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지난 3일 저녁 베를린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를 어느 모임에서 단체로 관람하는 기회를 가졌다.

▲ 최성범 주필

내한 공연이 아니라 베를린 현지의 공연을 영화관의 대 화면으로 생생하게 중계하는 라이브 공연이었다. 장소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였던 탓에 코엑스 내의 별마당 도서관을 우연하게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바로 스타필드 코엑스몰의 별마당 도서관이다.

처음엔 새로 생긴 서점인 줄로 생각했지만 도서관이었다. 둘러 보고 얘기를 들으면서 두 차례나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엑스 내의 거대한 공간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도서관을 만들었다는 대담한 기획에 우선 놀랐다. 총 2800m2의 면적에 2개 층으로 구성된 도서관은 13m 높이의 대형 서가 3개에 5만권의 서적을 보유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신세계 프라퍼티가 운영한다. 쇼핑몰, 백화점, 수족관 영화관 등이 몰려 있는 코엑스는 임대료가 비싸기로 유명한 곳인데 그 중에서도 중심부의 요지에 해당하는 장소에 공공기관도 아닌 민간기업이 거액의 돈을 들여 도서관을 만들어 무료로 개방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이 도서관이 사람들이 책도 읽고 쉬기도 하는 장소가 되면서 코엑스의 명소가 되었고, 도서관이 명소가 되면서 내방객이 늘어나 스타필드 코엑스 몰 전체 상권이 활기를 띠게 됐다는 얘기에 다시 한번 놀랐다. 2000년 개관한 코엑스몰은 2014년 리모델링을 거쳐 재개장했으나 장사가 안 돼 상권 전체가 죽어간다고 소문이 났던 곳이다. 결국 신세계로 주인이 바뀌고 말았다. 장사 안 되기로 소문 났던 이곳을 2016년 10월 인수한 신세계는 스타필드 코엑스몰로 재개장해 다시 강남 최고의 상권이라는 예전 명성을 부활시켰다.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명소가 된 별마당 도서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스타필드 코엑스몰과 별마당 도서관의 얘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죽어가던 상권을 단번에 되살린 신세계의 경영능력과 기획력은 더 이상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품격을 지닌 경영’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싶다.

보다 눈여겨 볼 것은 문화콘텐츠의 잠재력이다. 1인당 국민 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서 3만 달러에 접근하면서 이젠 품질이 좋은 제품과 서비스는 너무나 당연시 하는 일이 되었고 이젠 문화나 스토리가 있는 곳에 사람과 돈이 몰리는 시대가 되었다. 한마디로 문화 콘텐츠가 돈이 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

▲ 신세계 프라퍼티가 지난해 5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 문을 연 별마당 도서관은 죽어가던 상권을 살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다. 3만 달러시대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이제 문화마케팅은 기업경쟁력의 필수적인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뉴시스 자료사진

이미 특정 지역 상권의 부침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문화 콘텐츠는 결정적 작용을 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부상한 상권과 몰락한 상권을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홍대 입구, 서촌, 북촌 상권 등 10여년 전부터 급부상한 상권의 경우 그냥 단순하게 카페, 옷 가게, 음식점이 어우러지거나 교통 여건이 좋아져서 형성된 평범한 상권이 결코 아니다.

관광 명소가 된 홍대 입구의 경우 그냥 환승역이 되면서 급부상한 상권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술이나 디자인을 전공한 청년들이 자신들의 전공을 살려 아담하고 예쁜 인테리어를 갖춘 카페와 옷 가게와, 여기에 주말마다 열리는 벼룩 시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예술적 감각에 관한 한 신촌 상권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쟁력을 홍대 입구 상권은 갖추고 있다. 서촌이나 북촌의 경우도 인근 인사동 상권이 커진 영향을 받고 있기는 해도 상대적으로 개발에서 소외됐던 지역으로 전통 문화의 향취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곳들이다. 문화적 요소가 없이 교통 여건이 좋아 상가들이 밀집돼 있는 지역인 신촌, 종로 상권이 몰락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젠 문화 콘텐츠를 갖췄는지의 여부에 따라 지역 상권의 부침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문화적 요소와 예술적 향기가 가미되어야 국민 소득 3만 달러시대에선 소비자들의 높아진 눈 높이를 맞출 수 있다는 얘기다. 스타필드 코엑스관의 성공에는 개관 반년만에 1000만명을 이끈 별마당 도서관의 힘이 있었다는 스토리와 부합되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젊은 층들이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인지라 별마당 도서관의 성공은 예사롭지가 않다.

문화마케팅, 3만달러시대 기업경쟁력의 필수적인 요소로 부상

이는 앞으로 기업들의 마케팅 활동에 있어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제 더 이상 문화활동은 사회 공헌 활동의 일환이 아니라 마케팅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소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이미 상당수의 기업들이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도 2015년 개관한 ‘현대어린이책미술관’, 송도현대프리미엄아울렛과 가든파이브 현대시티몰이 입점시킨 도서관형 교보문고, 롯데 하이마트 구리역점의 복합문화공간 등은 이제 유통매장의 경쟁력이 상품의 가격이나 품질뿐만 아니라 문화콘텐츠 경쟁력에도 있는 시대라는 점을 말해준다.

경영과 인문의 융합은 이제 MBA과정이나 기업 임원진 조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양 강좌가 아니라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 [이코노뉴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