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만의 대통령부인 단독 해외 초청 방문 ‘당당하고 유쾌한 안방 외교’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나헨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초청으로 11월4일부터 3박 4일 간의 인도를 방문 한 뒤 귀국했다.

▲ 남영진 논설고문

역대 대통령 부인중 혼자 해외를 방문한 것은 2002년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미국 뉴욕 방문에 이어 16년 만에 처음이다.

김 여사가 왜 인도를 방문했는지에 대해 궁금하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그중 재밌는 것은 ‘2천년 전 가락국의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 왕후가 인도에서 왔기 때문에 이번이 답방’이라는 해설이다.

김 여사는 6일 우타르 프라데시(UP)주 아요디아에 조성된 허 왕후 기념공원 착공식에 참석해 고대 가야와 인도 역사의 상징으로 통하는 허 왕후 기념비에 헌화했다. 김 여사는 이번 방문 내내 고대 가야와 인도 간에 허 왕후를 매개로 한 역사적 유대관계를 내세워 우호 관계를 돈독히 다졌다. 문 대통령의 신 남방정책을 언급하며 모디 총리의 신동방정책과의 조화로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모디 총리는 가급적 빨리 방한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김 여사의 이번 인도 방문은 지난 7월 문 대통령의 인도 방문 때 모디 총리가 허 왕후 기념공원 착공식과 힌두교의 전통 축제를 함께 개최하자는 제의에서부터 비롯됐다. 모디 총리가 고위급의 대표단 파견을 요청해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도 수행단에 포함됐다. 김 여사는 지난 6일 러크나우에서 열린 힌두교 최대 전통축제인 디왈리 축제에서 빨간 동그라미 칠을 한 손바닥을 내보여 참가인파로부터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다음날 타지마할 묘 방문일정까지 우타르 프라데시 주의 리타 조쉬 관광부 장관, 모니카 가르그 여성부 차관, 쉬리칸트 샤르마 전력 장관, 랑가나탄 주한인도대사 그리고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신봉길 주인도대사 내외 등이 김여사와 자리를 함께 했다. 타지마할은 무굴제국 5대 황제 샤자한이 총애하던 부인 뭄타즈 마할을 기리기 위해 만든 묘궁으로 세계문화유산이자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의도 제기됐다. 두 나라가 친선을 도모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실존 여부가 불분명한 신화 속 인물의 기념공원 착공식에 국가를 대표한 외교사절단을 보낸다는 게 적절한 일인가에 대해서다. 이광수 부산외국어대 교수(인도학부)의 <인도에서 온 허 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2017, 푸른역사 )라는 책에서의 허 왕후가 인도에서 왔나에 대한 회의론의 연장이다.

▲ 김정숙 여사가 지난 6일(현지시간) 우타르프라데시주 아요디아 허왕후 기념비를 찾아 요기 아디티아나트 주총리와 함께 헌화하고 있다. [아요디아(인도)=뉴시스]

<삼국유사>에 따르면 허왕후는 기원 후 48년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야로 와서 김수로 왕의 부인이 된 인물이다. 허 왕후가 가야로 올 때 파사석탑을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허 왕후의 고향이 인도의 ‘아요디야’라고 기술되어 있다. ‘아요디아’의 한자식 표기가 ‘아유타’다. 지금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 주에는 ‘아요디야’라는 도시가 있다. 이번 김 여사가 방문한 바로 그 도시다. 그런데 아유타가 바로 지금의 ‘아요디야’라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아요디야’라는 도시는 기원 후 5세기 이전에는 존재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허 왕후가 한반도로 건너왔다는 시기와 최소 400년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아요디아는 힌두교의 신화적 서사시인 <라마야나>에만 등장한다. 그러다가 기원 후 5~6세기 무렵에 실제 도시 사케타를 ‘아요디아’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들어 허 왕후가 실제 인도 사람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또한 허 왕후가 인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근거인 김해 납릉(김수로 왕릉)의 정문 단청에 그려진 쌍어문(雙魚紋)도 근거가 희박하다고 주장한다.

또 김해시 구산동의 허 왕후릉 옆 파사(婆娑)석탑을 인도에서 가져왔다는 주장도 반박한다. 허 왕후가 풍랑을 만나 고향으로 되돌아가서 이 탑을 배에 싣고 나서야 안전하게 가락국에 도착했다는 전설이다. 이 교수는 당시 인도에 불탑이라는 게 없었고 당시 항해술로는 돌무더기를 싣고 풍랑을 이겨내 그 먼 거리를 항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고려 시대에 특이한 모양의 돌로 쌓은 탑을 숭배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풍습이 불교와 만나 만들어진 설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김 수로왕릉 정문 단청의 쌍어문(물고기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는 문양)은 조선 정조 때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한다. 허 왕후는 조선시대 15세기 이후 실존 인물로 인식됐다고 한다. 이 교수는 “허 왕후의 역사화는 조선조 양반 가문정치의 산물이다. 격이 높은 성씨인 양천 허 씨가 허 왕후를 적극적으로 높였다.”고 설명한다. 본관을 명예롭게 높이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국제정치에서 이 문제를 제기할 필요는 없다. 문대통령과 모디 총리가 역사로 믿어 ‘사돈의 나라’로 좋아한다는데 왜 문제인가? 나라 간에는 없는 사실도 만들어 우호관계를 과시한다. 허 왕후 전설은 엄연히 우리 역사책인 <삼국유사>에 나온다. 그래서 김 여사의 ‘당당하고 유쾌한 안방 외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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