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국악가사 이야기

[이코노뉴스=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옥분(玉盆)에 심근 매화(梅花) 한 가지 꺾어내니

꽃도 좋거니와 암향(暗香)이 더욱 좋다

두어라 꺾은 꽃이니 바릴 줄이 있으랴

▲ 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청구영언’은 현재까지 전하는 가집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고본(古本)이다. ‘옥분에’는 1728년에 중인 가객이었던 김천택이 만든 가집인 청구영언에 실린 김성기의 작품이다. 화분에 매화 한 가지를 꺾어 심어 그 향을 즐긴다는 내용이다.

이 시조를 지은 김성기는 조선 숙종 때의 가객이자 이름난 거문고 연주가였다. 그는 원래 활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음악을 워낙 좋아해서 장악원 악공이 되었다. 이후 김성기는 숙종 시대에 최고의 악사로 평가를 받았다. 장악원에 소속되어 음악을 연주했으나 늙어서는 완전히 세상과 인연을 끊고서 현재의 서울 마포 강가에 숨어버렸다. 그가 스승으로부터 거문고를 배울 때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거문고 악사 김성기는 왕세기(王世基)로부터 거문고를 배웠다. 왕세기는 대충 가려켜 주고 진짜는 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성기는 밤이면 밤마다 왕세기 집으로 가서 창 뒤에 바짝 붙어서 몰래 훔쳐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면 하나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연주하였다. 그런 사실을 너무 의심스럽게 생각한 왕세기가 어느 날 밤 거문고 곡을 연주하다 미처 반도 끝내지 않았을 때 별안간 냅다 창문을 열어젖혔다. 김성기가 깜짝 놀라서 땅바닥에 거꾸러졌다. 왕세기는 그제야 그를 크게 기이한 사람으로 여기고 그가 지은 것을 모조리 김성기에게 전수하였다.”

그리하여 김성기는 악공 중에서도 으뜸가는 대접을 받았다. ‘잔치 집에 김성기가 빠지면 잔치도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김성기는 당대 최고 악사의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숙종이 돌아가시고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즉위하자 고변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목호룡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자신의 상전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역모를 꾸민다고 거짓 고발을 하고 이 사건으로 인해 몇 명이 사형되고 60여 명이 처벌받는 일이 벌어진다. 이른바 신임사화다.

▲ 여창지름시조는 여성들에 맞는 선율로 구성하여 여성들만이 노래하는 지름시조이다. 2011년 서울가악회에 참가한 여성국악인이 여창지름시조를 부르고 있는 모습. /네이버 자료사진 캡처

고변을 한 목호룡은 공신으로 책봉되어 호화롭게 살게 된다. 어느 날 목호룡이 잔치를 하려고 김성기를 부르자 김성기는 죽을 각오를 하고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주인을 고발하는 그런 사람의 잔치에 가지 않겠다고 거절하고 마포 강가에 숨어 들어간 것이다. 훗날 영조가 즉위하자 목호룡은 감옥에서 고문을 당해 죽고 만다.

김성기를 스승으로 모시고 배운 여러 제자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왕족인 종친 남원군은 신분이 천한 악공을 스승으로 깍듯이 모셨다고 한다. 천한 자를 스승으로 모실 수 있느냐고 누군가 문제제기를 했을 때 남원군은 “재능이 있는 곳이 바로 스승이 있는 곳이다. 나는 재능을 스승으로 삼을 뿐 귀천이 있고 없고는 모른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남원군은 스승이 죽은 뒤에도 사모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남원군과 이현정을 비롯한 제자들이 스승을 그리워해 가기(歌妓) 대여섯 명을 데리고 무덤을 찾아가 술과 안주를 올렸다. 술을 붓고 나서 남원군이 직접 몇 곡을 연주하고, 다른 제자들은 각자 익힌 곡을 연주해 하루 종일 마음을 위로하다가 연주를 마치자 대성통곡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당시 이 광경을 신익이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기록했다.

“김성기가 죽자 이현정은 남원군과 함께 시신을 지고 광릉(廣陵)의 산에 가서 장사를 지냈다. 그때 하늘의 구름은 빛을 바꾸었고, 산골짜기에는 어둠이 몰려왔다. 새와 짐승들은 모여들어 구슬프게 울면서 오르내렸다. 둘은 큰 잔에 술을 따라 무덤 위에 뿌리고 서로 마주 보고 통곡하였다. 통곡을 마치자 거문고를 안고서 제각기 자기가 배운 것을 연주하였다. 연주를 채 마치지도 않았는데 백양나무에서 처량한 바람이 일어나 우수수 소리를 내었다. 둘은 거문고를 던지고 다시 대성통곡하였다. 길가를 지나던 사람들은 누구도 그들이 왜 그러는지를 몰랐다.”

남원군은 스승의 장례를 치르고서 이런 시를 지었다.

백아(伯牙)의 거문고를 막 청산에 묻었으니

천하에는 이제부터 옛 음악이 끊어졌네.

필마로 홀로 왔다 다시 홀로 떠나면서

몇 줄기 눈물만을 가을 하늘에 뿌리노라.

※ 하응백 서도소리 진흥회 이사장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옥봉의 몽혼’(2009)등 20여 권의 편저서가 있으며 ‘창악집성’(2011)이라는 국악사설을 총망라한 국악사설 해설집을 펴내기도 했다.

2002년 ‘휴먼앤북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하 이사장은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를 취득했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민대학교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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