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임태형 대기자] 대한민국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본격화한 시기는 200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외환위기에 대한 자성(自省)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으로 재도약에 나설 때였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한국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전후(戰後), 경제의 비약적인 성장만큼이나, 양적 질적으로 급성장했다.

▲ 임태형 대기자

기업 사회공헌활동의 성장만큼이나 일반 국민의 나눔 활동 또한 이 기간 동안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기업과 민간부문의 나눔 활동이 이처럼 급속하게 확산되는 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동안 경제적 환경의 부침(浮沈)이 심한 속에서도 사회공헌의 총량이 한차례도 꺾이지 않고 상승하는 것을 보면, 확신컨대 그 동력은 우리 뼈 속 깊이 잠재되어 있는 유전자에 있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로도 알려진 거상 김만덕님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1794년 흉년이 든 제주도에서 전 재산을 털어 곡식을 사들이고 나눠줌으로써 백성을 굶주림에서 구하여 노블리스오블리주를 실천했다.

김만덕님이 살았던 정조 시대에는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출신지인 제주도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알려졌던 인물이었다. 특히 서울 장안에서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켜, 사대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직접 만나보고 싶어 했던 인기 있는 유명 인사였다.

형조판서를 지낸 이가환은 시를 지어 헌정하였고 영의정 채제공은 <만덕전>이라는 전기까지 써서 바쳤을 정도였다. 이러한 여성 상인이 2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도 존경을 받고 있다.

이런 분을 언급하면 보통의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부모 세대, 조금 멀리 조부모 세대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따스한 나눔의 유전인자 때문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 지난 2010년 3월부터 6월까지 방영된 KBS 1TV 주말드라마 '거상 김만덕' 메인세트장인 제주도 서귀포 표선 제주민속촌박물관에서 배우 이미연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어릴 적, 마을의 경조사가 있는 집이면, 지나는 행인이나 걸인도 굳이 불러들여 한 상 푸짐하게 음식을 내주는 것을 흔하게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멀고 긴 여정에 달랑 옷가지 몇 점만 챙겨도 여행이 가능했던 것은 낯선 객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기꺼이 내어주는 속 깊은 정이 누구에게나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말 이를 경험한 프랑스 신부가 ‘정(情)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조선 팔도’라고 표현하며 경이감을 나타낼 만큼, 이는 특별한 사건이 아닌 우리 조상의 일상이었다. 외세의 억압과 전쟁으로 인해 숨어버렸던 나눔의 유전자가 드러나면서 이제 기업과 민간 사회공헌의 큰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점차 거세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활동의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며, 기업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활동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사회공헌활동이 면피용, 홍보용 이벤트로 포장되고 사회를 향한 진정성 없는 활동으로 흐른 경우에는 고객을 비롯한 이해관계자의 마음을 결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업 사회공헌활동은 지역사회의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고 해결을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이 더해질 때, 성공적인 결과가 따른다는 것도 학습하게 되었다.

120년 정도 전인 19세기말 한 외국인이 조선팔도 어디에서도 느꼈던 것처럼, 우리의 속깊은 정(情)을 담은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을 전국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임태형 대기자는 삼성사회봉사단 창설 멤버(차장)이며 KT사회공헌정보센터 소장을 역임하는 등 30년 가까이 기업 현장에서 사회공헌활동을 연구하고 실천한 CSR 전문가입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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