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국악가사 이야기

[이코노뉴스=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 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경기잡가 중에 ‘풍등가’라는 노래가 있다. 1930년대 초에 소리꾼 최정식(崔貞植)에 의해 시작된 노래라고 한다. 여러 가지 볍씨와 잡곡의 이름을 들어가면서 땀 흘려 지은 곡식을 추수하는 농부의 즐거움을 흥겹게 읊고 있다.

가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조선 헌종 때의 정학유(정약용의 둘째 아들)가 지은 ‘농가월령가’의 형식을 축약하고 1930년대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정식(1886년∼1951년)은 일제 강점기에 활약한 시조·가사·경서도 소리의 명창이다. 경기소리의 중시조(中始祖)라 칭하는 최경식(崔京植)과 최상욱(崔相旭)을 사사하여 경서도창에 능하였다. 작곡과 작시에도 재질이 있어 ‘금강산타령’, ‘풍등가’를 작사, 작곡했다고 한다.

‘풍등가’는

국태민안(國泰民安) 시화연풍(時和年豊) 연년(年年)이 돌아든다

황무지 빈터를 개간하여 농업보국(農業報國)에 증산(增産)하세

로 시작한다.

‘국태민안’이나 ‘시화연풍’과 같은 말은 조선 시대부터 사용하는 말이었으나 ‘농업보국’이란 말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식된 말이었다. 물론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업생산력을 증대시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 말에는 묘한 함정이 숨어 있다. ‘보국’이란 말 그대로 “나라가 베풀어 준 은덕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이때의 나라란 조선 왕조가 망했기에 결국은 일본이며, 일본의 천왕이 된다. “천왕의 은혜를 갚기 위해 열심히 농사짓자”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일제는 식민지 침탈을 더 가속화시키고 조선의 군수병참기지 역할을 철저히 하기 위해 각종 보국 사업을 했다. ‘농업보국’, ‘축산보국’, ‘생산보국’ 같은 용어를 통해 식민 지배의 약탈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던 것이다. 특히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침탈은 더 가속화되어 ‘조선농업보국청년대’를 조직하여 우리 민족의 노동력을 최대한 착취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 한소리예술단이 지난 2012년 경기소리연구회 주최로 경기 군포시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추계 정기공연에서 풍등가를 부르고 있다.(사진=네이버 캡처)

물론 최정식이 이러한 일제 침략 당국의 속셈을 간파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풍년을 기리는 단순한 마음에서 이러한 가사의 노래를 작곡했을 것이다.

이 노래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밥맛 좋기는 다마금(多摩錦)이요

쌀이 좋긴 곡량도(穀良稻)라

여주(驪州) 이천(利川)의 옥자강(玉子糠)이

김포(金浦) 통진(通津) 밀다리며

라는 대목이다.

‘다미금’, ‘곡량도’, ‘옥자강’, ‘밀다리’ 등은 벼 품종의 이름이다. 1931년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여주 이천의 옥자강이나 김포 통진의 밀다리”가 밥맛은 대단히 좋은데 장려하지 않는 품종이어서 구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기사가 보인다. ‘다미금’은 전라북도에서 요즘도 일부 재배하는 품종으로 역시 밥맛이 좋기로 이름나 있다. ‘옥자강’이나 ‘밀다리’는 궁중에 보내는 진상품이기도 했다.

최정식의 ‘풍등가’에는 당시 밥맛 좋기로 소문난 여러 벼 품종을 나열했던 것이다. ‘풍등가’는 여러곡식의 맛있는 종자를 거론함으로 인해 농업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가사로 보인다. 가을에는 추수한 밥맛 좋은 쌀밥을 먹으면서 ‘풍등가’를 들어봄직도 하다.

 

※ 하응백 서도소리 진흥회 이사장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옥봉의 몽혼’(2009)등 20여 권의 편저서가 있으며 ‘창악집성’(2011)이라는 국악사설을 총망라한 국악사설 해설집을 펴내기도 했다.

2002년 ‘휴먼앤북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하 이사장은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를 취득했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민대학교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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