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아들이 군에서 제대했다. 아들 군대 가 있는 동안 집 앞에 태극기를 달아 놨다는 사람도 봤지만(무슨 심정인지 알 듯 모를 듯.) 나는 ‘엄마 맞아?’ 소리 들을 만큼 덤덤했다.

한 친구는 자식이 군대 들어갈 때 울고 불고 하진 않았지만 그 녀석이 입고 들어간 옷 일습이 군사우편으로 올 때는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고 하더만 그 때도 나는 무덤덤했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

돌아온 아들을 맞는 기쁨이 군대 보낼 때의 걱정에 비해 비대칭적으로 큰 걸 보니 걱정이 없는 게 아니라 걱정을 괄호쳐 없애(bracket) 없는 척 한 것 아닌가 싶다. 그러느라 아들 군대 가 있는 동안엔 군에서 사고 난 뉴스를 아예 안 보려 애썼다.

몸 힘든 거야 뭐 원래 그런 거려니 하고 외려 좀 빡셀 것을 은근 바랐고, 치명적인 사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는 식으로 처리했고(정신승리법? 말을 하면 그대로 실현될 것 같은 미신이 나를 사로잡았다.) 남는 걱정거리란 인간관계에 대한 것일 수밖에.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을 무더기로 겪어야 하는 일은 결코 녹녹하지 않을 것. 선임은 어떤 이를 만날 것이며 동기들과는 잘 지낼까 행동이 재바르진 않는데 팀에 폐 끼치진 않을까 등등 생활 상의 모든 것이 걱정거리.

제대할 때 만든다는 롤링 페이퍼(돌아가며 한마디씩 쓰고 사진 붙이고 코팅까지 했다.)를 보니 좋은 말 일색이라 기뻤다. 나가는 마당에 좋은 게 좋다는 덕담일 수 있지만 항상 웃고 화내는 적 없고 먼저 말 걸어주고 이것저것 챙겨주고 서두르진 않으면서 책임을 다한다는 등의 칭찬이 평소 우리가 알던 아들의 캐릭터와 맞아 들어간다.

인간관계를 둘러싼 약간의 노심초사가 다 사라지면서 참 잘 자라주어 고맙구나 했다.

군대에서 공부해 이 불수능의 시즌에 만점을 받은 어느 집 아들도 있더만 그런 아들 하나도 안 부러웠다.

그리고 그건 시험 공부에 최적화된 유전자의 힘이지(학벌 빵빵한 집안이더만!) 군대의 힘이 아니다. (군대의 힘이 그렇게 발휘되어서도 안 되는 것 아닌가?) 너도 군대가서 재수 삼수 공부 하라고 채근하는 부모 생길까봐 하는 말이다.

우리 아들은 남는 시간에 하겠다며 스페인어 초급 책을 사 달라, 혼자 하는 데생 책을 사 놔라, 들어가서 읽겠다며 휴가 때 영어 소설을 무더기로 사기도 하고 참으로 트라이는 다채롭고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결국 끝까지 살아남은 아이템은 운동이다.

3교대 근무로 바이오 리듬이 깨져 좀체 잠을 이룰 수 없어 했으니 처음에는 달리기 등의 운동이 실용적인 도움이 되었으리라. 이제는 좀 심하다 싶게 운동을 하니 걱정이다. 몸의 기능성을 높이는 게 아니라 근육의 볼륨을 키우는 게 주된 목표인 것 같으니 동의도 안 되고 보검도 안 되고.

▲ 경기도 몸짱 소방관 경연대회가 열린 경기 수원 화성행궁 무대 뒤에서 참가자들이 대회 준비를 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단백질 타령 맞춰 주느라 가족의 엥겔 지수가 치솟고 피트니스 센터 비용도 만만치 않다. 무슨무슨 보충제를 사서 부작용 타령하는 엄마 눈 피해 제 방에 숨겨놓고 먹는다. 사람들께 말하니 주위에 그런 아들 여럿 있단다.

내 주변만 그런가 딸 걱정하는 집은 없고 아들 걱정하는 집이 여럿이다. 거의 다 번아웃 증상이다. 병든 닭같이 매사에 의욕이 없고 잠만 처자다가 심심하면 게임하는 아들, 요행이 대학에 합격해 한시름 놨다 했더니 학교에 대한 설렘이 눈꼽만치도 없이 삶의 의미 어쩌고 심오하시기만 한 아들, 군대라도 빨리 갔으면 싶은데 공익 판정 받고 그마저도 좋은 보직 노린다고 매번 지원만 거듭하는 아들 등등.

그러니 운동이라도 열심히 하는 게 어딘가 싶다가도 우리 아들만 그런 게 아니라니 이 또한 유의미한 현상으로 보인다. 왜 젊은 남자들이 근육 만드는데 열심인가. 몸의 외양에 대한 관심은 대대로 여성의 소관사항이었거늘.

이런 뉴스를 오버랩하면 어떤가. 20대 남자의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해 60대보다도 낮다. 반면 20대 여성의 지지율은 가장 높고. 취업 안 되는 것은 여자나 남자나 비슷할 거고 젊은이들 취업 안되는 게 최근 반년의 일이 아닐텐데 말이다.

가부장주의 사회여서 남자들이 기득권자라고 하면 헛웃음 지을 남자들 꽤 될 것이다. 남자라서 뭐 대단히 이득받고 산 기억도 없겠지. 막말로 군대 가 죽고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죽는 건 남자잖아. 똑같이 취업이 안 돼도 어느 집 ‘아들’의 스트레스가 ‘딸’의 스트레스보다 더 심할 것 같다.

젠더 지평에서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랄까, 남성이 권력을 누리느라 의무와 위해도 더 치룬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부분을 깜박 하고 넘어가는데, 권력과 책무는 계급에 따라 비대칭적으로 분배된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남성지배 사회의 권력은 상층계급 남자들이 누리고 지배를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물리적 물질적 뒷감당은 하층계급 남자들이 감당했달 수 있다.

▲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제6회 몸짱소방관 선발대회'에서 어린이들이 소방관의 근육을 만져보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그러니 젊은 남성들이 분개할 대상은 여성이 아니다. 여성들은 새로운 지배자가 아니라 이제 막 억압에 분노하고 일어서기 시작한 정치적 동지들이다. 사태를 명철하게 보려 노력하지 않고 보수화의 길을 걷는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문제를 사회정치적으로 보아 집합적으로 풀려 하지 않고 개인의 문제로 보고 나라도 잘하자 나만 잘 하자로 접근하는 것이 보수화의 길이다. 그 한 결과가 근육질의 마초 꼴보수 청년일 것. 낯설지는 않은 하나의 스테레오 타입이지만 결코 반가울 리 없다.

※ 김미영 칼럼리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려대, 홍익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한 경험이 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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