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현우 텍사스A&M대학교 교수] 라이브 방송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에 대한 다시 보기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비디오 테이프가 사용되기 시작한 1950년대 중반부터다. 당시 다시 보기 장면을 만들기 위한 기계가 500kg에 육박했다고 한다.

▲ 이현우 텍사스A&M대학교 교수

프로 스포츠 가운데 다시보기를 가장 체계적으로 도입했던 건 미식축구다.

찰나의 순간에 경기의 흐름이 뒤바뀔 수 있는 미식축구의 특성상, 중요한 장면들을 즉흥적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되면서 시청률도 오르고 편파판정도 줄었다.

경기를 직접 관람하다가 찰나의 순간을 놓쳤을 때 미식축구 팬들은 자연스레 다시보기 화면을 기대한다. 카메라에 잡힌 경기장면을 느린 영상으로 보면서 의문이 풀리고 희비가 갈리는 그 순간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새로운 기술과 경기의 특성 간의 궁합을 잘 맞추어 융합시킨 결과다.

비디오 판독은 이제 스포츠에서 필수로 적용되는 기술이 되었다. 프로 리그가 존재하는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에서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심판의 오심을 줄이고 공정한 경기를 만들기 위해 도입된 VAR(Video Assistant Referees) 제도는 99%에 가까운 확률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VAR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면 유독 축구팬들의 불만이 커보인다. 가장 큰 불만은 경기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다른 종목들과 다르게 축구는 정해진 휴식시간이나 작전타임이 따로 없다.

매회 또는 투수교체 시마다 경기가 중단되는 야구나, 4쿼터 마다 그리고 작전시간마다 경기가 중단되는 농구와는 다르게 축구의 경기시간은 계속 흐르는 방식이다. 경기지연에 따른 추가시간이 계산되어 적용될 뿐이다.

이러한 축구의 특성에 따라서 다른 종목에 비해서 축구팬들의 VAR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게 당연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VAR을 적용할 수 있는 4가지 경우를 규정하였는데 득점여부, 페널티킥, 레드카드, 그리고 징계해야 할 선수를 식별해야하는 상황에서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적용키로 하였다.

▲ 미국 프로풋볼(NFL)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지난 2월 3일(현지시간) 미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메르세데스-벤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슈퍼볼 53 풋볼 경기에서 LA 램스를 꺾고 우승하며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패트리어츠는 LA 램스를 13-3으로 꺾고 통산 여섯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며 모두 빌 벨리칙 감독 부임 이후 거둔 우승이다. 【애틀랜타=AP/뉴시스 자료사진】

관련 통계만 따져보면 VAR의 개입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우선 간단한 VAR 확인은 대부분 20초 정도 걸렸고, 정밀 판독 리뷰는 60초 정도 걸렸다.

간단한 VAR 확인은 한 경기당 다섯번 미만이었고, 69%의 경기는 아예 정밀 판독 리뷰가 없었다. 두 번 이상 정밀 판독이 실시된 경기는 5.5%에 불과했다. 경기 당 VAR로 인한 평균 경기지연 시간은 55초로, 9분에 가까운 프리킥이나 6~7분에 가까운 골킥과 쓰로인, 그리고 3분 정도 경기를 지연시키는 교체에 비해서 매우 짧은 편이다.

더 나아가 기존에 오심으로 인한 항의시간을 따져보면, VAR이 더욱 정확하고 신속한 진행을 돕는다는 분석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축구 전문가 사이에서도 VAR의 정착은 시간의 문제일뿐 필연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왜 축구 팬들의 불만이 큰 걸까?

▲ 지난해 6월 27일(현지시간) 오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3차전 대한민국-독일의 경기, 한국 김영권(19번)이 골을 넣었지만 오프사이드 판정이 내려지자 선수들이 미국의 마크 가이거 주심에게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고 있다. 이 골은 심판의 비디오 판독 결과 골로 인정됐다. 【카잔(러시아)=뉴시스 자료사진】

가장 큰 이유는 VAR 판독 시행 여부에 대한 권한이 주심에게 주어진 것이다. VAR이 아무리 정확하더라도 주심이 비디오 판독을 시행하지 않으면 시비를 가릴 수 없다. 행여 한쪽에게는 VAR의 기회가 주어지고 다른 쪽에게는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팬들의 분노는 더욱 치솟는다.

편파판정을 줄이고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객관적인 기술을 또 다시 심판의 판단이라는 주관적인 영역 아래에 둔 것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는 평가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경기가 지속되는 축구의 특성상 야구나 테니스처럼 양팀에게 VAR 요청 횟수를 부여하기도 어렵고, 경기장의 심판으로부터 독립된 지위를 VAR에 부여하기에는 아직까지 마땅한 기술적 해법이 마련되지 못한 것 같다.

축구는 근대화된 스포츠 가운데 가장 오래된 종목이지만 프로 스포츠 가운데 비디오 판독 시스템이 가장 늦게 적용되었다.

그리고 아직 VAR을 사용하는 방식이나 팬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되지 못했다.

▲ 지난해 6월 27일(현지시간) 오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3차전 대한민국-독일의 경기, 한국 김영권(19번)이 골을 넣고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주심은 미국의 마크 가이거.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은 이 골은 심판의 비디오 판독 결과 골로 인정됐다. 【카잔(러시아)=뉴시스 자료사진】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U-20 월드컵만 돌아보더라도 어떤 이유나 상황에 관계없이 손에 공이 맞은 것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선수들이 손을 들면서 VAR 적용 상황임을 암시하는 행동을 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골을 넣고도 VAR이 선언되면 그 흥분이 불안감 혹은 안도감으로 반감되는 현상도 있었다. 모두 팬들의 몰입과 즐거움을 저해 시킬 수 있는 부분이다.

현대 스포츠의 규모가 유지되는 큰 원동력은 팬들의 응원에 있다. 특히 팬들 없이는 프로 스포츠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마케팅의 관점에서 스포츠의 틀이 바뀌는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면 팬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 시각이 늘 반영되어야 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공정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만큼, 고도화된 기술로 팬들의 경험 또한 향상시키려는 고민이 필요하다.

축구에서 첨단기술과 스포츠 간의 궁합이 최적화 되기 위해서 축구관련조직, 팀, 선수, 그리고 팬, 모두가 공유하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하는 이유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