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일본이 ‘미국 없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을 강행,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탈퇴 선언’으로 사실상 공중분해 위기에 빠진 TPP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그 이유는 우선 미국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TPP 체제가 일본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이동준 교수

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으로 무역장벽 철폐와 시장개방을 통한 무역자유화를 목적으로 한다. 2015년 10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협상이 타결되었으며, 세부내용 관련 실무합의와 각국 의회 비준 등의 절차를 남겨둔 상황이다.

현재 참여국은 12개국(뉴질랜드, 브루나이, 싱가포르, 칠레, 미국, 호주, 페루, 베트남, 말레이시아, 멕시코, 캐나다, 일본)이다.

TPP가 와해된다면 장기집권을 노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말 공개한 ‘TPP 협정의 경제효과 분석’은 이 협정이 시행되면 일본의 GDP는 약 2.59%(12.6조엔)가 늘고, 79만 5000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아베 정부가 어떻게 해서든지 TPP에 목을 매려 하는 이유이다.

또한 미국을 제외하고 TPP를 추진하더라도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미국의 TPP 탈퇴 이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무역, 성장촉진 방법을 찾기로 합의한 바 있다.

당시 공동성명에는 “일본이 기존 이니셔티브를 기초로 지역 차원의 진전을 계속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미국도 일본의 독자적인 TPP 추진에 토를 달지 않기로 한 셈이다. 미국이 빠진 지금 일본은 TPP 최대 경제국이 됐다.

일본은 TPP 독자 추진이 트럼프 행정부가 TPP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일본에 제기한 미일 양자 무역협정 협상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TPP 잔류가 무역적자 감축을 위해 TPP 협상 당시 미일 간 합의를 넘어서는 시장개방을 요구하며 일본을 몰아붙일 태세인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를 막아내는 버팀목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郎) 일본 재무상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다자협상보다 양자 무역협정을 선호하는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불가능하지는 않다”면서도 “하지만 어떤 게 좋은지는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견제구를 날렸다.

무엇보다 일본은 TPP를 지켜내면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마음을 돌려세울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TPP를 일단 발효시켜 미국이 향후 다자간무역시스템으로 돌아올 여지를 남겨두겠다는 것이다.

▲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 춘계 총회 참석차 워싱턴을 방문해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자료사진】

사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중요한 정책에 대한 입장을 번복해온 트럼프 행정부가 TPP 탈퇴 선언도 한 순간에 접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일부 미국 언론매체도 이런 전망을 내놓았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이후 폐기한 15개의 공약을 예로 들며 TPP 폐기 약속도 번복될 여지가 있음을 시사했다.

CNBC방송은 한 발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TPP ‘폐기의 폐기’를 최우선적으로 거론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의회 일각에서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강화에 대한 경계심으로 TPP 체제를 지지하는 주장이 있는 데다, 미국이 TPP를 포기하고 일본과 양자간 무역협정 체결만 고집할 경우 결국 미국에 손해가 된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이 TPP 대신에 일본과만 협정을 맺을 경우 ‘무역전환효과’ 때문에 ‘TPP 11’(미국이 빠진 TPP)의 루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일본 시장에서는 호주산 소고기, 칠레산 와인 등이 미국 제품에 비해 더 잘 팔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일본의 TPP 전략 수정은 미국의 TPP 복귀마저 염두에 둔 다목적 포석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일본의 TPP 살리기 작전이 일본의 의도대로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행정부가 여전히 일본과의 독자적인 무역협정 체결에 더 관심을 많이 보이는데다, 기존 TPP 회원국들도 미국의 이탈로 TPP 협정 내용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기 있다. 일본이 관계국들 간의 복잡한 주판알 게임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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