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현우 텍사스A&M대학교 교수] 미하엘 슈마허.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최첨단인 머신들이 경쟁하는 F1(포뮬러원)을 제패한 황제. 그는 총 91번의 F1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였고, 7회 F1 시즌 챔피언을 달성한 독보적인 레이서다.

▲ 이현우 교수

F1 팬들은 2019년 초를 그의 50번째 생일(1월 3일)과 함께 맞이하였다. 슈마허가 5년 연속 챔피언이라는 전무후무할 기록을 달성하고 가장 오랜기간 몸 담았던 팀 페라리는 그의 생일을 기념하며 "Michael 50"라는 이름의 박물관 전시회를 열었다.

다양한 사진들과 함께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 전시회에서는 매년 그가 탔던 F1 머신들과 자가용으로 탔던 페라리들 그리고 그의 헬멧도 전시되었다.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그 영광의 순간들을 함께했던 한 스폰서의 로고가 전시 차량들에서는 지워져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머신들과는 대비되게, 그의 헬멧에는 선명하게 필립 모리슨 회사의 대표 브랜드인 말보로 로고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F1 차량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광고판으로 볼 수 있다. 수백만불의 스폰서 계약을 맺은 기업들은 차량의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로고(리버리 킷)를 부착하게 된다.

F1의 어필은 간단하다. 가장 빠른 속도와 기술의 향연이 빚어내는 말초적인 감각이다. 세계적인 물류회사, 항공사, 타이어 회사, 고급시계 브랜드, 엔진 오일 회사와 주류회사 등이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차량에 담배와 주류와 관련된 광고는 차량에 부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와 주류회사들이 스폰서십을 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담배회사들과 주류회사들은 20세기 중후반부터 F1의 주요 스폰서였다. 특히 말보로는 페라리와 로고 색깔도 맞아서 아주 긴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1972년부터 파트너십을 발전시키며 1997년에는 공식 팀명을 스쿠데리아 페라리 말보로로 바꿨다. 2011년에 공식 팀이름에서 말보로가 제외됐지만, 작년에도 스폰서십을 2021년까지 연장했다.

F1은 버니 에클스턴 회장의 협상력으로 다른 스포츠들보다 오랫동안 담배 및 주류광고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2006년에 이르러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담배 및 주류광고가 전면 금지됐다. 그때 팀 페라리와 말보로가 선택한 방법을 돌아보자.

페라리는 말보로의 로고를 표시할 수 없게 되자 해당 자리에 어떠한 광고도 넣지 않는 대신 빨갛고 흰색으로 칠해진 바코드를 부착한다.

▲ 미하엘 슈마허가 지난 2012년 10월 27일 슈마허가 인도에서 열린 F1 그랑프리에 참가해 연습하고 있다./AP=뉴시스 자료사진

사람들은 머신의 속도 때문에 바코드가 말보로 로고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있다고 하였지만, 페라리 측은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말보로 로고가 절대 아니지만, 리버리 킷의 위치나 색깔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말보로를 연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케팅에서는 이처럼 잠재의식(subconscious)에 각인된 기억이 더 큰 효과를 가진다는 연구들이 있다. 사람의 뇌는 끊임없이 범주화를 통해 사물이나 현상을 인식하는데, 리버리 킷의 위치와 색깔이 말보로 로고와 연동이 되었다면 기가 막힌 홍보 방법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속도와 색깔이 추상적으로 결합되는 형태로 감각과 함께 기억된다면 말보로와 페라리가 향유한 기록의 역사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공식 스폰서이면서도 잠복(ambush) 마케팅과 같은 전술을 택한 페라리와 말보로. 그들은 여전히 바코드 리버리 킷에 대해 일부러(?)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색깔과 추상이 버무러진 잠재의식 안에서 브랜드를 인식시키려했던 그들의 시도는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이다.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페라리와 말보로가 언제까지 스폰서를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페라리와 함께 필립 모리스의 스폰을 받았던 멕라렌 팀은 올해 또다른 F1의 전설인 아일톤 세나를 추모하며 McLaren P1 GTR를 1대만 한정제작하였다.

말보로가 1996년 이후로는 멕라렌 스폰서십을 끊고 페라리에만 전념하였음에도, 이 한정판 슈퍼카에는 말보로를 연상시키는 로고가 삽입되었다. 아마도 전설적인 아일톤 세나의 주행 모습에 그 로고가 항상 연상되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 미하엘 슈마허가 지난 2006년 7월16일 프랑스 에서 열린 F1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뒤 우승컵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AP=뉴시스 자료사진

스피드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꿈과 노력이 담긴 F1의 역사에는 그 복잡한 머신의 특성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녹아들어있다.

올해 초 전세계의 다양한 레이싱 경기의 각 챔피언들이 미니 레이스에서 경합을 벌이는 Race of Champions에서는 미하엘 슈마허의 아들 믹 슈마허가 현재 F1의 정상급 선수인 제바스티안 페텔을 이겨버렸다.

작년 유로 F3 챔피언으로서 올해 F2에 진출한 믹 슈마허가 장차 F1에 입성하게 된다면, 아빠와 삼촌에 이어 집안의 세번째 F1 드라이버가 된다.

대를 잇는 레이싱의 명문가를 세운 미하엘 슈마허의 쾌유를 바라며 그가 아들의 성장을 건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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