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일본 사회에서 '패러사이트(기생충) 싱글’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부모에게 기생하는 독신(parasite single)'이라는 뜻을 지닌 이 용어는 이미 20년 전인 1997년 등장했다. 별로 새로울 게 없다는 얘기다.

▲ 이동준 교수

그런데 이들이 중년의 나이를 넘기면서 향후 일본 사회를 위태롭게 만들 주요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들의 고령화와 함께 부모들도 더욱 늙어져 더 이상 ‘중년 캥거루족’을 부양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됐기 때문이다.

패러사이트 싱글은 어른이 돼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와 동거하면서 식비, 주거비, 생활비 일체를 부모에게 의존하는 성인들을 일컫는다.

변변한 일자리가 없고, 일자리가 있더라도 저축 등 미래를 준비할 여유는 없다. 생활비 부담도 부모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들이 나이를 들어가면서 사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일본 언론에 소개된 54세 미혼 여성 다나카 히로미(田中博美)씨의 사연은 그 실태를 잘 보여준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그는 코러스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지만, 생계를 꾸릴 수 없어 부모님 집에 얹혀 살게 됐다.

부모님 연금에 의존해서 생활해온 그는 6개월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연금이 절반으로 줄어든 데다 50대 중반이라는 나이 때문에 임시직 일자리 구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다나카씨는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없고 국민연금 납부도 중도 포기해 수급 자격이 없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면 생계가 막연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패러사이트 싱글은 1997년 주오(中央)대 야마다 마사히로(山田昌弘) 교수가 쓴 '패러사이트 싱글의 시대'라는 책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들은 1990년대 일본 버블 경제 붕괴로 정규직 일자리가 급감하면서 등장했다. 학교를 졸업해도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없고, 결혼할 능력이 되지 않는 많은 젊은이가 부모에게 손을 벌렸다.

▲ 대학생 대선공동대응기구 관계자들이 지난 3월 3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대선 주자들에게 등록금과 청년실업 문제 등을 포함한 대학생 대선공약을 촉구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당시 20~30대 패러사이트 싱글들은 여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중장년층이 됐다. 야마다 교수는 "1990년대 초 부모에게 기생했던 25세 독신 중 3분의 1이 그 상태 그대로 50세가 됐다"고 했다.

일본 총무성 통계연구소에 따르면 45~54세 연령대 중 부모에게 의존해 살고 있는 패러사이트 싱글은 1980년 18만명에서 2016년 158만명으로 증가했다. 의식주 등 가장 기초적 부분까지 부모에게 의존하는 이들도 31만명으로 추산된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우선 부모 세대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에서 버블붕괴 이전에 사회에 진출한 부모 세대들은 취업에 큰 어려움이 없었고 고성장에 힘입어 내집마련 등의 자산형성에도 많은 혜택을 받았다. 연금제도가 정비돼 많은 직장인들이 퇴직 후에도 여유있는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반면 지난 십수년 사이 사회에 나온 젊은 세대들은 취업을 못하거나 취업을 하더라도 파트타임이나 파견사원 등의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이들은 자립을 하고 싶어도 자신의 수입만으로는 제대로 된 생활을 하기가 어렵다.

일본의 부모들은 이런 자녀들을 자립시키기 위해 노력을 하기보다는 대책없이 부양만 하고 있다. 사회가 냉혹하기 때문에 부모라도 자녀에게 관대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부모세대의 ‘부채 의식’에 따른 ‘과보호’가 결국 패러사이트 싱글들의 ‘자생력’을 더욱 떨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뾰족한 해법도 없다. 스스로 노력을 하고 있는데도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는 자식을 그대로 내팽겨둘 부모가 얼마나 될까.

패러사이트 싱글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토양이 우리나라와 너무 흡사하다. 취직이 상대적으로 쉬웠던 부모 세대와 달리 지금은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시대다.

일본에서 나타난 '냉혹한 사회현상'이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에서 훨씬 더 가혹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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