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재계 10위 신세계그룹이 내년 1월부터 하루 7시간만 일하는 ‘주 35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임금도 깎지 않는다.

▲ 최성범 주필

우리나라 법정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으로, 주 35시간 근무제는 대기업으로선 처음이다.

신세계 직원들은 내년 1월부터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등 하루 7시간(점심시간 1시간 제외)을 일하게 된다. 업무 특성에 따라 ‘오전 8시 출근 4시 퇴근’, ‘10시 출근 6시 퇴근’ 등도 가능하다. 이마트 등 매장 직원들은 오전·오후 교대근무를 하고 있어 근무 시간을 조정해 노동 시간을 하루 1시간 줄일 예정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신세계 16개 계열사에 전면적으로 시행돼 대상자만 5만여명에 이른다. 신세계 관계자는 “장시간 근로, 과로 사회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문화를 획기적으로 혁신해 임직원들에게 ‘휴식이 있는 삶’을 제공할 것”이라며 “쉴 때는 제대로 쉬고 일할 때는 집중력을 갖고 일하는 기업문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유통대기업 신세계의 ‘주 35시간 근무제’ 시행은 우리 사회가 신봉해 왔던 ‘장시간 근로의 신화’가 무너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세계는 제도 시행을 앞두고 시간별 매출 추이 등을 분석하여 매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직원들의 생산성 향상 및 프로세스 효율화 등을 통해 근무시간 단축을 보완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장 5만여명의 직원들이 이 제도의 혜택을 볼 것이라 하니 선거 구호로만 알고 있던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한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는 희망도 품어 본다.

근무 시간 단축은 일과 삶의 균형(Work Life Balance)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길기로 악명(?)이 드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연간 347시간 길고, 멕시코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소위 ‘연장근로사회’는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어렵게 만들고, 개인의 행복 추구를 어렵게 한다. 1인당 국민 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고 있지만 행복한 나라가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알고 보면 과로 사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장 근무 수당을 받아야 현재의 임금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근로자와 신규 채용에 부담을 느끼는 기업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연장근로는 관행으로 자리 잡아 온 게 현실이다.

이번 노동시간 단축은 근로 시간 단축을 장려해 온 정부의 적극적인 행보와 무관치 않다. 사회적 분위기를 맞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신세계가 ‘일과 가정의 양립’, ‘저녁이 있는 삶’ 등 거창한 목표를 내세운 것과는 달리 ‘인건비 절감’이 근로시간 단축의 진짜 목적이라는 주장도 있긴 하다.

민주노총 마트산업노동조합은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심야수당 절감, 업무 강도 강화 등이 근로시간 단축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 35시간제를 시행할 경우 문재인 정부가 공약으로 내건 2020년 최저 시급 1만원 시대에 주 40시간 일할 때보다 월급 26만 원, 연봉으로 312만 원을 덜 받게 된다는 점에서 마트노조는 신세계가 임금의 하향평준화를 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마트 폐점 시간이 오후 12시에서 11시로 1시간 앞당겨지면서 발생할 심야수당 축소와, 인력 충원 없는 시간 단축으로 높아질 노동 강도에 대해 우려한다. 사실상 현재 급여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빠듯한 형편인데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명분 아래 근로자들이 그 부담을 모두 떠 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노조의 주장대로 과연 신세계가 사회적 분위기를 맞추면서도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에서 벗어나는 등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하려 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이 과로사회에 벗어나야 한다는 게 시대적 과제임을 감안하면 그다지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지금은 신세계의 실험에 박수를 치고 주목해야 할 때라고 본다.

근로시간 단축 도입 성공하려면 생산성 높이는 시스템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국이 과로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 정시 퇴근으로 인해 일에 차질이 빚어지고 고객이 불편을 느낀다면 새로운 시도가 성공하기 어렵다. 시스템의 변화 없이 근로시간 단축 도입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얘기다. 자칫 삼성그룹의 7시 출근, 4시 퇴근 시도가 실패한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없다. 업무 프로세스 혁신과 직원들의 근무 태도 변경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게 선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기업들로선 부담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일과 삶의 균형은 이제 장강의 도도한 뒷 물결처럼 시대의 대세로 자리잡을 게 확실하다. 기업으로선 인식 전환과 동시에 업무 혁신을 통해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소기업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은 커녕 정시 퇴근조차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연장근무 수당이 통상임금처럼 지급되는 현재의 체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등 임금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실사를 통해 개선 방안을 꾸준히 마련해 나가야 한다.

근로자들로선 생산성 향상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회사 측의 업무 혁신과 병행해서 업무 집중도를 높여야만 근로시간 단축이 성공할 수 있다.

이번에 신세계의 실험은 근로시간 단축에만 머물렀지만 앞으로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가 산업현장에서 확산되길 기대해 본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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