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을 뜻하는 ‘아베노믹스 경기’가 1945년 일본 패전 후 3번째로 긴 회복 국면을 보이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설명과 달리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사뭇 다르다.

▲ 이동준 교수

실제 일본의 경제 현실을 자세히 따져보면 엄청난 규모의 양적완화가 만들어낸 성과치고는 왜소하거나 거의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아베노믹스는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난 게 사실이다. 아베 정권은 지난 2013년 4월 디플레이션 탈출을 목표로 연 80조엔(약 812조 원)의 양적 완화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 4년간 풀린 돈(본원통화)만 무려 303조엔에 달했다.

전례 없는 돈 풀기 덕에 엔화가치를 달러당 90엔대에서 120엔대로 대폭 끌어내려 일본 기업들의 수출을 지원했다. 2월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1.3% 증가했고 수출 호조는 실적 호전으로 이어졌다. 지난 1월 민간 기업의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3.4% 늘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일본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종전보다 0.2%포인트 올렸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최장의 경기회복 국면이었던 2000년대의 경우 수출이 80%가량 증가했지만 이번에는 20%밖에 늘지 않았다.

엔화 약세로 기업 실적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엔화 약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미지수이다.

더욱이 양적완화가 애초 겨냥했던 ‘물가상승률 2% 달성’은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해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월 현재 0.2%에 그치고 있다.

▲ 일본의 소비 부진을 보여주듯 도쿄 시내의 쇼핑센터에 세일 표시가 붙어있다. 【도쿄=AP/뉴시스 자료사진】

근본적 이유는 물론 민간 소비의 부진이다. 수치상으로는 52개월간이나 경기가 좋아졌다지만, 임금인상은 미미했기 때문이다. 실물경기가 살아나면서 기업들이 일손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치는 건 사실이지만 물가상승률이 0.2%에 머물고 있는 등 민간소비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 아베노믹스는 ‘가짜 약’…‘시장에 풀린 돈은 별로’

임금이 제대로 오르지 않은 까닭에 개인소비는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래에 대한 불안 심리를 해소하지 못한 소비자들이 고가 상품구매를 기피하면서 대형 백화점들이 잇달아 문을 닫았다. 일본 굴지의 백화점 업체 미쓰코시이세탄의 오니시 히로시(大西洋) 사장은 실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하기도 했다.

대신 저가 할인 슈퍼마켓은 급성장 중이다. 학생과 직장인들도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아 식당가에서는 ‘저가 메뉴’가 속속 재등장하고 있다.

아베 정부가 아무리 돈을 풀어도 소비심리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 것은 청장년층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극심한 경기 침체기를 겪은 디플레이션 세대, 이른바 D세대는 절약 정신이 투철하다. 중산층이라 해도 부모의 옷을 되물려 입을 정도다.국내소비에 크게 의존하는 일본 경제가 개인소비를 견인하지 못하는 한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말하기 어렵다.

▲ 자료 출처: 일본경제신문

일본 경제잡지 <프레지던트>는 아베노믹스를 ‘가짜 약’에 비유했다. 일본은행이 무제한 양적완화를 했다지만 실제로 시장에 풀린 돈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가계는 돈을 빌려 쓰지 않고 시중은행은 일본은행에 돈을 다시 맡기는 비상식적 현상을 꼬집은 것이다.

그런데도 기업 주가가 오르는 등 지표가 좋아진 것은 위약 효과나 다름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엔화 가치는 잡아 내렸지만, 미래 불안 심리는 치유하지 못한 게 아베노믹스의 한계로 지적된다.  결국 ‘디플레이션 탈피’라는 아베노믹스의 최종 목표 달성은 아직은 요원하다. 일본 소비자들이 아베노믹스가 주장하는 ‘경기회복 52개월’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배경에는 중장기적인 경제성장의 실력을 의미하는 잠재성장률이 하락했다는 점이 있다.

일본 내각부의 추계에 따르면 2016년은 0.8% 성장이다. 인구감소로 노동력 자체가 늘지 않은데다, 기업도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지 못해 국내 설비투자에 신중한 자세를 취하는 상황이 되풀이된 것이다.

숫자가 아무리 경기회복을 주장하더라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심리만 커져온 ‘경기회복국면 52개월’이었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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