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엄청난 경제 대국인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중국은 굉장한 특전과 이점을 보고 있고, 특히 미국에 비해 그렇다. 이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나쁜 표본이 되고 있다. WTO는 미국에 공정하지 않다.”

▲ 최성범 주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전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 2016년 7월24일 NBC 방송에서 “WTO는 재앙”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는 당시 “국외로 일자리를 가져가는 미국 기업이 생산한 제품에 15∼35%의 세금을 매길 것”이라고 말한 뒤 WTO가 이를 불허하면 “우리는 재협상을 하거나 철수할 것”이라고 했다. WTO 탈퇴 가능성을 시사한 적도 있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이름만 국제 기구이지 미국이 주도해서 만들었고 가장 덕을 본 나라도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WTO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자유무역을 지향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대체하기 위해 1995년 설립된 세계 무역기구이다. 1990년을 전후해 구 소련의 붕괴 이후 공산권 경제체제가 사실상 소멸하자 미국은 미국 주도의 새로운 무역체제의 출범을 주도했다. 당시 GATT를 보완하기 위해 진행돼던 우루과이라운드(UR)의 협상결과를 기반으로 WTO를 출범시켰다.

WTO체제 하에서 새롭게 무역 규범에 포함된 품목이 바로 농산물과 서비스였다. 바로 제조업의 약화로 고민하던 미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자신하던 분야였다. GATT를 대체하는 국제 무역기구이었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가 공식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세계경제와 기업들을 지배했던 이른바 자유무역주의도 알고 보면 WTO 출범이후 미국식 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었다.

WTO의 아란차 곤잘레스 이사가 “WTO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는 있지만 문제점을 과장하려는 경향이 더 큰 걱정”이라며 “미국은 WTO로 혜택을 보았다”고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글을 반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미국의 철강 관세 보복조치도 WTO규정에 어긋난다. 겉으로는 국가 안보라는 특수 사유를 내세웠지만 다자주의, 최혜국 대우와 소급 불가라는 WTO의 정신과는 거리가 있다. 52개 WTO 회원국들이 지난 3월말 인도에서 모여 관세부과 조치가 세계무역기구 규범에 합치하지 않는다면 자유무역체제의 지속을 강조했지만 미국의 WTO 흔들기와 일방적인 관세부과 조치는 이어지고 있다.

▲ WTO체제는 2차세계대전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가 공식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대선에서 “WTO는 재앙”이라며 탈퇴를 시사하고 취임이후 WTO의 원칙을 어기며 관세보복에 나서는 것은 적반하장식 조치라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말 중국을 향한 54조원 규모의 관세 부과 및 투자 제한 방침이 담긴 행정명령서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워싱턴=AP/뉴시스]진은

국제 무역 기구를 훼손하는 결과는 어찌 될까. WTO의 전신인 GATT도 알고 보면 경제 블록화와 보복 관세가 제2차 세계대전을 초래한 원인 중의 하나였던 점을 반성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전세계가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면 보복관세 공방을 벌였고 이는 경제 침체의 확산을 가져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고율관세 부과를 골자로 1930년에 제정된 스무트-홀리법이 무역 전쟁을 촉발했고, 대공황의 세계적인 확산을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2차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이 무역협정인 GATT를 출범시킨 이유다. 인류가 시행착오와 반성 속에서 출범한 기구가 바로 WTO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돌이켜 보면 미국과 중국 간의 보복 관세 조치를 결코 간단한 문제로 볼 수 없는 이유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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