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5월 17일 미국 뉴욕증시에서 제너럴 일렉트릭(GE) 주가는 15.03달러로 마감했다.

▲ 최성범 주필

최저치였던 지난달 9일의 12.83달러에 비해 다소 반등하긴 했어도 2001년 4월 잭 웰치가 회장에서 물러날 때의 60달러에 비하면 엄청난 추락이다.

지난해 8월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퇴진하면서 이같은 모습은 사실상 예고됐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존 플래너리 회장은 지난해 취임 직후 발 빠른 비용 절감에 나서고,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GE 주가는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다가 이제 겨우 바닥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는 정도다. 지난해 10월엔 주가가 하루 6%나 급락하기도 했다. S&P500지수가 상승하는 추세 속에서 GE 주가는 폭락을 면치 못해 충격은 컸다. GE가 잘 나가는 기업의 상징이고 경영의 교과서였던 점과 비교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다.

잭 웰치가 20년간 GE를 이끄는 기간 동안 GE의 시가총액은 120억달러에서 2800억달러로 불어났다. 전구를 발명한 토머스 에디슨의 전기 회사가 모체였던 GE는 NBC 방송과 기관차 생산, 금융, 발전기, 항공기 엔진, 의료장비 등 10여 개 부문으로 다각화한 세계 최대의 복합기업이자 미국의 '아이콘' 기업이 됐던 것과 비교하면 놀랍기만 하다.

잭 웰치가 GE회장에서 물러날 즈음 그는 이미 '경영의 신(神)'으로 추앙받았다. 퇴임 직후 펴낸 자서전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고 전 세계의 모든 기업이 GE를 모범 사례로 삼아 벤치마킹했다. 한마디로 잭 웰치의 경영은 일종의 교과서나 마찬가지였다. 2년 전 미국의 경제 잡지 포천은 '세기의 경영자(Manager of the Century)'로 선정하기도 했다.

▲ 한때 경영의 신이라고 불러웠던 잭 웰치 전 GE회장은 최근들어 추락하는 GE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웰치 전 회장의 이른바 문어발식 확장이 불경기가 도래하자 치명타가 된 때문이다. 잭 웰치 전 회장(사진 앞줄 왼쪽)이 무함마드 유누스 전 그라민 은행 총재등과 함께 지난해 9월 포브스 100주년 행사에 참석한 모습. [뉴욕=AP/뉴시스]

잭 웰치가 물러난 지 18년 만에 벌어지고 있는 GE의 추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러한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단 제프리 이멜트 회장에 화살을 돌리는 듯하다.

그러나 GE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모든 사태는 경영의 신이라는 잭 웰치가 초래했다는 의심을 품기에 충분하다.

사실 이멜트 회장이 GE를 물려받았을 때부터 GE는 보이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실적을 낸 걸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GE 이익의 60%는 GE캐피털에서 내고 있었다. 잭 웰치 본인은 핵심 제조업, 서비스업, 기술 등을 그룹의 미래 비전이라고 제시했지만 알고 보면 금융만 커졌다. 잭 웰치의 경영 성과는 제조업의 기술혁신, 생산성 향상 등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금융산업이 급성장한 덕택에 GE캐피탈이 높은 실적을 올린 착시효과나 크게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금융업의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부동산 거품이 꺼진 여파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GE캐피탈도 직격탄을 맞았다. 그룹의 캐시카우(cash cow)가 골칫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게다가 한 때 ‘프리미엄 복합기업’으로 칭송받았던 백화점식 경영은 시너지 효과는 없고 부담만 키웠다.
결국 이멜트 회장은 많은 이익을 내던 방송사 NBC 유니버설을 2009년 매각한 데 이어 2015년 GE캐피탈 자산의 90%를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잭 웰치 전 회장의 실적을 지탱해준 양대 기둥을 팔아치운 것이다. 이른바 문어발식 확장이 불경기가 도래하자 치명타가 된 셈이다. 물론 이멜트 회장도 비관련 사업에서 손을 떼고 전통적인 제조업을 디지털화하는 디지털 제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하고 혁신에 앞장섰으나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았다. 주가가 하락하자 사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멜트 회장은 발 빠른 변신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잭 웰치 회장의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물러난 셈이다.

후임자인 플래너리 회장도 2018년을 ‘리셋(reset)’의 해로 선언하면서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지만 GE가 경영정상화에 성공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지는 불투명하다.

필자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선 이후 행보를 보면 잭 웰치 회장을 자꾸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핵심 사업의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큰 방향에 대해선 이해가 되면서도 재무적 실적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삼성생명, 화재빌딩을 모두 매각하는 거나, 스포츠 구단을 돈 안 된다고 보는 관점 등이 그 단적인 예다. 새로운 삼성 문화에 대한 투자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재용 부회장은 청문회에서 “지분만으로 경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답한 적이 있다. 리더십이 생겨야 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재무적 실적만으로 리더십이 생길까.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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