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았던 한반도가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오는 27일로 예정된 2018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로 전환될 것이란 기대도 갖게 한다. 특히 북한이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을 선언해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할 지는 결국 통치 기반 강화와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는지에 달려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합성. /뉴시스

일단 상황은 낙관적이다. 남북미 3자 모두에게서 거의 매일 긍정적 메시지가 흘러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 표명을 공식화하며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북미 간의 대화도 순조롭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가 3월말 극비리에 방북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 대화 조건을 타진하고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물을 가늠하는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의지도 확인되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미국과 북한 간의 한판 대결이 임박했던 것처럼 보였던 사실과 비교하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전 세계를 긴장시키다가 갑자기 180도 바뀌어 평화모드로 돌입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과연 김정은 위원장은 궁극적인 비핵화를 단행할까.

김정은 위원장의 생각과 행보를 읽기 위해선 북한 정권의 본질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정식 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만 실제로는 김씨 왕조다. 왕조처럼 세습되고 혈통을 중시한다. 왕조 체제에선 왕권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듯이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자신의 통치권 즉 리더십이 가장 중요하다. 통치권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배구조 확립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김정은의 그간의 행보를 이해할 수 있고 앞으로의 방향도 어느 정도 보인다.

지난 2011년 사망한 아버지 김정일의 뒤를 이어 2012년 북한의 지도자가 된 김정은으로선 집권초 통치기반이 매우 취약했다. 3대 세습, 경험부족, 어린 나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 건설에 성공하면 통치기반을 단번에 확립할 수 있지만 이 경우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었다. 체제안정이었다. 특히 군부의 반발을 무마하는 일이 시급했다.

경제 건설을 하면서 부분 개방을 하더라도 체제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이 때문에 나온 것이 바로 2013년 3월 채택된 ‘경제 건설·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이다. 핵무력을 통해 체제를 방어할 것이라는 명분으로 군부를 눌러놓는 일이 정권 유지에 필수적이었다. 김씨 왕조는 창건 이래 미국의 위협을 과장하면서 정권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여기에 경제건설을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친중파에 대한 견제는 정권유지를 위해선 필수적이었다. 장성택 제거가 여기에 해당한다. 너무 어려서 뭘 모른다든지, 미치광이라는 평가는 그야 말로 바깥 세상이 뭘 몰라서 잘못 판단했던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서서히 시장체제를 도입하면서 통치기반을 다지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 당장은 중국에 의존할 수 밖에 없지만 체제에 충격이 가지 않는 범위에서 부분적인 개방을 하면서 점차 개방 폭을 늘려 나가는 계획이었을 것이다. 배급체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장마당 경제를 용인하는 등 시장 경제를 부분적으로 받아 들인게 그 예다.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종료되는 2020년을 목표 시점으로 잡았을 것이다. 여기에 몇 가지 변수가 생겼다.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한민국으로부터는 별 다른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경제력 차이가 너무 커서 체제 안정에 위험 요인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2016년말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출구가 막혀 버렸다. 중국에 과도한 의존은 부담이 너무 크고, 미국은 대화의 문을 열지 않고 시간이 급했다. 하루 빨리 핵 무력을 완성해 뭔가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은 뒤 경제건설에 전적으로 매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해 국제 사회의 반발에도 불구,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이 수차례 강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판단 착오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을 잘 몰랐던 것이다. 미국의 압박이 예상했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략 자산 동원도 겁이 났던 건 부인키 어렵다. 그렇다고 북한 주민들에게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공언해 놓고 90년대 초반 같은 고난의 행군을 강요하기엔 이미 너무 먼 길을 와 버렸다. 결국 김정은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마침 대한민국에 북한과의 대화를 원하는 정권이 들어섰고, 평창올림픽이라는 명분도 있었다. 결국 북한은 통남통미의 길을 선택했다. 미북 정상회담이라는 성과를 얻어냄으로써 북한 주민들에게 통치 기반을 확고하게 다질 수 있었다. 남북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이 나오게 된 이유다.

다만 북한은 체제 안정과 병행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핵무력 완성을 헌법에 명문화할 정도로 의지를 밝혔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 주민 설득 작업에 시간이 좀 필요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거의 즉석에서 정상회담을 수용함으로써 시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혼자서 트럼프를 상대하기엔 너무 버거웠고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에 간 이유도 여기에서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제 비핵화를 하지 않고선 생존이 불가능함으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비핵화가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상황이 바뀐 탓이다. 다만 체제 충격을 피하고 주민 설득을 위해선 시간을 달라고 할 가능성이 크다.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한국이 언제까지나 도와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불안감도 남아 있을 것이다. 자위 수단으로서만 핵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밝힌 이유일 것이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할 지도 결국 통치 기반 강화와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는지에 달려 있다. 일단은 핵 포기를 부담스러워 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설득과 신뢰 구축을 통해 이를 관철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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