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요즘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A. Marshall)의 명언이 떠오른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 최성범 주필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면 경제 정책에 있어서의 냉정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뜨거운 가슴만을 앞세운 정책들이 줄지어 실패하거나 아무런 소득없이 끝날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소득주도 성장 정책.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대표적인 정책인 최저임금제는 당초 기대와는 달리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나타냈다. 이는 취업자수에서 잘 드러난다.

올해 상반기 중소기업 취업자 수 증가폭은 2만명을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를 겪었던 2009년 이후 가장 부진한 실적이라고 한다. 영세 사업체의 취업자 수가 지난해보다 11만명 가까이 줄어든 게 영향을 끼쳤다.

종사자 5인 미만 영세 사업체에서 고용 감소가 두드러졌다. 올해 6월 1~4인 사업체의 취업자 수는 전년 같은 달에 비해 10만9000명 줄어들었다. 반면 5인 이상 299인 이하 종업원을 둔 사업체의 6월 취업자 수는 지난해 동월 대비 12만2000명 늘어났다.

자영업자 수도 감소 추세다. 올해 6월 기준 자영업자 수는 570만1,000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1만5000명 줄었다. 특히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는 올해 6월 기준 403만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8만9000명 적은 걸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고용쇼크다. 취업자수가 증가한 보건업, 사회복지, 공공행정, 국방 등 분야는 정부가 만든 일자리를 중심으로 이뤄진 반면 제조업과 도소매·숙박음식업 등 민간 일자리는 감소세가 더욱 뚜렷했다. 제조업 취업자는 계속해서 감소 추세다. 이는 공공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부문의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유통·숙박 음식업은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되기 직전 달인 지난해 12월부터 취업자 수가 감소추세다. 조리사, 매장계산원, 텔레마케터 등 서비스·판매 종사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서민들의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뜨거운 가슴에 기반한 경제 정책이 오히려 서민들에게 피해를 준 것이다.

일자리 정부가 되겠다고 선언한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를 늘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점을 감안하면 실망스러운 결과다. 이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시행 1년만에 한계를 드러냈다는 얘기다.

7월1일부터 시작된 주 52시간 근무제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고 있으나 능히 예견 가능하다. 이미 산업현장에서 상당한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걸 감안하면 제조업 가동율을 떨어뜨리거나 일자리 감소라는 결과로 나타날 게 뻔하다. 기업들로선 추가 인력을 고용할 여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구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빨리 사업을 접거나 해외이전하려고 하는 분위기 확산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4조 3 교대가 가능한 대기업과는 달리 중소기업들은 2조 2교대 체제다. 300인 이하 중기들이 52시간을 준수하려면 조업 단축이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 문재인정부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대표적인 정책인 최저임금제는 당초 기대와는 달리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나타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세종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혁신 성장은 소득주도 성장 전략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이러한 정책들은 ‘일자리 창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이상과 명분을 중시한 결과 나타난 현상이다. 장기적으론 이러한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이상을 추구한다고 애써 현실을 외면해선 곤란하다. 현실을 무시하면 현실 세상의 약한 고리들만 고통을 당하게 될 뿐이다.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경제수석을 교체하고 소득주도 성장보다는 혁신성장, 규제완화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걸 보면 기존 정책이 이상에 치우쳐 현실과 괴리돼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재벌개혁이라는 당위적 명제도 마찬가지다. 한국 경제가 재벌 중심의 성장에서 벗어나야 하고 3, 4세 상속이 한국경제의 앞날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아직 그만한 여력이 없고, 혁신성장은 그 효과를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재벌들을 파트너로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대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 당위론과 현실은 별개의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부회장을 인도에서 만나 일자리 창출을 당부한 것도 이러한 인식변화를 반영한다.

이상은 고결하고 인간적이다. 그러나 이상을 추구한다고 해서 현실을 외면하면 그 결과는 반대가 될 수도 있다. 뜨거운 가슴만으로 안 되고 차가운 머리가 있어야 한다고 명언이 말해준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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