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 신간서평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판화의 시인’ 이철수 화가가 원불교의 경전을 구도자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대종경을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성찰한 끝에 부드러운 목판 위에 짧은 칼끝으로 굵직하고 명징하게 새겨 종이에 찍어내고 채색했다.

▲ 『네가 그 봄꽃 소식 해라』 = 이철수. 문학동네. 492쪽.

화가는 경전을 읽었지만 그의 판화는 현대인이 품고 있는 일상의 번민을 이야기한다. 그가 선택한 짧은 글귀들은 진중한 화두가 되고, 그가 형상화한 간결하고 묵직한 그림들은 찰나의 시선에 일만 가지 사유를 포섭한다.

찰나의 시선에 담긴 일만 가지 사유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종교의 가르침을 화가는 “불이야!” 한 마디로 대신한다. 불이야! 외친 줄 알고 앞 다투어 나오라는 말씀이라는 것이다(85쪽). 그리고 화가는 이 말을 화두 삼아 연작판화를 새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다만 자신이 길어 올린 것은 작고 얕으니, 지혜의 큰 바다는 따로 만나기를 독자에게 당부한다.

화가의 시선은 따뜻하다. 혼자 있어도 늘 제 일을 찾지 못하는 청년들과 다가올 내일을 걱정하는 중장년들을 향한다. “중생은 배고프면 밥을 찾는다. 향기로, 이슬로, 허기를 채우라 하지 말라!” 이 말처럼 화가는 일체 뜬구름 소리를 거부하고 ‘온 몸으로’ 현실을 본다.

“천도를 본받지 못하면 하늘·땅이 거꾸로 서서 사는 게 곧 고통”이라는 말을 우리 세상에 투영하여, 아픈 이들과 함께 아파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서민들에게 단단하면서 편안하다. 심오한 법문을 전하나 더 이상 명료할 수가 없고, 대종경의 이치를 따라 가나 어느 덧 생활 속 이야기가 된다. 무거운 듯 차분하게 들어오는 속삭임이고 가르침인 듯 내 안에서 나오는 깨달음이다.

어떻게 이렇게 전달할 수가 있는가? 해설을 맡은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은, 이철수 화가가 꼭 “마음을 열고 들으면 개가 짖어도 법문”이라는 자신의 판화 속 글귀처럼 살아 온 이라고 말한다. 하루하루를 수도하는 자세로 임했으므로 수도하는 자세에 대한 화가의 해석 또한 경쾌하다는 것이다.

“마음에서 돌망치 내려놓으라!”

수도생활이란, 화가에 따르면, 그저 내 하루하루 생활에 충실한 것이다. 도를 닦는데 산사에 갔을 때만 도를 적용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부채를 가졌으나 더위를 당하여 쓸 줄을 모른다면 부채 있는 효력이 무엇인가? 이렇게 화가는 부채 그림 하나로도 중요한 지혜를 전혀 어렵지 않게 전한다.

시인 황동규는 영어의 표현에 우리말의 “내려놓다”에 해당하는 적절한 표현이 없다고 했다. 경전은 이렇게 말한다. “마음에서 돌망치 내려놓으라!”, 그리하여 “네가 갚을 차례에 참아 버려라!” 이 경지에 이르면 삶이 곧 수도생활이 되는 것인지, 아둔하여 알기 어렵다.

박웅현은 또 “스님들이 모두 좌선, 좌선 하는데 바위만한 좌선이 어디 있겠는가?” 하고 반문한 뒤 화가의 <좌선>이라는 판화를 골라 들고 말한다. 비바람에, 세월에 흔들리지 않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위, 그 담백한 시선이 좋았다고. 그처럼 조용히 자리 잡고 있으면서 수시로 자극이 되어 주는 인생 선배에 고마움을 표한다.

화가는 제천의 집에서 우렁이 농사를 짓는 중에 이 연작판화집을 완성했다. 그 때문에 손길을 제대로 주지 못했음에도 논밭의 작물들이 저 알아서 자라 주었다 한다. 하늘이 거들어 주신 것인지. [이코노뉴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