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당장 나라 경제가 도탄에 빠질 것 같이 들썩이던 일본 문제까지 말아먹는(?) 걸 보니 조국 대전이 가히 치열하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

그 개인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던 나로서는 뭐 그렇겠지, 그리 했겠지 싶었는데 길길이 뛰는 이들이 많아 놀랐다.

뭐지? 이 치솟는 정동 에너지는?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은 그이가 토해낸 신트림에 놀라 앵돌아진 건가? 조국 사안은 누구든 한 마디 보탤 수 있는 개인 도덕성 문제로 납작해졌다.

그리고 높은 도덕 기준을 내세우면 저는 그렇게 산 것으로 되는지 경쟁적으로 엄격하다. “비방을 가하는 주체는 이를 자신의 위트와 웅변술, 정치적 양심을 과시하는 기회로 삼”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0월호 10면)

검찰개혁은 뭐랄까, 시민 인권을 보호하고 갈등의 민주적 해결을 제고한다는 궁극목적이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권력 기관의 권력 재분배 문제로 보이고 그러니 계급 모순에 의거해 볼 문제는 아니고 그러니 ‘도련님’께 맡겨도 될 것 같고 (선수교체하려 해도 이 상황에 누가 나서겠는가), 잘 할지 말지는 그야말로 권력투쟁에 달려 있으니 예쁘지 않아도 그에게 힘을 보태줘야 할 것 같고, 그러고 나서 구386들은 싹 다 물러났으면 좋겠다.

추석 때 놀랐던 것은 누구 한 명 조국의 조자도 입에 담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붙이들과 그 배우자들이 한데 모여 한바탕 토론? 싸움?에 집집마다 시끄럽겠지, 아 지겨워, 이랬는데 말이다. 너무나 생각들이 다르고 대립이 극단적이라 서로들 싸움의 뇌관을 건드리지 말자는 묵계가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나의 진실이 왜 남에게는 진실이 아닌가, 뭐 그런 고민을 하기 마련. 일본 작가의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거짓과 혐오는 왜 일상이 되었나>가 최근 나왔고 이 분야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가 새삼 주목받는 모양이다.

▲ 저자 시라이 사토시, 우치다 다쓰루역자 정선태출판사 우주소년

그런데 나는 일본 관련 책을 읽는 차분한 지성을 구가했다. ㅋㅋ

<사쿠라 진다>는 섹시한 제목에 끌려 읽었는데 드문 흡인력을 발휘한다. 원제는 일본전후사론. 레닌 연구로 시작하여 <영속패전론>을 써 주목받는 시라이 사토시와 노장 학자 우치다 다쓰루가 대담을 한 것인데 우치다 다쓰루는 푸코, 바르트, 라캉 등을 연구한 불문학자인데도 둘 다 사용하는 어휘가 소박하여 잘 읽히면서 전후 일본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고갱이를 제공한다. 심리적인 설명이 과해 후반부는 좀 긴장감이 떨어진다.

영속패전론이란 전후 일본을 영속패전 체제로 보는 것이다. 첫째 심리적으로, 자기들이 태평양 전쟁에서 졌다는 것을 부인한다. 패전이라 하지 않고 종전이라 한다. “너무나 비참한 패전이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사쿠라 진다>, 20쪽) 그리고 자기들이 저지른 온갖 전쟁범죄와 보고 들은 참상을 다음 세대에게 발설할 수 없었다. 부인하니 패전은 정리 극복되지 않고 계속 유지된다. 영속패전이다.

그러니 “그로부터 50년이 지나 이웃 나라 사람이 ‘전쟁 책임을 어떻게 다룰 생각이냐?’고 따지고 들면 깜짝 놀라곤 했지요.”(<사쿠라 진다>, 93쪽)

부인의 유일한 예외, 그러니까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죄를 담고 있는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는 “일본은 파시즘 체제를 반성하고 성찰한 국가라는 픽션이 국제사회에서 유지되게” 하여 국익에 막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앞 책, 83쪽)

▲ 1945년 8월 15일 일본 국민들이 도쿄에 있는 일본 천황 거주 황궁 앞에 엎드려 천황의 종전 선언 방송을 듣고 있다.【도쿄=AP/뉴시스 자료사진】

둘째, 체제라는 면에서 영속패전이란 패배한 자들이 존속하여 패배한 체제를 유지하는 것. 전쟁의 최고 최종 책임자인 천황이 책임지거나 하다 못해 갈리지도 않았고 천황제가 존속되었으며 전쟁을 치른 지배집단은 그대로 권력을 유지했다.

셋째, 그런 체제가 성립, 유지된 것은 승전국인 미국이 봐줬기 때문이다. 일본 쪽에서 말하면 철저한 대미종속을 살 길로 여겼다. 미국이 협박하며 강제한 헌법을 받아들였고 미국 중앙정보국(CIA) 자금을 받아 만든 게 자민당이며 누구 땅인지도 모를 오키나와를 미군에 내주었다. “일본은 미국의 속국”이다. (앞 책, 180쪽)

“호헌 좌파가 말하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평화헌법’은 ‘우리는 원자력이 내뿜는 햇볕을 즐기고 있다(We have been enjoying your atomic sunshine)’(GHQ-연합국총사령부, 휘트니 준장)라는 강렬한 협박 문구와 함께 부여됐다. 전후 헌법에 뉴딜 좌파 관료들의 순진한 이상주의가 담겨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이상이라는 것은 일본이 미국에 두 번 다시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게 하려는 미국의 노골적인 국익 추구와 결부돼 비로소 현실화한 것이다”(<영속패전론>, 136-7쪽)

저자들 말로, 일본은 종속국이면서 독립국인 양 한다. 대미종속을 통한 대미자립 노선이란다. 천황을 보필 또는 익찬 하듯 미국의 뜻을 추측하여 따랐는데 그 추측이 미국의 생각과 맞아 떨어져 탄탄대로를 걸었다.

▲ 저자 시라이 사토시역자 정선태출판사 이숲

진정한 동반자 관계라고 착각할 수 있었다. 미국이 쳐준 실드 속에 착실히 성장하여 경제대국이 되었다. 양가감정이 없을 수는 없을 것. 과잉동일시와 앙심, 이를테면 “언젠가 잠든 미국의 목을 베기 위해 미국에 붙어서 잔다.” (<사쿠라 진다>, 171쪽)

아베 신조 총리는 왜 폭주하는가? 이러한 영속패전 체제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부인 체제 속에 자족할 수 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변했다. 냉전체제에서 누리던 일본의 전략적 중요성은 약화되었다. “미국이 펼치는 세계전략에서 일본을 이용하는 방법”이 바뀌었다. 내심 다른 전선에서의 전쟁이고 거기서는 이기고 싶었던 경제전쟁 결과, 미국은 일본을 피후견인이 아니라 경쟁자로 보게 되었다.

그런데도 일본은 자기목적화한 대미종속을 외교 안보 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문제는 이제 미국의 생각이 일본인의 짐작과 달라졌다는 것. 아베의 역사 수정주의에 대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혐오를 드러낸다. 잠잠하던 아시아 국가들의 전후책임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경제성장의 경우 그것이 자기목적화하여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불행해져도 괜찮다”고 되기에 이르렀다. 그 증거로 후쿠시마 원전 재가동을 들 수 있다.

저자들이 결정적 분기점으로 보는 것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그 처리 과정. 일본이 바뀌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거셌지만 역시 바뀌지는 않는다로 분위기가 흐르고 위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치달아 결국 부인의 대제전, 2020 도쿄올림픽으로 귀결되고 말았다고.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2016년 10월 23일 도쿄(東京) 네리마(練馬)구 아사카(朝霞)주둔지에서 열린 육상자위대 사열식에 참석해 오픈카를 타고 행진을 벌이고 있다. 아베 총리 뒤쪽에 한 자위대원이 자위대의 상징인 욱일기를 들고 있다. 【도쿄=AP/뉴시스 자료사진】

게다가 극단으로 치닫는 일본인의 심성이란 게 있어 “이왕이면 아베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하여 화려하게 부서지게 하는 쪽이 스펙터클하고 재밌겠다고 국민은 생각합니다.”(앞 책, 249쪽) 정말 일본이 이렇게 막 나가면 큰일이겠다. 이 놈의 나라 콱 망해버려라 하는 심성이 메이지 유신 후 내전과 거기서 패한 쪽을 억압해 온 일본의 저변에 흐른다는데.

사족. 저자들은 프랑스가 전승국이 아니라 패전국이며 그 나라 역시 패전을 부인하고 일본보다 상당히 성공적으로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가 연합국이 아니라 추축국이었다는 얘기.

내가 읽은 2차대전사에서는(앤터니 비버, <제2차 세계대전>) 프랑스가 거의 싸우지 않고 항복하여 독일이 동부전선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줬고 파괴하지 않고 내 준 차량과 무기들이 독일에게 상당히 유용했다고 본다. 오죽하면 마르크 블로흐가 <이상한 패배>라고 했을까. 상당히 신빙성 있는 얘기.

※ 김미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려대, 홍익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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