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떼처럼 달려드는 글로벌기업들

[이코노뉴스=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누가 도시바(東芝)를 품에 안을 것인가.

세계 2위의 낸드플래시 제조 업체인 일본의 도시바가 미국 원자력발전 사업의 대규모 손실로 자본잠식 위기에 빠지자 알짜사업인 반도체 사업마저 시장에 내놨다.

최대 관심은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이다. 최대 25조원대로 추정되는 인수전에서 도시바를 먹으면 삼성전자와 함께 낸드플래시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이동준 교수

낸드플래시는 D램과 함께 메모리 반도체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분야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메모리 반도체로,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의 저장장치에 주로 쓰인다.

특히 정체된 D램과 달리 낸드플래시는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큰 폭으로 시장이 확장되면서 반도체 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각광받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는 1GB(기가바이트)로 환산한 낸드플래시 출하량이 2015년 822억 개에서 2020년 5,084억 개로 늘며 연평균 4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1987년 낸드플래시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원조 기업이 바로 도시바다. 하지만 2006년 원전사업 확대를 위해 인수한 미국 웨스팅하우스(WH)에서 수조원대 손실이 발생하면서 도시바는 주력 사업인 반도체 사업부를 매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당초 도시바는 반도체 사업의 지분을 20% 미만으로 매각하겠다며 제안서를 받았으나 미국 원자력 발전 사업에서 추가 부실이 드러나자 “지분을 100%까지 매각할 수 있다”고 완전히 꼬리를 내렸다.

도시바는 4월 1일 반도체 사업 부문을 ‘도시바 메모리’로 분리하고, 이를 인수할 매수자를 상대로 이달 29일까지 인수의향서를 받아 오는 6월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내년 3월까지 매각을 완료할 계획이다.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을 누가 인수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순위 변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지난해 낸드플래시 시장은 삼성전자가 점유율 35.4%로 1위를 굳힌 가운데 도시바(19.6%), 웨스턴디지털(15.4%), 마이크론테크놀로지(11.9%), SK하이닉스(10.1%)가 각각 분점하고 있다.

지난 8일 시장조사 기관인 디램익스체인지(DRAMeXchange)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낸드 플래시 메모리 매출이 141억1000만 달러, 도시바는 78억8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낸드 플래시 메모리 매출은 전년 대비 34 % 증가한 반면 도시바는 18.4 % 증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를 추격하는 후발 주자들이 도시바를 차지하면 삼성전자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지배력을 늘릴 수 있는 구도다.

도시바에 군침을 흘리는 인수 후보와 업체 간 제휴설도 무성하다. 1차 입찰에만 SK하이닉스, 애플의 아이폰을 조립하는 폭스콘, 미국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웨스턴디지털(WD), 사모펀드 실버레이크 등이 대거 입질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6일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에 대한 답변 공시로 "도시바로부터 새로운 지분 매각 방안을 제안받았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3일 도시바로부터 분할되는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일부 지분 인수에 대한 구속력 없는(Non-binding) 제안서를 제출한 바 있고, 이후 도시바로부터 새 지분 매각 방안을 제안받았다"며 "최종 입찰 참여 여부가 확정되는 시점 또는 6개월 이내에 재공시하겠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미국의 IT(정보기술) 공룡들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도시바 메모리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 쇼죠 사이토 도시바 전 수석부사장이 지난해 5월 26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세계반도체협의회 총회' 에서 포스터를 붙이고 연설을 하고있다./뉴시스 자료사진

현재 애플은 자사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낸드플래시의 대부분을 도시바와 SK하이닉스에서 공급받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순현금이 182조원에 달해 인수 여력도 충분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애플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한국과 중국, 대만, 미국 업체들이 각축을 벌이는 경쟁 구도에 자천타천으로 거명되는 글로벌 전자회사들이 합종연횡과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후보군을 점점 불리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그만큼 도시바라는 매물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이미 도시바 구조조정 와중에 백색가전은 중국의 메이디가, 영상센서 반도체는 소니가, 의료기기는 캐논이 사들이며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로 삼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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