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신간서평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지구상의 생명체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 김선태 편집위원

분자생물학을 비롯한 현대 과학은 이 문제에 대해 아직도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고대에는 생명체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1861년 프랑스의 루이스 파스퇴르가 실험을 통해 자연 상태에서 미생물이 생겨날 수 없음을 보인 뒤,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야 이런 생각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DNA 이중나선 구조로 유전의 비밀 밝혀

대체 생명체란 무엇인가. 20세기 초에는 이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1932년 닐스 보어가 생명현상에 양자역학이 적용된다고 말했을 때도, 1944년 에르빈 슈뢰딩거가 유명한 저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생명 활동의 핵심이 유전 정보의 복제임을 주장했을 때도 확실한 무엇이 없었다.

마침내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유전정보를 지닌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면서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 유기물질들이 일정한 조건 속에 유전정보를 지닌 단백질로 합성되면서 자기 복제 능력을 가지게 되면 그것이 곧 생명체다.

이후의 문제는 생명의 시원으로 좁혀졌다. 일단 하나의 생명체라도 만들어지는 시공간을 확정지을 수 있으면 그것이 곧 모든 생명의 모체가 되는 셈이다. 어쩌면 간단하게 보이는 이 문제는 매우 그럴 듯한 실험들로 진전을 이루는 듯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했다.

1962년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왓슨과 함께 노벨상을 받은 크릭은 이 문제에 대해 상당한 부채 의식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젊은 시절 슈뢰딩거의 책을 읽으며 생명에 대한 관심을 키웠고, 왓슨이 1968년 ‘이중나선’이라는 생명공학 사상 기념비적인 책을 발표하기 전에 이미 ‘인간과 분자에 대하여’라는 책을 냈다.

이후 10년여의 탐구를 거쳐 1981년 그가 내놓은 책이 지금 소개하는 ‘생명 그 자체’다. 그리고 부제인 ‘40억 년 전 어느 날의 우연’에서 보듯, 이 책은 생명의 시원에 대한 책이다.

▲ 『생명 그 자체』 = 프랜시스 크릭. 김영사. 264쪽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에서 크릭은 최초의 시공간을 밝혀내지 못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생명체의 기원을 지구 바깥의 우주 행성에서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정향 범종설’, 즉 지구상의 생명은 외계인이 뿌린 씨앗에서 자라났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왓슨이 누구인가. 일단 진정하고 그의 주장을 따라가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50년 왓슨은 방사능 물질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와 담소하고 있었다. 그 때 페르미는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하여 식민지로 만들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우주에는 고도의 지능을 가진 존재가 없을 거라 말했다.

이 말은 크릭의 문제의식을 폭발시켰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이 책을 출간했으니 그의 고민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이 책 전반부에서 크릭은 생명체의 조건에 대해 엄밀하게 따져 빈틈없는 전제들을 밝힌다. 적당히 종합하면 이렇다.

“모든 생물체는 문자 4개짜리 동일한 언어(염기라 부르며, 크릭은 이들이 나선형으로 꼬여 유전물질인 DNA를 만든다는 것을 발견했다)를 써서 유전정보를 나르고, 모두가 문자 20개짜리 동일한 언어(아미노산이라 부른다)를 써서 단백질을 만든다. 단백질이 핵산과 결합하여 생명 활동을 하는데, 생명물질이라 부르려면 세포단위로 활동하며 복제와 제한된 돌연변이가 가능해야 한다.”

생명의 기원 밝히려 평생을 바쳐

여기서 과학자를 괴롭히는 문제가 생기는데, 단백질과 핵산은 분리되면 전혀 생명활동을 할 수가 없고 그것들이 어떻게 해서 최초의 결합을 이루었는지 밝혀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40억 년 전의 지구 환경에서 그렇다.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크릭은 원시 대기 연구의 권위자인 동료 레슬리 오겔에게 원시 수프(과학자들은 지구 초기 바다를 이렇게 부른다) 농도가 얼마나 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 오겔이 닭고기 수프만큼 되었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그 조건에서는 위와 같은 합성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도무지 생명체가 발현될 가능성을 지구에서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크릭은 그보다 외계로 눈을 돌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의 후반부가 써졌다.

그렇다고 크릭을 공상과학 소설가라 부르면 곤란하다. 그의 아내가 그렇게 말했다고는 하지만... 예를 들어 크릭은 이 책을 쓸 당시 우주의 나이를 100억~130억 년이라고 확신했는데, 오늘날 과학계는 우주의 나이를 대략 137억 년 가량으로 본다. 그가 분자생물학과 양자역학 모두에 정통한 대과학자임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크릭이 외계 생명 기원설을 확신하는 나름의 근거는 무엇일까. 이 점에 대해 그는 핵이 없는 세포 즉 세균의 특성을 주목한다. 어찌됐건 그것이 해결책은 되지 못하는데, 그는 자신의 주장이 지닌 허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생명의 기원을 밝히는 것이 그 평생의 의무라 믿었기 때문에, 그는 죽는 날까지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주어진 모든 과학적 성과를 소화하고 자신의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생명의 기원을 찾으려 한 프랜시스 크릭의 고뇌와 집념이 담긴 이 책을 과학자들은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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