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경기대 겸임교수 국제정치학 박사] <교수신문>이 15일 2019년을 정리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해 발표했다.

▲ 김홍국 편집위원

공명지조는 『아미타경』(阿彌陀經)을 비롯한 많은 불교경전에 등장하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로, ‘목숨을 함께 하는 새’를 의미한다.

서로가 어느 한 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 같이 생각하지만 실상은 공멸하게 되는 ‘운명공동체’라는 뜻이다. 즉, 자기만 살려고 하면 모두가 망한다는 의미를 통해, 최근 갈등과 대립 속에 사회 혁신에는 눈을 감은 채 자기 진영만의 승리나 이익에 목을 매는 정치권과 사회 각계의 대립을 질타하고 있다.

『불본행집경』과 『잡보잡경』에 따르면 이 새는 한 머리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난다. 한 머리는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었는데, 다른 머리는 이에 질투심을 가졌다.

이 다른 머리는 화가 난 나머지 어느 날 독이든 열매를 몰래 먹어버렸고, 결국 두 머리가 모두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설문에 응답한 1천46명의 교수 중 347명(33%, 이하 복수응답)이 선택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다.

공명지조를 올해의 성어로 추천한 교수들은 “한국의 현재 상황은 상징적으로 마치 공명조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서로를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사라지면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어 선정하게 됐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좌우 대립이며 진정한 보수와 진보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정치가 좌우로 나뉜 것은 그렇다고 치고 왜 국민들까지 이들과 함께 나뉘어서 편싸움에 동조하고 있는지 안타깝다”, “지도층이 분열을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이용하고 심화하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국익보다 사익을 위한 정쟁에 몰두하는 듯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 공명지조, 어목혼주, 반근착절, 지난이행, 독행기시 선정

두 번째로 많은 300명(29%)의 선택을 받은 사자성어는 ‘어목혼주’(魚目混珠)였다. ‘어목’(물고기 눈)이 진주로 혼동을 일으켜 무엇이 어목이고 진주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가짜와 진짜가 마구 뒤섞여 있는 상태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 10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라는 뜻의 '공명지조'(共命之鳥)가 선정됐다고 15일 밝혔다. 정상옥 전 동방대학원대학 총장이 쓴 휘호.(자료=교수신문 제공)

교수신문은 “올해 우리사회에 가장 큰 충격을 준 사건은 누가 뭐래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다.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던 조국과 윤석열 검찰총장 중 하나는 어목이거나 진주일 수 있고, 아니면 둘 다 진주이거나 어목일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올해는 무엇이 진짜 어목이고 진주인지 혼동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교수들의 추천 이유를 전했다.

3위와 4위에는 ‘반근착절’(盤根錯節)과 ‘지난이행’(知難而行)이 선정됐다.

반근착절은 후한서(後漢書) 우후전(虞詡傳)에 나오는 고사성어로, 뿌리가 많이 내리고 마디가 이리저리 서로 얽혀 있다는 뜻으로 두 사자성어 모두 사회개혁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교수신문은 “정부가 기존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개혁하고자 여러 노력을 했으나 성과는 미흡했다. 내년에는 그 뿌리를 일부라도 제거하길 국민들은 바랄 것”, “설사 성공을 기약하기 어렵더라도 개혁은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 현 정부가 성공과 실패는 하늘에 맡기고 중단 없는 개혁을 추진해달라”는 추천교수들의 설명을 전했다.

5위에는 ‘다른 사람의 의견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처사한다’는 ‘독행기시’(獨行其是)를 선정했다.

교수신문은 ‘군자는 곧고 바르지만, 자신이 믿는 바를 무조건 고집하지는 않는다’는 논어 위영공의 말을 인용하며 “특히 사회 지도층은 그 사고와 처사에 합리성과 융통성을 가미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올 한 해 우리나라는 독단과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는 추천교수의 변을 전했다.

◇ 우리 사회상을 역사적, 철학적, 실사구시적으로 진단

2001년부터 <교수신문>이 매년 말이면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학계가 대한민국 사회에 보내는 성찰의 메시지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중요한 화두가 됐다.

<교수신문>은 19년째 한해 동안 펼쳐진 나라 안팎의 정치적 상황과 정세를 사자성어(四字成語)로 함축하여 발표해왔고, 이는 당시 국가적 상황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살피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높은 사회적 관심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주목할만한 연말 최고의 지면(紙面) 학술행사가 되어왔다.

▲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7월 25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 앞서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대화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그 해 우리 사회에서 발생했던 주요 현안과 국민들의 관심사를 가장 적확하게 짚어내면서, 역사적, 철학적, 실사구시적 의미를 짚어내고 해법까지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학계의 연말 주요한 행사로 자리잡아 왔다.

사자성어는 비유적이거나 풍자적인 내용을 4글자로 담은 함축된 형태로 상황, 감정, 사람의 심리 등을 묘사한 관용구다.

한 시대의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상을 빗대어 풍자적으로 유행하는 사자성어도 나오고 있으니, 대부분 중국의 고사 또는 불교의 경전 등에서 유래해 깊은 깨달음과 성찰의 계기를 준다.

실제 현실 정치권에서는 정치 환경과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각오 등을 사자성어를 활용해 알리고 정치적 파급력을 확보하려는 정치를 펼치기도 해, 정치인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각오를 담아 표현하는 일도 많다.

<교수신문>의 사자성어는 우리 사회상을 반영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성찰과 해법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일반 사자성어와 다른 무게감과 균형감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 19년 동안 한국사회 문제점 비판-성찰한 사자성어들

지난 19년 동안 선정된 올해의 사자성어는 당대의 현안이나 화두를 역사적, 철학적, 사상사적, 현실을 반영한 실사구시적인 측면에서 선정했고, 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나아가야 할 길과 방향을 찾아내곤 했다. 다음은 19년간의 사자성어들.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심재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회화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정권 국정농단 3대 게이트 규탄대회에 참석해 있다./뉴시스 .

2019년 : 공명지조(共命之鳥) :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로, 서로가 어느 한 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 같이 생각하지만 실상은 공멸하게 되는 ‘운명공동체’라는 점에서 진영을 나눠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한국사회를 풍자

2018년 : 임중도원(任重道遠) :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2017년 : 파사현정(破邪顯正) :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내다.

2016년 : 군주민수(君舟民水) : 임금은 배, 백성은 강물과 같아, 강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2015년 : 혼용무도(昏庸無道) :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의 잘못된 정치로 인해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

2014년 : 지록위마'(指鹿爲馬) :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으로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휘두르는 것을 말하며, 남을 속이려고 옳고 그름을 바꾸는 것을 가리킨다.

2013년 : 도행역시(倒行逆施) :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 거꾸로 행하고 거슬러서 시행한다는 뜻으로 순리와 정도에서 벗어나 일을 억지로 강행하는 데서 오는 폐해를 말한다.

2012년 : 거세개탁(擧世皆濁) : 온 세상이 모두 탁하고 흐리다는 뜻으로,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음을 나타낸다.

2011년 : 엄이도종(掩耳盜鐘) : 자기의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으로 가당찮은 잔꾀로 자기의 비위를 숨기려고 하는 어리석음 또는 나쁜 일을 하고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없다는 의미를 가진다

▲ 한국진보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강요를 규탄하고 있다./뉴시스

2010년 : 장두노미(藏頭露尾) : 머리는 감추었지만 꼬리는 노출됐다는 뜻으로 진실을 감추려하지만 흔적없이 감추기는 어려우며, 진실을 숨겨두려 했지만 그 실마리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나 있다.

2009년 : 방기곡경(旁岐曲逕) :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 길이 아닌 샛길과 굽은 길을 의미하며, 일을 정도대로 하지 않고 그릇된 방식과 수단을 써서 억지로 강행하는 것을 비유한다.

2008년 : 호질기의(護疾忌醫) : 병이 있는데도 의사한테 보여 치료받기를 꺼린다는 뜻으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음을 비유한 말.

2007년 : 자기기인(自欺欺人) :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뜻으로 학력위조, 논문표절, 정치인과 기업인의 비도덕적 행위 등 비뚤어진 욕망에서 비롯돼 스스로 언행에 정직하지 못한 세태를 꼬집은 것임.

2006년 밀운불우(密雲不雨) : 구름은 짙게 드리웠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여건은 조성됐지만 일은 성사가 되지 않아 답답한 심경을 비유함

2005년 상화하택(上火下澤) : 위에는 불 아래는 못(물)이란 뜻으로 물과 불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상황으로 끝없는 정쟁, 지역과 이념의 갈등 등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양극화 현상을 풍자함

2004년 당동벌이(黨同伐異) :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같은 무리의 사람들은 함께하고 다른 무리의 사람들을 무조건 배격한다는 뜻으로 패당을 이루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상황을 표현한 말

2003년 우왕좌왕(右往左往) : 이리 몰리고 저리 쏠리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풍자함

2002년 이합집산(離合集散) : 벌어졌다가 합치고 모였다가 흩어진다는 뜻으로 이해관계에 의해 이리 찢어지고 저리 뭉치는 행태를 꼬집은 말

2001년 오리무중(五里霧中) : 오리나 안개에 휩싸여 있어 나아갈 바를 찾지 못함을 비유함, 한 치 앞도 구분하지 못하고 방황함.

◇ 조속한 적폐청산 및 대대적 개혁 통해 미래혁신 이뤄야

한국사회는 <교수신문>의 진단대로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대결과 함께 계층간, 지역간, 노사간 치열한 대립과 갈등의 상황에 놓여있다.

과거 친일파와 군사독재 및 부역세력들이 기득권을 차지하고, 국정농단과 부정부패로 단죄받았음에도 개혁에 대한 격렬한 저항을 하면서, 새로운 미래로 가는 길을 아직 열지 못하고 있다.

온 사회적 역량을 동원해 조속히 적폐청산과 함께 미래를 향한 개혁과 혁신을 길을 열어가야 하는 것이 한국사회가 마주한 새해 2020년의 과제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7년 올해의 사자성어, 파사현정(破邪顯正)은 여전히 유효한 우리 사회 적폐청산과 미래지향적이고 정정당당한 개혁의 화두를 제시했다. 파사현정은 불교 삼론종의 중요 논저인 길장의 ‘삼론현의(三論玄義)’에 실린 고사성어로, 사견(邪見)과 사도(邪道)를 깨고 정법(正法)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 문재인 대통령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7월 18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여야 5당 대표 초청 대화'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뉴시스

한국사회를 질식시킬 것만 같았던 국정농단 상황에서 시민들이 올바름을 구현하려는 촛불혁명을 통해 나라를 바르게 세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조속히 적폐와 찌든 구태와 기득권을 청산하고 파사(破邪)를 넘어서서 현정(顯正)으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21세기 다양한 도전과 갈등에 맞서서 대한민국 사회가 ‘임중도원’과 ‘공명지조’의 답답함과 장벽을 극복하고, 파사현정과 함께 ‘재조산하’(再造山河, 나라를 다시 바르게 재건하다)의 대개혁과 혁신을 이뤄내길 기원한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경제부 정치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로 YTN 등에서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MBA(기업경영)를 취득했고, 리더십과 협상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