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 신간서평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거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북한 사회의 향배에 대한 관심도 비상하게 높아지는 중이다.

▲ 김선태 편집위원

여기서는 이 문제를 사실적 측면을 바탕으로 비교적 가볍게 확인해 보고자 한다.

먼저 김정은 위원장에 관한 이야기다. 그가 판문점에 등장한 뒤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는 그에 관한 두 가지 이미지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고모부 장성택을 공개 처형하고 이복형인 김정남을 독살한 것으로 의심받으며 동해와 태평양에 탄도미사일을 퍼붓던 이미지가 있다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싱글벙글 혼자 넘어오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최대의 예의를 갖추며 농담과 임기응변으로 회담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오연준 군의 노래에 물개박수를 치던 이미지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상반된 이미지

대체 어느 쪽이 진짜일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은 그 둘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분석이 여러 곳에서 나온다. 그중 하나가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정 H. 박(Jung H. Pak)이 2018 년 2월 ‘김정은의 교육’이라는 제명으로 쓴 칼럼이다. 비교적 최신 분석 가운데 하나인 이 글은 남북정상회담 이전과 이후의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놓인 간극을 메우는 데 도움을 준다.

남북정상회담 이전의 김정은 위원장에 관해 우리가 아는 사실은 대부분 부정적인 측면이다. 그는 “지난 6차례 핵실험 중 4개를 단행하였고 가장 큰 핵실험인 2017년 9월 핵실험은 100~150 킬로톤의 위력을 가진 것으로 추청된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말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최대 10배 위력에 해당한다. 그가 발사한 탄도 미사일 수는 90여 개로 이는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한 것보다 세 배나 더 많은 수치다.”

정 H. 박은 김정은 위원장의 성장사를 통해 이런 측면을 강조한다. 일례로 “그는 여덟 살 생일파티에서 별을 단 장군복을 입었으며 진짜 별을 단 장군들이 그에게 경례를 하며 존경심을 표했다고 한다.” 일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을 빌어 “김정은은 11살 때 콜트 45 권총을 차고 다녔으며 군복을 입었다”는 증언도 더한다.

정작 중요한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스위스 유학 생활을 통해 서방 문물과 시장경제를 파악하고 있었고, 권력을 잡은 뒤에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조부 또는 부친과 달리 서구식 통치술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즉 자신을 접근가능하며 투명하고 인간적인 지도자로 보이고자 한 것이다. 칼럼은 그 일부를 이렇게 소개한다.

“그는 예쁘고 세련된 젊은 아내 리설주와 공개석상에 나타난다. 그는 남자, 여자, 어린이들과 포옹하고 손잡고 팔짱을 끼며 나이에 상관없이 편하게 대한다. 투명성은 정부에서도 볼 수 있다. 2012년 4월 위성발사 중 하나가 실패했을 때, 북한 정권은 사상 처음으로 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하였다. (…) 이뿐 아니라 풀도 뽑고, 청룡열차도 타고, 탱크도 몰고, 말도 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핸드폰과 랩탑 정도의 기술에 익숙하며, 핵과학자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여러 번의 미사일 시험을 관장하기도 한다.”

그런 김정은 위원장이 2011년 12월 부친의 사망으로 졸지에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지 6년 남짓, 그가 이끄는 북한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솔직히 이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다. 어쨌든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하나의 의문을 품게 된 것은 사실이다. 거칠게 단순화하면 이는 “남과 북이 과연 지난 수십 년간의 이질감을 떨쳐 내고 긴밀하게 협력하며 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제대로 답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서는 『조선 자본주의 공화국』이라는 책을 통해 하나의 긍정적인 신호를 들어 보고자 한다. 두 영국 기자가 북한 현지를 직접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것을 적었으므로 이 분야에서 최신의 정보라 할 만하다. 게다가 저자 중 한 명은 로이터 사의 사회주의권 전문 기자이고 다른 한 명은 무려 맥주 전문 기자라서, 저간의 북한 사정을 전문적이면서도 솔직하게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까지 갖게 한다.

▲ 『조선 자본주의 공화국』 = 다니엘 튜더, 제임스 피어슨. 비아북. 260쪽.

남북한 음주가무 수준은 ‘쌍벽’

그중 민족 동질성 회복과 관련하여 가장 눈에 띠는 설명은 ‘2장 은밀한 여가생활’ 가운데 ‘음주가무’ 편이다. 저자들이야 신기해 하지만 우리 민족이 음주가무(飮酒歌舞) 즉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대대로 즐겨왔음은 지당한 일이다. 우리 역사에서 이러한 여흥을 즐기는데 서민도 귀족도 예외가 없었다. 저자들은 오늘의 남한은 물론 북한에서도 그 전통이 유지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북한 지도자 또한 예외가 아니다. 김정일은 파티를 좋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특히 술을 상당히 즐겼다 그가 제일 좋아한 술은 값비싼 헤네시 코냑이었는데, 이 술은 한국의 여러 재벌 총수도 즐겨 마신다.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맨이 휴양 도시 원산을 방문했을 때의 일을 보면 김정은도 그 뒤를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사홀 동안 데킬라와 보드카 같은 술을 무진장 마셨다.”

이어 그들은 서방의 시각으로 볼 때 세상에서 가장 폐쇄된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보통 사람들의 음주가무 수준은 대단해서 남한에 뒤질 기세가 아니라고 말한다. 북한의 서민들은 언제 어디서나 ‘대동강’ 같은 일반 맥주를 쉽게 구한다. 전국적으로 맥주 양조 회사가 아홉 개인데 이는 한국보다 많은 숫자다. 하지만 가성비 측면에서 이보다 더 흔한 북한 술은 남한과 마찬가지로 소주다.

“공원에서 사람들이 소주 마시는 장면은 흔히 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브랜드는 평양소주다. 다른 도시들도 각각 자체 소주를 생산한다. 이와 함께 북한 주민은 자기 집에서 만든 밀주를 즐겨 왔다. (…) 북한에서는 가내 밀주 관행이 그대로 지속됐다. 집에서 만든 술은 농태기 혹은 농주라 불린다. 대다수 가정주부가 술 마시는 법을 알고, 술을 잘 빚는 여성은 마을에서 유명해진다. 원하는 경우 자신의 밀주를 작은 사업으로 돌릴 수도 있다.”

▲ 북한 호텔 바에서 직원이 맥주를 내리는 모습.(사진=『조선 자본주의 공화국』)

저자들은 계속해서 최소한 조선왕조 시대부터 내려 온 밀주 관행이 북한에 여전히 성행한다는 사실, 불법이지만 이를 막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술을 단속하는 사람도 술을 즐기기 때문이라는 사실, 북한 남성의 80~90 퍼센트가 매일 술을 마신다는 사실 등등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북한 서민 사회에 음주가무 문화가 지닌 높은 생명력을 웅변한다. 노래로도 이를 알 수 있어서,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반주’라는 제목의 곡이 있는데 그 가사가 “마셔라,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에도”라는 식으로 이어진다.

술은 현찰로도 뇌물로도 사용되는데 이 점은 남쪽이 이미 극복한 문화인 듯하다. “근사한 위스키 한 병을 건네면 경찰도 눈을 감아 주고, 교수도 최고 학점을 주며, 정말이지 외국 관광객은 특별대우를 받는다.” 그렇지만 북한 경제력이 조금 더 나아지면 이런 관행 또한 사라질 게 뻔하다.

저자들이 보기에 북한 남성들은 술을 좋아하는 한국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이 마시고, 일부 남성들은 서울과 다름없이 퇴근 후 맥주를 마신다. 그간 북한 여성은 한국 여성보다 훨씬 적게 마셔 왔는데, 북한에서 여성들의 지위가 점차 높아짐에 따라 이 또한 변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남쪽과 마찬가지로 수제맥주 바가 인기를 얻고 있으며 많은 음식점이 밤새 영업을 하고 음악이나 노래 같은 여흥을 제공한다. 물론 성접대 문화는 없는데, 걸리면 총살형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이번 판문점 회담에서 두 정상은 사정상(?) 주량 대결을 펼치지 않았다. 누가 김정은 위원장의 잔에 두견주를 조금만 더 따랐으면 방송 사상 처음으로 술 취한 북한 정상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김 위원장이 술에 취해 주사를 부린다 한들 적어도 남쪽에서는 그게 흠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음주가무에 관한 한 남북 간에 지위를 막론하고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을 우리 국민들이 수긍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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