단다. 으악 아파트에 금칠을 했나?

둘째, 나의 지인은 현대인이 꿈꾸는 라이프 스타일을 구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 그 아파트 광고에는 톱스타가 나오지 않는다. 당대의 대표적 스타를 기용하여 그녀의 아름다움, 그의 출세, 그녀의 취향에 얹혀 가던 것이 기존 아파트 광고였다.

요즈음 집중적으로 때려 대는 영어 이름의 (더 가 아니라 디야 병신아– 응팔의 혜리 톤으로) 그 아파트 광고는 톱모델은 고사하고 사람이 별로 안 나온다. 다만 아파트만 여러 각도로, 여기 저기, 보여준다. 입지, 커뮤니티, 호텔식 편안함이 키워드다.

이렇게 쓰니 그 아파트 광고처럼 되었는데 마음을 가라앉히고 구체적인 사연을 들어보자. 나의 큰시누는 IMF(국제통화기금) 때 망한 조흥은행에서 받은 남편 퇴직금을 종자돈 삼아 개포 아파트 15평 짜리를 일억 이천에 사두었다.

20년 동안 정책의 변화 변덕과 그에 따라 널뛰기하는 가격과 그에 따라 이래볼까 저래볼까 요변덕 부리는 새가슴을 부여안고 꿋꿋하게 우직하게 갖고 있은 결과! 초고층의 30평 아파트가 25억의 자랑스런 이름표를 달고 강림하셨다.

3년 이상 살아야 양도소득세를 덜 문다고, 살던 집 자식들에게 증여하고 두 중늙은이가 최신식 아파트에 입주했으니 갖가지 AS에 몸이 피곤하고 일가친척들과 멀리 떨어져 고립감도 상당할텐데 사기충천, 행복만발이다.

배 아픈 자의 마음의 소리: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에 대한 보상이 상당히 쎄군. 다 쓰러져 가는(?) 낡은 아파트에 일 이억을 묻어두고 20년을 살 수 있을 만큼 마음이 편안하고 그 마음 편안할 수 있게 신세가 평탄했다는 건데 말이지.

▲ 상공에서 바라본 서울의 아파트 단지 모습/뉴시스 자료사진

로또 맞은 것에 비유할 만하지만 로또에 비해 주위 사람 복통 유발력은 초강력이다. 압도적인 운의 변화는 무작위가 가장 공평하고 산뜻하다. 로또 맞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감탄하고 경탄하지 시샘하지는 않지 않는가.

못 된 놈 잘 되고 선한 사람 죽어라 죽어라 한다면 안타깝고 무정한 일이지만, 그래서 변신론도 대두되지만, 선한 순서대로 운도 좋다면, 한바퀴 돌아 그것은 못 사는 자들은 못되서 그렇게 산다는 소리로 되니 돈벼락이 내린다면 무작위, 무논리로 내리는 게 낫다. 받은 자 잘난 척 못하고 못 받은 자 자기반성 안 한다.

아파트 투자의 성공이 로또처럼 무작위는 아니어서, 상당한 확률 배팅이 가능한 것이어서, 아무리 봐도 돈 놓고 돈 먹기여서, 나도 잘 할 수 있었을지 모르는 거여서, 사촌이 산 아파트가 오르면 내 배가 아프고 내 심사가 꼬인다.

빚 무서워하지 않으면 살 수도 있었을 그 아파트, 더 버티다 팔면 더 벌 수 있었을 저 아파트, 이 아파트, 저 아파트 죽은 자식 불알 만지듯 반추하면서 뒤척이는 나날이 시작된다고나 할까.

그 아파트는 과연 (25억) 돈값을 할까? 아니, 일흔살 먹은 시누는 그 아파트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까? 가진 게 그것뿐이라면 양도세 감면 기간만 간신히 채우고 재빨리 뜨겠지만 그게 합리적이겠지만 (그런 덴 물가도 비싸다 그 근처 타워 팰리스 사는 친구 증언이다), 그렇지 않다는 가정 하에 그 아파트의 순전히 내재적인 가치를 따져 본다면? 나날이 진화하고 있는 아파트는 어디까지 가 있을까?

▲ 2016년 6월 당시 재건축 중인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 3단지 모습./뉴시스

아파트 연구자 한 명은 우리나라 아파트의 성공 비결을 단지 개념에서 찾는다. 그 돈 가지고 마당 딸린 단독주택에서 살텐데 안 그러고 아파트에 살고, 아파트에 사는 게 부유하고 세련된 것으로 된 비결이 ‘단지’ 때문이라는 것. 뚝 떨어져 나 홀로 존재하는 아파트가 비싸진 케이스가 있나? 없을 걸.

단지로 묶인 아파트 군. 그 안에 자기들만의 유치원도 있고 운동 시설도 있고 상가도 있어서 생활의 상당 부분이 자체 해결될 수 있는 배타적 마을. 그것은 보이지 않는 담장으로 둘러 막힌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이다.

자기들끼리의 공동체성과 국외자에 대한 배타성이 집약되어 나타나는 것이 소위 ‘커뮤니티’이다. 아는 동생 하나는 마포에 사는데, 초3 아들이 우리 아파트엔 왜 커뮤니티가 없냐고 커뮤니티 있는 아파트로 이사가자고 했단다.

(그는 최근 보지도 않고 아파트를 계약해 이사간다. 보러 가고 어쩌고 하는 사이 값이 오르고 그걸 예상한 주인이 매물을 거둬 들이는 일을 당해 봤다며 걍 어제 계약금 쏴주고 오늘 집 보러 간다고.)

구경 간 개포 3단지의 ‘커뮤니티’엔 각종 운동 시설이 있고 카페가 있고 도서관이 있고 아이들 독서실도 있다. 모두 널찍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인 것은 물론. (창 밖의 구경꾼을 의식하며 열심히들 공부하는 중고딩들 얼굴에 자랑이 스며 있다. 쇼윈도에 앉아 환호를 받으며 공부하는 기분일까?)

운동 시설은 골프, 수영, 피티 등을 가구당 하루 8시간 쓸 수 있단다. 시누 부부는 8시간 꼭 차게 쓰는 모양. 국외자인 나는 못 들어가니 시설이 얼마나 삐까번쩍한지는 모르겠다.

▲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내 부동산중개소 밀집지역 모습./뉴시스

또 하나의 ‘커뮤니티’엔 손님을 맞는 카페가 있어서 대모산을 바라보며 다과를 나눌 수 있는데 결재를 주민 카드로 하여 관리비에 더해 나온다고. 구경 간 우리 촌닭들은 지가 계산하겠다고 나대다가 뻘쭘했다. 우린 쏠래야 쏠 수가 없네, 좋네, 했다.

손님 오면 재울 게스트하우스도 있을 거란다. 시부모를 게스트하우스에 모시는 새댁? 자고 가는 간 큰 시부모?

입지의 똑똑함이라. 서울 끝이니 도시 경계의 미훼손 자연 경관이 있는 건 당연하다. 대모산이 바로 앞에 있고 단지 안 정원도 스케일 크게 조성했다. 겨울이라 그렇지 철 좋을 땐 좋다고 자랑이 늘어졌다. 모든 동에서 저층이 아니라면 정원을 볼 수 있게 건물을 앉혔다.

과연 현대인의 자연 열망이 읽히고 그 열망에 부응하려는 토건자본의 눈물나는 노력이 읽힌다.

자연을 단지 안에 들이려는 노력. 그게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차차 봐야 알겠지만 나는 이렇게 어깃장을 논다. 대모산이 북한산보다 좋을 리 없잖아? 북악산 인왕산 북한산 안산에 이르는 우리 앞마당에 댈 바 아니지.

양대 재벌이 가진 종합병원이 근처에 있는 것은 노년의 시누에게 꽤 매력적일 것 같다. 정작 빽 있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서울대병원은 머나먼 곳에 있지롱.

정작 주거 공간 자체, 아파트 실내는? 걍 똑같은 아파트지 뭐. 금칠한 변기라도 있는 줄 알았니? 호텔식 편안함이란 객지의 호텔에서 사는 느낌을 둘러 말한 것? 요까짓 게 100평 단독 주택보다 비쌀 이유가 뭐냐는 볼멘소리를 누르느라 혼났다.

▲ 서울 종로구에서 바라본 북한산에 운해가 서려 있다./뉴시스

촌스러운 것. 지금 아파트 가격이 뭐 물건 가치에 연동된 거니? 걍 비싸서 더 비싸지는 거야. 30대가 영끌해 아파트를 산다는데 월급 상승폭과 아파트 가격 상승폭이 한 없이 벌어지니 합리적인 선택인 것 같지만 빚 내서 두 채 세 채 투자하는 이도 있다니 그것은 신종 비트코인?

돌아오는 길은 길고도 길고 퇴근 시간에 맞물려 몹시 고난의 행군이었다. 서울 끝이라는 것은 멀다는 거다. 파주 헤이리에 사는 두 딸과는 언제 한 번 보나? 일산에 사는 엄마한텐 언제 큰 맘 먹고 인사가나? 박물관이라도 한 번 가려면 어쩌지? 내 일도 아니면서 걱정된다.

하긴 가장 큰 걱정은 아파트 호가가 현실화되지 않는다는 거겠지. 그게 걱정되어 이미 비싸져 있는 아파트를 그렇게 열심히 광고하는 건가?

※ 김미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려대, 홍익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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