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재민 한국조폐공사 디자인연구센터 수석연구원] 독일 화폐는 유로와 센트가 있다.

유로화 이전에 사용된 독일 화폐는 마르크(Mark)와 페니히(Pfennig)였으며, 1990년 이후 발행된 은행권에는 작가 · 화가 · 건축가 · 철학자 등 문화 예술인과 학자들을 주요 인물로 사용하였다.

유럽 중부에 있는 독일은 1871년 ‘철혈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에 의하여 통일되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에 패배한 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나 다시 패배하고 민주주의 국가인 서독과 공산 국가인 동독으로 나누어 졌다. 1990년 10월에 통일을 이루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독일, 10마르크 앞면, 1999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 1777~1855)

독일은 유럽연합(EU)의 창설국이자 EU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이기도 하다. 독일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일으킨 나라이지만 세계 문화에 영향을 많이 끼친 나라이기도 하다.

특히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등 세계 음악사에 이름을 떨친 음악가들이 많다. 또 헤겔, 칸트, 괴테 등은 근현대 서양 사상의 흐름을 이끌었다.

독일 국민의 젖줄인 1,390km 라인강은 전쟁에서 진 독일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발전시킨 상징이 되었으며, 라인강 줄기에 있는 로렐라이 언덕은 하이네의 시 때문에 너무나 유명해진 곳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작가 괴테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수학의 왕자 –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

독일의 대수학자이자 19세기 최대의 수학자라고 일컬어진다. 수리물리학으로부터 독립된 순수수학의 길을 개척하여 근대수학을 확립하였다.

그는 독일 브라운슈바이크에서 벽돌 굽는 일을 하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우스는 어려서부터 영주 페르디난드 공에게서 천재로 인정받아, 그의 도움으로 대학 교육을 받았고, 30세에 이르기까지 영주의 비호 밑에 평온한 연구 생활에 몰두할 수 있었다.

▲ 독일, 10마르크 뒷면, 1999

10세 때 등차급수의 합의 공식을 창안하는 등 신동(神童)으로 알려져 브룬스비크공(公) 페르디난드에게 추천되어, 카롤링고교를 거쳐 괴팅겐대학에 진학하였다.

그는 괴팅겐대학 재학 시절에 정 17각형의 문제에 열중한 것이 수학의 길을 선택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대자연이여, 나의 여신인 자연이여, 당신이 정해 놓은 법칙에 따라 봉사하는 것이 나의 의무입니다."(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 나오는 이 구절은 가우스가 곧잘 이용하는 대사라고 한다.)

그는 대수학의 기본정리를 비롯하여 정수론, 천문학, 전자기학, 해석학, 최소자승법, 미분기하학 등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수학은 과학의 여왕이고, 정수론은 수학의 여왕이다”라고 했으나, 그가 죽은 뒤에 영주는 그를 위한 기념비에 “수학자의 군주(Mathematicorum princeps)”라는 칭호를 넣어 그의 업적을 칭송하였다.

그는 수학을 연구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단히 열심히 일하는 완벽주의자였다. 가우스는 아르키메데스, 아이작 뉴턴과 함께 세계 3대 수학자들 중 한 명이 됐고, 오늘날에는 "수학의 왕자"라고 불리울 만큼 굉장히 유명하다.

그는 수학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큰 기여를 했다. 특히, 정수론을 수학의 중요한 분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855년에 독일 괴팅겐에서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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