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미래연구소

[이코노뉴스=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남북한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 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

정상회담에서 다루어진 비핵화를 포함한 의제들이 이후 진행과정에서 성공적으로 해결될 것인지 아직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오히려 정상회담을 통해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은 김정은 위원장 개인에 대한 이미지의 전환이었다. 이전에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이 가지고 있던 부정적 이미지는 남한국민들 속에서 눈 녹듯 녹아들었고 이후 상당한 호감으로 변화해갔다.

약 3000명의 기자가 전세계에서 모여들었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동작 하나하나 언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한반도에 살아가는 사람들뿐이었다. 김정은위원장이 <나>라는 말 대신 <저>를 말할 때 같은 한민족이 아니고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온전히 이해했기에 공산국가의 독재자였던 그에 대한 인상은 연장자에 대한 배려심을 가진 예의바른 사람으로 변해갔다.

해방 이후 70여년을 갈라선 채 극한의 갈등과 대립을 이어온 두 나라의 민중들을 따뜻하게 이어준 힘은 무엇일까. 정상회담으로 인해 핵전쟁 위험이 다소 감소된 것도 이유의 하나가 되겠지만 무엇보다 두 나라의 국민들을 이어준 것은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이었다. 언어, 역사, 문화 그리고 종족성의 동질성에 기반한 민족이야말로 70여년의 극한대립을 단 한차례의 이벤트로 누그러뜨리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갈 점이 있다. 남한에서 민족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탈민족주의가 이렇게 유행하게 된 것이 정상적인가 하는 점이다. 민족에 대한 북한정권의 강조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북한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을 자신들의 국가정통성의 근원으로 생각하기에 민족을 강조해왔다. 이런 북한의 과도한 민족우선시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남한 지식인층에서 특히 많다고 생각된다.

북한의 민족제일주의에 대비해 남한의 탈민족주의야말로 국제적 수준의 인권담론이라는 생각이 지식인들의 평균적 생각이다. 하지만 남한지식인들이 가지는 이런 탈민족주의는 정말 주체적 탈민족주의일까. 만약 탈민족주의가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특정 세력에 의해 주도되는 담론이라면 탈민족주의는 담론으로서의 순수성을 상실하게 된다. 한국처럼 외국의 힘에 강한 영향력을 받아 온 나라에서 민족주의를 벗어던져야 한다는 주장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퍼져나간 것이 자연스런운 현상일까. 가령 팔레스타인민중과 지식인이 팔레스타인의 민족주의를 버리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한다면 중동에는 자연스럽게 평화가 찾아올까.

‘인권은 가장 보편적이다’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가장 보편적이어야 할 인권이 국제정치적으로 가장 추하게 얼룩져있음을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인종주의에 기초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탄압에 대한 엠네스티의 대응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엠네스티는 정치적 양심수를 위한 국제기구다. 사실 엠네스티같은 국제기구는 외교적으로 웬만한 국가의 역량을 넘어선다. 독재정권을 겪은 우리나라지식인들은 양심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엠네스티에 대해서 우호적인 눈길만을 보낸다.

엠네스티가 만델라를 양심수로 인정하기를 끝까지 거부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엠네스티는 영국외교부가 긴밀하게 움직이고 있고 영국은 영연방국가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는 회피하고자했다. 왜냐면 결국 문제발생의 원인을 소급하면 영국의 제국주의로까지 올라가기 때문이다. 또한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와는 다르게 미국이 남아공정부를 지지했다는 사실도 작용했다.

가장 보편적이어야 하는 인권조차 이렇게 강대국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 민족과 민족주의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반미노선을 취하거나 제3세계의 비동맹운동에 적극 나서는 국가들은 하나같이 인권탄압국으로 지목되어 국제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서구에 대한 저항은 대부분 민족의 이름으로 수행되고 서구는 제3세계에 인권을 들이댄다.

물론 보편적 인권은 어느 특정한 국가의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서구의 인권이 편파적으로 적용될 때 인권의 보편성은 의심받게 된다. 우리나라 식자층에게 프랑스는 똘레랑스(관용)의 나라로 알려지지만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여러 아프리카 나라들은 지금도 프랑스에 식민세를 내고 있다. 프랑스제국주의와의 투쟁 끝에 아프리카민중들이 하나, 둘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려하자 프랑스는 식민지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 한국에서 유행하는 탈민족주의 담론은 탈민족주의의 합리성을 보여주기는커녕 오히려 민족주의의 필요성을 반증해준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판문점 군사 분계선에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상황이 프랑스에 불리하게 변하자 프랑스는 식민지시절 자신들이 세운 모든 학교, 교량, 병원을 대대적으로 폭파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아프리카인들은 프랑스와 타협해서 이런 식민지시절 프랑스가 만든 시설물들에 대한 시설이용료를 식민세로 납부하게 된다. 아프리카에 대한 막대한 착취의 역사는 어느새 묻혀지고 프랑스의 권리만 부각된다. 이런 황당한 상황에서 식민지종주국의 식민지에 대한 포섭이 <똘레랑스>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가 <똘레랑스>만 알고 프랑스의 착취를 말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이미 식민주의자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90년대부터 탈민족주의 담론이 우세를 점하게 되었다. 이제는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민족주의를 말하지 않는 것이 쿨(cool)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게 되었다. 종족성에 기초한 민족보다는 “헌법에 기초한 애국주의가 민족주의보다 더 낳다”라는 생각들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그런데 지식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민족’개념은 극복되어야한다는 자신들의 바램과 달리 민족은 인위적인 노력으로 간단히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고의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 유고는 1차 대전 뒤 승전국이 패전국이자 다민족국가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튀르크 제국을 해체해서 인위적으로 만든 모자이크 국가였다. 문제는 새롭게 만들어진 유고가 민족문제가 매우 복잡한 지역이라는 사실이었다. 반나치 게릴라투쟁으로 정통성을 가지게 된 티토 아래에서는 그나마 유지되던 유고가 그의 사후 분열을 거듭하게 되었다. 다민족 국가 유고슬라비아는 현재 세르비아를 비롯해 코소보까지 7개 국가로 분열했다. 티토 통치기간 동안 하나의 국가로 상당한 기간을 보냈음에도 이들은 헌법 애국주의라는 공동체의식에 도달하지 못했다. 유고에 헌법이 없어서 헌법애국주의가 민족주의를 대체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언어, 문화, 종족의 동일성에 기초하지 않는 인공적 국가는 토대에서부터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민족에 기초하지 않는 국가는 취약하지만 민족에 기초한 국가는 상대적으로 강력하다.

민족과 민족주의는 그 자체로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다. 민족이 나치와 만나면 악이 되고 독립운동과 만나면 선이 된다. 민족에 대한 상황윤리적 판단 대신에 민족, 민족주의를 경원시하는 흐름은 우리 사회의 건전하지 못한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IMF(국제통화기금) 이후 전면적으로 수용한 신자유주의의 번성과 민족주의에 대한 폄훼가 시기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이것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탈민족주의 담론은 탈민족주의의 합리성을 보여주기는커녕 오히려 민족주의의 필요성을 반증해줄 따름이다.

 

 

※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은 헤드헌팅 브레인코리아 대표와 코위컨스트럭션 대표를 역임했습니다. 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로 지방자치단체의 발전방향에 대한 컨설팅과 민간기업의 조직문화의 개선사업 등의 자문을 맡아 일해왔습니다. 현재 국제관계와의 연관성 속에서 한국사회의 모순을 이해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수년 째 지식인그룹 ‘고전강독회’를 운영하며 동서양 고전을 진지하게 읽어나가는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단행본 ‘낯선 것과의 조우’와 ‘공공부문 개혁논의의 현주소와 충남에 대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