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고향인 충북 영동은 예전에는 곶감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전국 유일의 와인산지로 이름이 나 있다.

▲ 남영진 논설고문

서울역에서 매주 특별열차 ‘와인트레인’이 떠난다. 남녀 중고등 동창회모임은 물론 부부들도 많이 이용하는 특별열차다. 서울역에서 경부선으로 2시간 남짓하면 도착할 뿐 아니라 차안에서 영동의 각 와이너리에서 만든 포도주가 무한 제공된다. 요즘 많이 유행하는 치즈와 영동산 곶감, 감또개(감을 쪼개어 말린 것), 호두를 넣어 말은 곶감 등 안주도 쏠쏠하게 맛이 있다.

영동역에 도착하면 버스를 타고 우리나라 첫 와인 공장인 ‘샤토 마니’를 방문하고 세종시대 우리나라 아악을 집대성한 이 고장 출신 박연선생을 기리는 국악당에서 국악연주를 듣는다. 겨울에는 호도곶감과 표교버섯, 여름에는 신선 포도와 블루베리 등을 한아름 사서 돌아오는 여정이다. 철도청이 철도여행 활성화를 위해 정선 전통장이나 단양 마늘시장 등을 돌아오는 여로를 개발하면서 가까운 영동의 와인에 착안한 인기여정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서 영동의 와인과 곶감, 호도, 표고버섯 등 특산물을 파는 영동물산전이 그 추웠던 지난해 말 12월 27~30일 안국역 근처서 있었다. 군 단위 농축산 물산전이 도심 한복판에서 열린 것은 처음 같다. 3호선 안국역에서 북촌 쪽으로 나와 걸스카웃회관까지 천막을 치고 영동 곶감, 호두, 포도주 등을 팔았다. ‘상생상회’라는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상설전시장 앞이다.

도심에서 군단위의 물산전을 여는 것은 특별 이벤트를 할 때 청계광장, 시청앞 광장, 광화문 광장에서의 전국 음식잔치 정도이다. 이날 이 행사를 기획한 이홍기사장은 4H전국회장을 역임한 농민운동가다. 고향 매곡에서 농산물가공공장을 운영하며 아직도 농민들이 도시에 직판체제를 갖출 수 있도록 플랫폼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행사에 재경영동군민회 이상의회장, 이대영 사무총장등 임원들이 함께 했다.

▲ 지난해 말 서울도심에서 열렸던 영동물산전에 참석한 재경영동군민회 임원들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대영사무총장, 이상의 회장, 김길연 박사, 주최자인 이홍기씨.

필자도 80년대부터 20여 년간 근처 한국일보에 다녀 안국동, 인사동쪽이 친근해 황간초등학교 후배인 이 사무총장 격려차 행사장을 찾았다. 천막 매장에서 감말랭이와 매곡면의 와인 2병을 샀다. 상가 안 대기실에서 용화면 출신의 김길연 서경대교수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초등학교 졸업후 고향을 떠나 한 번도 가보지 못해 이런 재경행사에는 꼭 참석해 고향냄새라도 맡아본다고 말한다. 와인판매대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음날 재경 황간면회장인 정보규, 전회장인 손범식박사 부부등 출향 손님들이 많이 찾아온 것을 카톡 사진을 보고 알았다.

영동군은 지난해 12월 10일-12일 경부선의 종점인 부산역에서 곶감판매를 시작해 14일~16일 경부선 중간지점인 영동 하상주차장에서 영동곶감축제를 열어 관광객들을 맞이했다. 3일간의 영동곶감축제에 전국에서 2만8500여명의 관광객이 찾아 예약판매금인 2억2000만원을 합해 5억9000만원 어치를 팔았다 한다.

영동곶감연합회는 19~21일 서울용산역 판매행사까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특판행사 매출액이 당초 6억9000만원 예상액보다 약13.6%가 늘어난 7억8400만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행사장에는 박세복 군수를 비롯해 영동군 홍보대사인 뽀빠이 이상용 씨, 방송인 전원주 씨 등이 홍보요원으로 나서 낱개 포장한 시식용 곶감을 나눠주었다.

군은 영동곶감연합회와 함께 12월마다 영동읍에서 열었던 곶감축제와 연계해 대도시 판촉행사로 도시민들을 공략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인 안국동 세밑 영동물산전이 한해의 마감인 것이다. 영동곶감은 쫄깃한 식감과 달콤한 맛, 저렴한 가격으로 도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행사장이 북새통을 이뤘다. '경기침체'로 시름하는 곶감 농가들의 실질적인 소득증진과 판로확보의 계기가 됐다.

영동군은 전국 감 유통량의 6%(충북도의 78%)가 생산된다. 영동은 조선시대부터 경북 상주, 경남 산청 등과 함께 손꼽히는 곶감 산지다. 예로부터 태백산맥지역인 영덕 안동 예천에 이어 같은 위도인 소백산맥에서 덕유산,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상주, 영동, 논산, 완주 등의 곶감이 유명했다. 따뜻한 지방에서 잘되는 감이지만 남삼도(충청 경상 전라도)에서는 중간지역인 이 일대 곶감이 유명했다.

남쪽으로 가면 함양, 산청, 함안 등의 지리산록에도 전통 감이 많고 하동, 광양 등 바닷가쪽으로 가면 개량종인 ‘대봉시’가 잘 된다. 임진왜란이후 왜군이 5~6년간 점령했던 울산부터 김해 진영 순천까지는 왜감인 단감을 많이 심었다. 대봉시나 단감은 곶감을 만들지는 못한다. 홍시로 먹거나 날것으로 그냥 먹는다. 전통감은 2가지 종류였다. 갸름하게 긴 감을 ‘뾰조리(뾰족)감’이라 불렀고 조금 낣작한 감을 ‘따바리(또아리)감’이라 했다.

홍시로 잘 먹는 경북 청도의 반시(盤柿:쟁반같이 생긴 감)가 ‘따빠리감’이다. 시골아낙네가 물동이를 일 때 머리위에 받치는 똬리(또아리)의 경상도 사투리다. 뱀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그 똬리다. 뾰족하게 생긴 뾰조리감은 둥시와 대봉시로 개량됐다. 감나무는 심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야생인 고염나무에 접을 붙여 감나무 묘목을 만든다. 제사상에 올리는 전통 곶감을 만들어온 영동지역 감농사도 한물갔었으나 ‘반건시’‘감또개’(쪼개서 말란 감)등 제품 다양화로 그 명맥을 되찾고 있다.

60년대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던 박두진시인의 ‘영동을 지나면서’라는 수필을 배운 60대 이상은 고향이 영동이라면 “읍내 가로수가 감나무라면서요?”라고 반긴다. 깊은 산골의 차갑고 신선한 바람이 만들어 과육이 차지고 쫄깃한 영동 곶감이어서 고급화로 상품경쟁력을 높였다. 영동이 ‘감고을’을 넘어 ‘코리아 와인’의 성지까지 되고 있어 흐뭇하다. [이코노뉴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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