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미래연구소

[이코노뉴스=강철구 전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과 관련하여 20~30대의 반발이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열심히 훈련을 해온 선수들의 기회를 빼앗는다는 이유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 강철구 전 이화여대 교수

기성세대인 내 눈에도 개막에 임박해서 갑자기 단일팀을 만들어 개인의 출전권을 빼앗는 것이 잘하는 짓은 아니다. 공동체를 위해 일방적으로 개인에게 희생하라고 하는 것이니 당연히 반발할만하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이나 SNS 사용자 가운데서는 청년층의 세태에 비판적이거나 심지어 비난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요새 젊은이들이 자기네 생활상의 이익이나 찾으려고 하지 민족이나 통일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네들에게 부담을 주는 통일 대신 남북이 별개의 국가로 사는 것을 더 선호한다니 이기적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왜 젊은 층이 민족이나 민족주의에 대해 별 관심이 없을까. 그들의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일 것이다. 3포세대를 넘어 6포세대라는 자조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미래 문제를 걱정하는 데에도 바쁜데 민족 같은 큰 문제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다른 하나의 이유는 그 동안 한국사회가 민족이나 민족주의에게 해온 대접과 관련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에 휩쓸렸는데 신자유주의는 경제의 세계통합을 추구한다. 그 중심은 말할 것도 없이 금융자본을 통해 세계경제를 지배하려는 미국과 일부 선진국들이다.

당연히 민족이나, 민족을 단위로 하여 그 이익을 지키려는 민족주의는 신자유주의와는 공존하기 어렵다. 미국이 약소국의 민족주의를 짓밟으려고 계속 혈안이 되어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한국의 대자본은 신자유주의에서 자신들의 이익 확보를 위한 기회를 보았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그 방향을 지지했다. 그래서 한국은 순식간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신자유주의국가가 되었으니 현실에서 한국민족주의의 쇠락은 예정된 셈이다.

이와 함께 또 하나 결정타를 가한 것이 민족주의학문이다. 1980년대부터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근대주의적 해석’이라는 새로운 민족주의 이론이 등장했는데 그것은 민족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18세기 말이나 19세기 초에 생긴 것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라고 폄하하는 것이다. 민족이 수천 년이나 짧아도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연적인 공동체’로 보는 옛 이론과는 정반대다. 또 민족주의를 전쟁이나 학살을 가져오는 비윤리적인 이데올로기로 매도한다.

이 이론이 한국에서 외환위기 이후 크게 확산되면서 민족이나 민족주의가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관념이나 이데올로기인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 자신이 약간이라도 진보적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모두 대단한 진리라도 발견한 양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다녔다.

▲ 외환위기이후 우리나라에 신자유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민족주의 의식이 약화돼 왔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과 관련, 20~30대의 반발도 이같은 민족의식 약화를 보여준다. 사진은 충북 진천국가대표선수촌 내 빙상장에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합동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대한체육회 제공)

지금의 20, 30대는 그 영향을 뿌리 깊이 받은 세대다. 중등학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계속 그런 세뇌교육을 받았으니 민족이나 민족주의에 대해 긍정적이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젊은이들에게 민족이나 민족주의를 모른다고 비난한다면 그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그러나 이제 역사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근 40년을 이어온 신자유주의 시대는 종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우선 미국에서 그 자본주의는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 이미 한계를 노출했다. 중앙은행이 양적완화 정책으로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여 간신히 시장의 붕괴를 막았으나 미국자본주의가 언제 무너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칫하면 다시 세계 경제공황이 올지도 모를 상황이다.

또 신자유주의는 월가의 미국 금융자본가들에게 큰 부를 가져다주었다. 반면 제조업의 약화로 공장을 해외이전하고 아웃소싱을 하는 바람에 미국 제조업의 중심지인 중서부 지역이 무너져 러스트벨트가 되었다. 이에 따라 빈부격차가 크게 늘어나고 실업자가 늘자 분노한 미국중산층은 작년에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보호무역주의를 들고 나오고 있다. 미국이 그렇게 하면 다른 나라들도 모두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다. 자유로운 시장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의 맹점은 민족의 핵심적인 요소로 혈연, 언어, 문화, 관습, 영토 등에 의해 오랜 시간을 통해 형성되는 종족성을 매우 경시한다는 것이다. 그 주창자들은 종족성은 전근대에나 의미가 있었지 근대 시민사회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근대사회의 민족에게는 종족성이 아니라 민족이라는 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민의 자발적인 의지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설명에 불과하다. 미국은 이민국가로 많은 종족을 하나로 묶는 종족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미국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는 미국의 민주주의적 정치제도와 그 이상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이 이상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하나의 민족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인들이 자랑하는 ‘시민적 민족’이다. ‘종족적 민족’에 대치되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시간이 흐르면 여러 이민 종족들이 하나로 합쳐질 것이라고 가정한 멜팅폿(melting pot)이론의 파산에서 보듯 미국인들의 바람에 불과하다. 그 실패 때문에 최근 종족적 분열을 인정하는 다문화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반면 다른 거의 모든 지역의 민족은 종족성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1970년대 유럽 여러 곳이나 캐나다의 분리주의 운동이나 냉전 후 구 소련이나 유고슬라비아에서 벌어진 종족분쟁, 작년에 벌어진 스페인의 카탈로니아 독립운동은 모두 그 때문이다.

종족성은 아직도 민족이나 민족주의에서 핵심적 요소로 계속 그 힘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민족의 종족적 요소를 받아들이면 민족을 최근에 만들어진 인위적인 ‘상상의 공동체’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근대주의적 해석’이 최근 이론적인 면에서 심각한 비판을 받는 이유이다.

게다가 보호무역주의의 승리는 필연적으로 각 나라의 민족주의를 강화시킬 수밖에 없다. 이미 트럼프가 한국에 대해 관세전쟁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널리 확산되면 전 세계가 무역전쟁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더 심하면 실제 전쟁으로 발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럴 때 약소민족이 강대국으로부터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 비윤리적인가.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미국의 경우는 그것을 애국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비윤리적이나 그에 대항해 자신을 지키려는 약소민족의 민족주의는 윤리적이다.

 

 

※ 강철구 민족미래연구소 고문은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1979~2012년 서원대, 이화여대 등 대학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쳐왔습니다. 강 고문은 현재 민족미래연구소를 만들어 우리나라가 지향해야할 미래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론과 강의를 하는 등 활발히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역사와 이데올로기’, ‘우리 눈으로 보는 세계사’가 있으며 ‘민족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역서를 갖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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