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1992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가 내건 국정 슬로건은 신한국 건설이었다.

▲ 최성범 주필

신한국 건설은 선진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통해 완성된다고 믿었다. 이를 위해 OECD기준에 맞도록 경제, 사회, 정치등 주요 분야의 개혁을 야심차게 밀어 붙였다. 결국 1996년 OECD 가입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OECD가입에 발맞춰 세계화를 서두르다가 IMF위기를 맞이 했다.

당시 한국이 IMF위기를 맞이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점에 터져 나온 결과이기도 하고 외환 관리의 실패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는 선진국 진입이라는 큰 업적을 남겨야 겠다는 욕심이 앞선 나머지 김영삼 정부의 경제정책이 담겨 있는 신경제 5개년 계획 상에 명시돼 있는 계량 지표 특히 1인당 국민소득(GDP)에 함몰된 결과라고 확신한다.

필자는 김영삼 정부가 박재윤 경제수석의 주도하에 신경제5개년 계획을 발표했을 시점인 1993년 4월에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에 해당) 출입 기자였다. 출입기자로서 4월19일자로 발표된 신경제 5개년 계획 보도자료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신경제 5개년 계획이 끝나는 1997년도 다음 해인 1998년도 국민 1인당 GDP 전망치가 1만5000달러로 이미 설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환율 전망치도 정해져 있었다. 말이 전망치지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확고한 목표였다. 선진국 수준의 국민소득을 달성함으로써 정권의 성공을 확실하게 뭔가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담긴 계획이었다.

몇 년 뒤인 1996년 미국에 머물 기회가 있었다. 살던 동네에도 현대차 딜러(단독은 아니었지만)가 있었다. 현대차의 소나타 가격이 1만1000~1만2000달러 대로 출시돼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혼다 어코드가 1만4000달러 내외의 가격이 책정돼 있던 시기였다. 성능 좋다고 소문난 도요타의 캠리의 가격도 비슷했다. 당연히 현대차가 팔릴 리가 만무했다. 가전도 마찬가지. 삼성 제품은 브랜드 인지도, 품질, 그리고 가격 경쟁력 모두에서 소니, 파나소닉는 물론 산요, 후나이 등 일제 2류에도 밀려 베스트바이 등 가전 매장 구석에 먼지가 쌓이고 있었다. 인기 있는 일본 제품과 가격차이도 얼마 없는데 무슨 생각인지가 궁금했다.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환율이었다. 1994년 35억달러였던 무역적자가, 1995년 65억달러, 1996년에 무려 167억달러로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는 데도 환율은 요지부동이었기 때문에 수출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돌이켜보면 1만5000달러라는 국민소득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역적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환율을 붙잡고 있었던 무리수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다 아는 대로다. 외환 보유고가 바닥나고 관리조차 실패해 IMF 외환위기를 맞고 말았다. 1998년의 1인당 GDP는 당초 목표치였던 1만5000달러는 커녕 1997년의 1만2059달러보다 무려 33.8%나 급감한 7989달러로 뒷 걸음 치고 말았다.

올해 한국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GNI) 3만 달러에 근접한 2만9000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GNI는 2만7561달러였다. 내년도엔 1인당 국민소득(GNI) 3만달러 달성이 가능할 전망이다. 1인당 GNI 3만달러에 진입하면 진짜 선진국 반열에 들었다는 의미다. 2만달러를 넘으면 골프, 3만달러를 넘으면 승마, 4만 달러를 넘으면 요트를 탄다고 한다. 지난해 기준 3만 달러를 넘는 나라는 27개국뿐이다.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명을 넘는 국가는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일본 등 6개국뿐이다. 경제력과 인구를 동시에 갖춘 선진 강국이 되는 셈이다.

2006년 2만달러대를 처음으로 진입한 뒤 몇 차례나 미끄러진 끝에 12년 만에 3만 달러 돌파다. 앞선 나라들이 2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진입하는 데에는 평균 8.2년 걸린 걸 감안하면 한국은 압축 성장의 대가를 치른 셈이다.

▲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어선지 12년만에 3만달러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3만달러를 넘어서 4만달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분배문제와 경제혁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한다. 사진은 경기 평택항 자동차 수출전용부두에 대기하고 있는 수출용 자동차들. /뉴시스 자료사진

3만 달러의 꿈을 이루기 직전이지만 축하할 여력조차 없다. 3만달러의 문턱에서 서 있는 한국 경제는 첩첩산중에 놓여 있는 탓이다. 캐치업 전략으로 3만 달러문턱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지만 잠재성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잠재성장률이 3%미만으로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한국경제의 체질이 약해졌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제조업 기반은 약해졌고, 수출도 반도체에만 의존하는 허약한 구조다.

국민소득 3만달러 눈앞…혁신성장에 분배문제, ‘두 마리 토끼’ 함께 잡는 과제 안아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기업가 정신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어 과거와 같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없는 탓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창업 세대가 물러나면서 헝그리 정신도 도전정신도 없는 3,4세 세대들이 전면에 등장한 탓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일종의 경제가 조로 현상을 겪고 있는 셈이다. 이는 미국의 경우 산업화의 역사가 한국보다 100년 이상 오래 됐으면서도 구글, 애플, 페이스북, 테슬라 등 이른바 신생 기업들이 경제를 이끌고 있는 현실과 비교하면 잘 알 수 있다.

현대, 삼성 등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가 한계점을 보이고는 있으나 이를 대체할 대안은 등장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워낙 오랜 기간 대기업 위주, 중소기업 소외의 구조가 정착돼 있던 탓에 중소기업의 뿌리가 너무 약한 탓이다. 혁신 성장의 성과가 나오기엔 갈 길이 멀다.

그러면서도 성장보다는 양극화 개선 등 분배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를 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정치나 사회 등 다른 부문이 발전하지 못한채 경제만 발전할 수 없다는 반증이다. 어차피 대기업들의 사업 의욕을 강제할 수 없을 바엔 정부가 일자리 창출이나 양극화 해소 등에 주력하는 게 현 시점에서 대안 아닌 대안이다.

민주화와 분배 때문에 경제 성장이 잠시 주춤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다시 힘을 내서 3만달러를 넘어서 4만 달러를 달성하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이 점에서 정부가 개혁의 명분 아래 기업들의 발목을 너무 장기간 붙잡고 있는 현실도 바람직하지 않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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