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국악가사 이야기

[이코노뉴스=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 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단가 중에 ‘장부가’라는 노래가 있다. 인생무상을 노래한 단가로 ‘불수빈(不須嚬)’이라고도 한다. 사설은 백발을 한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역대의 중국 명문재사 · 충신 · 명장 · 호걸 · 미인들의 생과 죽음의 과정을 열거해 나가며, 결국 인생은 무상한 것이고 죽음이란 면할 수 없는 것이니 한스럽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장부가’의 사설을 근래의 것과 광복 이전의 것을 비교하여 보면, 첫 대목의 내용이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즉, 1930년대에 나온 리갈음반(음반번호 C-186)에는 정정렬(丁貞烈) 명창이 부른 ‘불수빈’이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는 “세월이 무정터라. 어화 소년들, 백발보고 웃지 마라. 어제 청춘, 오늘 백발, 그 아니 한심한가. 장내의 일등미색들아 호협타고 자랑마라. 서산에 지는 해 그 뉘라 금지하며, 창해로 흐르는 물 다시 오기 어려워라”라는 사설로 시작하고 있다.

‘불수빈’이라는 말의 한자어의 뜻이 ‘웃지 마라’ 이니, ‘불수빈’이라는 제목을 붙였던 것이다. 그러나 근래의 사설 첫 대목은 “어화 청춘 소년님네 장부가를 들어보소. 국내 청년 모아다가 교육계에 넣어두고 각종 학문 교수하여 인재양성 하는 것도 장부의 사업이요, 천리준총 바삐 몰아 칠척장검 손에 들고 백만대병 지휘하여 통일천하 하는 것도 장부의 사업이라. 장부가로 노래하니 뜻이 깊고 애가 타서 가슴이 답답 목마르다. 뒷동산 지는 꽃은 명년 삼월 다시 피되 우리인생 늙어지면 다시 청춘 어려워라”로 바꿔 부르기에 제목도 ‘장부가’로 바꾼 것이다.

‘장부가’ 가사 중에 ‘맹상군(孟嘗君)의 계명구폐(鷄鳴狗吠)’라는 대목이 나온다. 계명구폐는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한자성어로도 사용하는 말이다. 천한 재주 또는, 그런 재주도 쓰일 때가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여기에는 유래가 있다.

▲ 근대 5대명창중 한명인 정정렬 명창이 인생무상을 노래한 단가 ‘장부가’를 음반으로 남겼다. 사진은 정 명창을 추모하기 위해 2014년 전북 익산시에서 열린 제14회 익산 전국 판소리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김은석씨가 열창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전국 시대 맹산군은 제나라 사람으로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큰 부자였는데 천명의 식객을 대접했다 한다. 그의 명성이 자자하자 진나라 양왕이 그를 초청하여 재상으로 맞으려 했다. 그러자 중신들이 “제나라의 맹상군을 중용하면 필시 화가 온다”고 반대했다. 양왕은 재상 임용을 포기했고 그러자 중신들은 맹상군을 그냥 돌려보내면 보복을 할지 모르니 죽이라고 진언했습니다. 맹상군은 다급해졌다. 맹상군은 양왕이 총애하는 여자에게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그 여인은 맹상군에게 호백구(狐白裘)를 요구했다. 호백구는 여우 겨드랑이 털로 만든 옷을 말하는데 당시에도 매우 진귀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 호백구는 이미 양왕에게 바쳤기에 맹산군 수중에 없었다. 이를 걱정하던 중, 맹상군의 식객 가운데 도둑질 잘 하는 자가 있어 몰래 양왕의 창고에 들어가 호백구를 훔쳐 내어 여자에게 선사하고, 다행히 석방되어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겨우 진나라 수도를 벗어나 도망치는 중에 양왕이 맹상군을 석방한 것을 후회하여 추격토록 했다. 맹상군 일행은 급히 함곡관(函谷關)에 당도했으나 아직 문 열 시간이 되지 않았다. 시간을 지체하면 곧 추격군에게 잡힐 찰라, 식객 중 닭 울음 흉내를 잘 내는 사람이 닭 울음소리를 내니 온 동네 닭이 따라 울어, 관문 지키는 자가 새벽이 된 줄 알고 문을 열었다. 마침내 맹상군 일행은 탈출에 성공했다.

후세에 송(宋)의 왕안석(王安石)이 평하기를 “맹상군이 그 많은 선비를 길렀으면서도 그런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자는 없고, 겨우 닭 울음소리, 도둑질이나 하는 자들만 얻었더란 말인가” 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맹상구폐는 보잘 것 없는 재주라도 반드시 쓰이는 데가 있다는 말의 유래가 되었다. 국악 가사를 잘 살펴보면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 하응백 서도소리 진흥회 이사장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옥봉의 몽혼’(2009)등 20여 권의 편저서가 있으며 ‘창악집성’(2011)이라는 국악사설을 총망라한 국악사설 해설집을 펴내기도 했다.

2002년 ‘휴먼앤북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하 이사장은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를 취득했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민대학교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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