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경기대 겸임교수 국제정치학 박사] 동양의 대성현 공자는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政者正也(정자정야)”라고 설파했다.

▲ 김홍국 편집위원

정치가 품격과 상식이 기반이 되는 사회적 행위가 되어야 나라가 안정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정치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로,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정의된다.

정치는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으며, 이해관계의 대립이나 의견의 차이를 조정해 나가는 통제의 작용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책임 있고 합리적인 정치적 행위를 통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음으로써 정치의 주역인 정당은 정권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 저급한 국격 추락 행위, ‘시정잡배 정치’ 희화화

그런 면에서 한국정치는 최근 국민들로부터 최악의 불신을 받는 추락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극단적인 대립과 함께 저주와 증오의 정치적 대결만이 난무하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시정잡배들이 사용하는 저속하고 저급한 언어들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이 공식 유튜브 채널인 '오른소리'에서 속옷만 걸친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을 그린 애니메이션 영상이 대표적인 예다.

자유한국당은 28일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오른소리가족' 편에서 속옷만 입은 문 대통령 이미지를 공개하면서 덴마크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 내용을 빗대 '안보재킷'과 '경제바지'를 입고 '인사 넥타이'를 맸다고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이 동영상은 문 대통령이 안보재킷을 입는 장면에서는 '북나라가 즉위를 축하하는 축포를 쐈다'며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연상시켰고, 경제바지를 입은 뒤에는 '소득주도성장과 길거리에 나앉은 국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정략적 공세에만 치중했다.

국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 날카로운 비판과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은 고사하고, 이념적 편향 가득한 저속한 정치적 주장과 비난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 자유한국당은 2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당 캐릭터 '오른소리 가족' 제작발표회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을 '벌거벗은 임금님'에 빗댄 애니메이션 영상을 발표했다./뉴시스

인사 넥타이를 매는 장면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두 손에 수갑을 차고 체포되는 장면을 그려 넣은 뒤, 영상 속에서 벌거벗은 문 대통령은 “안 그래도 멋진 조 장관이 은팔찌를 차니 더 멋지구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직 검찰조사도 받지 않은데다 당연히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전직 법무장관과 현직 대통령에 대한 저속하고 비열한 정치적 공세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같은 내용의 오른소리가족 제작발표회에 대해 황교안 대표가 한 발언이다. 그는 “오른소리라는 이름처럼, 가짜·거짓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우리 당의 이해를 떠나 국민 입장에서 옳은 소리를 하는 정당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라며 “우리 정당사에 있어서 당 차원의 가족 캐릭터를 만들어 국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시도는 최초일 것”이라고 동영상을 극찬했다.

충격적이고 황당한 일이다. 정치지도자라면 이같은 혹세무민의 저급한 동영상이 제작된데 대해 당장 책임자를 문책하고 대국민사과를 하는 것이 정상적일텐데, 변명과 궤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과연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

◇ 저급한 동영상 제작, 대국민사과 후 문책해야

이에 대해 당연히 정치권과 국민들의 반응은 차가울 수밖에 없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상대를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을 높이려 하는 것이 과연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일인가"라며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상생·협치를 보여줘야 한다. 그건 우리(청와대)와 여야 모두에 해당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 영상물이) 지금의 대한민국에,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에 어울리는 정치의 행태인가"라며 "국민에게 희망을 보여주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성찰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논평에서 "한국당이 공개한 동영상은 충격을 금할 수 없는 내용으로 채워졌고, 문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 인내력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며 "그런 천인공노할 내용을 소재로 만화 동영상을 만들어 과연 누구에게 보여주겠다는 것인지 말문이 막힐 따름"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1회국회(정기회) 제8차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뉴시스

이 대변인은 "한국당은 국민을 두려워할 줄 아는 상식에 입각한 건전한 정치를 해주기를 비감한 마음으로 재삼 재사 당부한다"며 "한국당은 국민 모욕 동영상 제작 관련자 모두를 엄중 문책하고 국민께 즉각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 상식적 비판 아닌 비난과 저주의 정치는 사라져야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을 얼마든 비판하고 풍자할 수는 있으며, 야당이기에 비판적 인식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동영상에서는 공당이라면 가져야 할 최소한의 품위와 금도는 고사하고, 대통령을 향한 적대적 감정과 함께 저주와 악담만 가득하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여자아이가 배꼽을 잡고 “신나게 나라 망치더니 드디어 미쳐버렸군”이라고 조롱하고, 화난 남자아이는 “나라가 아무리 어려워도 옷도 입을 줄 모르는 멍청이를 임금으로 둘 수 없지”라고 말하는가 하면, 이야기를 전한 할아버지는 ‘이것이 바로 끊이지 않는 재앙! 문.재.앙!이란다’라고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비난한다.

국가의 품격을 훼손하고 증오와 저주의 정치를 일상화함으로써 정치혐오감을 부추기고, 거짓말과 가짜뉴스에 기반해 여론을 오도하는 행위다.

자유한국당은 최근 ‘조국 사퇴 표창장’과 50만원 상품권 배포로 빈축을 샀고, 범법을 저지른 의원들에 대해 ‘패스트트랙 저지 공천가산점’을 추진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또 저주와 악담으로 가득한 나경원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도 여론의 매몰찬 외면과 비판을 받았다.

▲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후 부산 수영구 남천성당에 마련된 고(故) 강한옥 여사의 빈소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퇴행적 행보와 대통령에 대한 상식과 금도를 넘은 비난과 저주로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걸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국민사과와 함께 자기성찰과 혁신, 뼈를 깎는 자성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야 할 것이다.

◇ 무한책임 여당, 야당 설득하고 국정 성공 이끌어야

여당도 마찬가지다. 집권여당은 국정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야당의 비판에 대해 혹시라도 문제가 있다면 더욱 엄정하게 국정을 다잡고, 국민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정책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야당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과 폄훼는 바람직하지 않다.

여당은 국민의 여론을 귀담아듣고 현장에서 의견수렴을 하며, 정책적 오류나 미비한 공약을 시정하고 국정의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정의 성과를 내지못하고, 민주정당답게 자기 목소리를 내지못한 채 청와대에 끌려가는 정치는 선거를 통해 심판받을 가능성이 크다. 촛불혁명 당시 국민이 준 준엄한 개혁과 혁신, 민주주의와 정의의 실현을 위해 더욱 새롭게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할 때다. 공자 말씀대로 정치는 ‘바로 잡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야 정치지도자들은 흔들리지 않는 정정당당함과 신뢰,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해야할 것이다. 그런 정치를 위해 흔들림 없는 생명의 가치를 노래한 청마 유치환 시인의 시를 음미하며, 더좋은 정치를 다짐하면 어떨까? 우리 정치가 살벌한 전쟁같은 대립과 갈등이 아닌 국민의 행복을 위한 타협과 협상, 선순환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한 단계 변화하기를 기원한다.

바위 - 유치환 시인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다.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출전 : '생명의 서'(1947)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경제부 정치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로 YTN 등에서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MBA(기업경영)를 취득했고, 리더십과 협상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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