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포 가는 길 ③ 환경단체 “진상규명 먼저” 원형보존 요구로 산림복원 기약 못해

제련소 과거 아황산가스가 원인인 듯…‘확실한 증거’는 연기와 함께 사라져

경북 봉화서 울진으로 가는 태백산맥 일대는 명품 금강송의 군락지

지구온난화로 금강송 생육 예전 같지 않아 안타까움 밀려와

[이코노뉴스=글·사진 남영진 논설고문/행정학 박사]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영풍 석포제련소를 찾아 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하얀 수증기였다.

제련소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흰 수증기는 예전 탄광지대에서 볼 수 있던 컨베이어 벨트와 어우러져 ‘옛날 공장’을 떠오르게 했다.

▲ 경북 봉화군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하얀 수증기가 뿜어나오고 있다. ‘수증기 발생지역’이라고 쓰인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수증기 발생지역’이라고 커다랗게 쓰인 간판이 아니면 연기로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제련소 측은 “가열된 시설 등을 냉각하는 물에서 발생하는 수증기로 오염물질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수증기는 굴뚝이 아닌 공장건물 꼭대기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수증기는 피어오르자마자 허공에서 금세 사라졌는데 이 또한 연기와는 달랐다.

수증기를 뿜어대고 있었지만 제련소 외부에서는 냄새를 거의 맡을 수 없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석포제련소에 대한 많은 글들은 공장 주변에 다가서기만 해도 심한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이상했다.

내 코가 무딘가…제련소 안으로 들어가 황산공정과 전해공정이라는 곳을 둘러볼 때서야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제련소 앞을 흐르는 석포천도 예상과 달리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무척 맑았다.

◇ 공장 뒷산 나무 말라 죽어 가파른 낭떠러지…소나무는 왜 죽었을까

하지만 제련소 1공장 뒷산을 보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공장에 면한 뒷산의 일부 구간에서 대부분의 나무가 말라 비틀어져 죽어 있었다.

나무가 죽어 있는 산비탈은 낭떠러지로 보일정도로 가팔랐다. 흙을 잡아주던 나무뿌리가 죽어서인지 일부에선 사태가 나 많은 흙이 아래로 쓸려 내려왔고 쪼개진 돌과 바위가 드러나 있었다. 황량했다.

이 나무들은 도대체 왜 죽은 것일까. 하얀 연기는 수증기일 뿐이라지만 제련소의 굴뚝에서 뿜어 나온 유해가스가 나무를 고사시킨 것은 아닐까.

제련소 주변의 산은 한창 푸른데 가운데 뒷산 하나만 앙상한 것도 이상했다. 제련소가 왜 저렇게 놓아 뒀을까 의아했다.

제련소 사람에게 물어보니 환경단체들이 나무가 고사한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어떠한 나무도 심지 못하게 막고 있다고 한다.

1공장 앞 하천 건너에 있는 앞산의 일부 구간에도 나무가 죽었는데 회사 소유지라서 2018년 50여억원을 들여 복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1공장 뒷산은 국유지여서 산림청의 허가 없이는 복원을 하지 못한단다. 환경단체들의 반대 때문에 산림청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림청은 환경단체들의 요청으로 이곳의 나무가 죽은 원인을 밝히려는 연구를 서울대 등에 맡겨 실시했는데, 최근 나온 연구결과에서 뚜렷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원래 소나무였는지는 모르나 죽어 말라빠진 나무들이 듬성듬성 가파른 비탈에 걸려있는 것이 안쓰러웠다. 제련소 사람들은 죽은 나무 대부분이 소나무라고 했다.

◇ '아황산가스가 주범'…“지금은 기준 넘는 가스배출 있을 수 없어”

아연제련소에서 황산도 생산하기 때문에 지난 50년간 굴뚝으로 배출한 아황산가스(SO2) 가스가 주원인이겠지 여겼다.

환경단체들은 제련소에서 나온 아황산가스가 공기 중의 수분과 만나 황산미스트(sulfuric acid mist)를 형성했고 이것이 토양의 산성도를 높여(pH를 낮춰) 나무를 고사시켰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의미 있는 추론이다.

▲ 경북 봉화군 영풍 석포제련소 1공장에서 바라본 뒷산. 죽어 말라빠진 나무들이 듬성듬성 가파른 비탈에 걸려있는 것 같은 황량한 모습이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아황산가스가 황산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주변의 전문가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황산미스트보다는 아황산가스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는 게 보다 타당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황산가스에 노출된 나무는 광합성 작용을 하지 못할뿐더러 세포가 파괴돼 수분이 빠지고 황갈색 또는 회백색으로 퇴색하며 고사한다고 한다.

전체 산이 아닌 일부에서만 나무가 죽은 게 여전히 수수께끼지만 제련소에서 나온 아황산가스에 다년간 노출된 나무들이 죽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아황산가스는 남아 있지 않고 사라지니 나무가 죽은 ‘확실한’ 원인은 그래서 밝혀지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련소 측은 대기오염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문제제기와 환경부의 지적을 받아들여 요즘은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원거리측정기(TMS)로 측정된 값이 거의 실시간 보고되고 있어 기준을 넘는 가스배출은 있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또 배출기준 30% 이하의 자체기준을 만들어 지킬 수 있도록 현재 배출시설을 개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과거에는 지금처럼 관리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제련소가 스스로 기준을 강화하겠다니 지켜볼 일이다.

◇ 고사 원인 규명도 필요하지만 우선 야산 살려 놓는 게 중하지 않을까

나무가 죽은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미관상 좋지 않을뿐더러 요즘 같은 장마 때 산사태가 나지 않을까 걱정됐다. 산사태를 막기 위해 없는 나무도 심는 판인데 저러다 온 산이 다 망가지면 어떻게 하나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원인 규명을 위해 일정 부분은 원래 상태를 보존하되 나머지 지역은 다른 나무들을 빨리 심는 게 자연 생태계 보존을 위해 이로운 게 아닌가’라고 물어보았다.

나름 합리적인 의견이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은 듯 했다. 환경단체가 ‘철저한 원인 조사를 위해서는 모든 현장을 보존’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환경부와 산림청도 어쩌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하면 나로서는 할 말이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멀쩡하게 복원할 수 있는 야산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어서 좋을 게 뭘까 하는 반감도 들었다. 소나무가 죽은 원인을 은폐하겠다는 것도 아닌 바에야 주변 야산은 우선 살려 놓는 게 더 중하지 않을까.

▲ 영풍 석포제련소 제공

제련소 측은 복원 예산까지 마련해 놓고 산학 협력 사업으로 생태공학적 복원방안까지 연구해 놓았다고 한다. 제련소도 환경단체들의 입장변화만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같이 갔던 친구 박연욱도 소나무가 별로 안 보여 이상하다고 말했다. 박연욱은 1980년대 초반 석포제련소에 아연광석을 공급해주던 연화광산에서 근무했다.

40년 전 강원도 삼척의 덕풍계곡의 제2연화광업소에 근무할 때만해도 일대는 황지에서부터 봉화, 철암 등 소위 태백산맥 산록이 거의 빽빽한 소나무숲이었다고 한다.

광업소 숙소에서 저녁 먹고 나오면 송림으로 둘러싼 동그란 몇 뼘 안 되는 하늘에 달과 별만 반짝였다. 겨울에 눈은 보통 무릎을 넘게 쌓이고 계곡 소나무 숲으로 불어드는 거센 바람소리가 무서울 정도였다고 한다.

◇ 춘양 금강송, 궁궐-사찰 짓는데 쓰인 고급 소나무, 그 이름도 ‘춘양목’(春陽木)

봉화군에서도 울진, 삼척 쪽으로 붙어있는 석포는 그 유명한 금강송의 고장이다.

인근 동남쪽 태백산맥 기슭의 경북 울진에는 아예 금강송면이 있다. 봉화에서 소천면을 거쳐 태백산맥을 넘어 남한에서 제일 경치가 좋다는 불영사계곡을 지나 울진읍으로 들어갈 때 보이는 숲이 거의 소나무군락지다.

북쪽의 응봉산과 남쪽의 통고산 휴양림 사이에 ‘금강송 군락지’라는 곳이 있다. 여기 입구에 조선 숙종 때 세운 입산금지 팻말이 남아있단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요즘 제 고장 알리기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금강송면처럼 이미 알려진 이름으로 바꾸는 게 유행이다.

영월 서강의 한반도지형이 있는 곳을 한반도면, 위쪽 주천강 법흥사가 있는 지역을 무릉도원면으로 바꾸었다. 영월 중석광산이 있던 상동 밑 김삿갓 묘지가 있는 곳은 김삿갓면으로, 충북, 경북의 경계인 추풍령 지역도 원래 황금면에서 추풍령면으로 변했다.

▲ 등산객들이 힐링 명소인 경북 울진 금강송 숲길을 걷고 있다.(사진=울진군 제공)

중앙선 영주에서 영동선을 갈아타면 가까운 봉화 춘양역이 이들 금강송이 서울로 올라오는 집산지로 유명하다. 춘양 금강송이 궁궐이나 사찰을 짓는데 쓰이는 고급 소나무라 아예 ‘춘양목’(春陽木)이라고 부른다. 일반 소나무에 비해 재질이 단단하고 송진이 많아 오래 간다고 한다.

2008년 불타버린 남대문(숭례문·崇禮門) 복원에도 울진 금강송면의 소광리숲에서 난 금강송을 썼다 해서 뉴스가 됐다. 그래서 산림청은 춘양에 춘양양묘사업소를 설치해 어린 금강송 묘목을 기른다. 소나무 밑에서 솔방울이 썩어 싹이 트면 채취해 2년 정도 길러서 다시 내보낸다.

조선시대 한양에 궁궐이나 사찰을 만들 때 왜 옮기기 어려운 지역인 봉화나 울진의 금강송을 사용했을까? 충남 태안의 안면도에도 재질이 좋은 안면송이 있어 바닷길로 강화를 거쳐 서울에 오기가 쉬웠을 텐데.

재작년 대학 친구들과 야유회를 갔던 강원도 화천 파로호 상류 ‘비수구미’ 계곡도 조선시대 ‘입산금지 비표’가 있어 생긴 이름이란다.

◇ 백두대간 금강송 군락지 일부 소나무도 말라 죽어…결국은 기후변화가 원인

왕실에서 쓰는 귀한 산삼 등 약재나 산채를 채취할 목적이었을 테지만 북한강의 흐름을 따라 수송이 편리했을 것이다. 경기도 광주 퇴촌의 분원에서 만든 왕실도자기의 재료인 고령토를 주로 강원도 화천에서 공급했다 한다. 대목수가 보기엔 그만치 금강송이 우수한 재질이었을 거다.

금강송 최대 군락지는 역시 백두대간의 통고산 일대다. 환경부가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거나 자연경관이 수려해 특별히 보전가치가 높다고 인정한 생태·경관 보전지역이다.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경관 보전지역은 전국 9곳, 약 247㎢다. 이 가운데 금강송면에서 울진으로 흘러가는 짧은 왕피천 유역만 해도 102㎢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38배다.

13세기 몽골 원나라가 고려에 들어와 일본까지 정벌할 때 안동에 ‘정동행성’(征東行省)을 설치했을 때도 이곳 울진 금강송이 배를 만드는데 쓰였을 거다. 이 목재를 뗏목으로 엮어 낙동강을 따라 김해에서 각지로 보냈으리라.

몽골인들이 즐기는 40도 이상의 소주를 만든 ‘제비원’이 안동소주의 기원이었고 진도의 삼별초를 정벌한 뒤 만든 소주가 ‘진도홍주’라고 한다.

일본 정벌에 갈 배는 주로 경남 마산 합포에서 만들고 일부는 제주의 한라산 오른쪽 지역의 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제주 한림, 모슬포로 이어지는 오른 쪽에는 숲이 없고 그때부터 내려오는 말목장, 젖소목장 등이 있다. 왼쪽 성산포 지역의 오름에는 사려니 숲길과 곶자왈(용암숲)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제주의 토종 소주인 ‘하박술’도 몽골시대 만든 잔재이고.

이곳 금강송 군락지도 최근 소나무가 많이 말라죽는다고 한다. 금강송 고사는 이 일대 1만~2만ha라는 넓은 산림면적의 일부지만 경북 울진의 통고산과 천축산 사이 해발 700m고지에도 죽은 소나무들이 보인다고 한다.

한때 솔잎 혹파리병으로 많이 고사했는데 지금은 독한 약을 뿌려 큰 송충이는 거의 보기 힘들고 혹파리 유충도 거의 없다. 대신 TV에서도 나왔던 참나무를 주로 죽이는 매미나방이 기승을 부린다.

◇ 소나무는 우리민족의 사랑 담겨…석포 민둥산에 활엽수라도 심었으면

어릴 때 고향 추풍령산에도 거의 소나무가 주축이었는데 이제는 참나무 도토리나무 등 활엽수가 많다. 자료를 찾아보니 소나무를 비롯한 잣나무, 낙엽송, 리기다소나무 등 소나무속이 전체 산림 면적의 25%가량을 차지한다. 금강송이 왜 죽을까? 2014년에도 금강송면 일대 4백여 그루가 고사했을 때는 기후변화에 따른 생육환경 악화가 원인으로 지적됐다.

▲ 서울 중구 남산공원에서 열린 '건강한 남산숲을 위한 소나무 심기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이 소나무를 심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소위 지구온난화로 날씨가 더워지면서 가뭄이 심해지고 나무뿌리가 깊은 땅속 물을 흡수하지 못해 죽는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부터 봄철이면 울진 삼척 속초 고성지역에 이어지는 대형산불도 온난화 영향이다.

난대과일인 감나무가 북방한계선인 서울 강릉을 넘어 속초, 고성까지 잘 자란다. 냉대과일인 대구사과가 대구동촌-경주에서는 이제 거의 안보이고 고산지대인 장수. 진안의 덕유산자락, 괴산, 충주의 월악산자락, 봉화 영주의 소백산자락까지 치고 올라왔다.

소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소나무에 대한 우리민족의 사랑이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의 문학, 예술, 종교, 민속, 풍수 사상에 자리 잡아 왔다. 소나무는 이 땅의 풍토와 결합해 우리의 정신과 정서를 살찌우는 상징 노릇을 해왔다.

관련된 송판 송이 송엽주 다북솔 솔바람(송뢰) 솔모로 솔티 고주박이(소나무를 베어낸 죽은 뿌리) 한솔 솔뫼 등 너무 친숙한 말들이다.

조선 선비들은 묵필로 매란국죽(梅蘭菊竹)의 4군자를 쳐서 부채와 화첩을 만들고 소나무를 비롯해 거북, 학 등 10장생을 그려 병풍으로 만들었다.

소나무는 생명과 장생, 절조와 기개, 탈속과 풍류 등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했다. 우리 땅 1,000여 종류의 나무 중에 이런 상징성을 부여받은 나무는 소나무밖에 없다.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도 거의 없어져 서울시가 일부에 ‘소나무묘목숲’을 만들어 키우고 있다.

우리의 삶과 역사를 함께해온 소나무. 남자가 태어나면 문앞 새끼줄에 솔가지를 달아놓기 시작해 소나무 통나무로 서까래와 기둥을 세워 송판에다 흙을 발라 만든 집에서 살다가 소나무 칠성판에 얹혀 소나무관에 들어가 일생을 마감한다.

석포를 떠나면서 민둥산이 마음에 걸려 자꾸 제련소 뒷산을 쳐다보았다. 빨리 원인이 밝혀져 조치를 하고 소나무가 아닌 활엽수라도 식재했으면. 장마철이라 흙이 쓸려나가면 안되는데. 조바심이 났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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