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미래연구소

[이코노뉴스=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 얼마 전 지인을 만났다. 서울의 좋은 대학 영문과를 나와서 오래 학원을 운영했다. 과도한 경쟁으로 학원을 닫은 후 그의 삶은 부족함의 연속이었다.

▲ 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

아내까지 사회단체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나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어서는 수준의 돈으로 딸 둘을 포함한 집을 꾸려나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그는 서울 유명대학 출신자라는 자의식을 버리고 일용직 노동자로 나섰다. 철근일을 하다가 가슴을 다치고도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하청업체의 산재는 원청의 하도급 계약종료로 이어지기에 하청업체 사장은 그에게 산재신청을 하지 않고 넘어가주길 요구했다. 그의 가슴은 이제 그의 지병 비슷한 것이 되었다.

오랜 만에 만난 자리에서 그는 외국인노동자 문제에 대해서 토로했다. 최근 철근팀이 구성되지 않아 새롭게 일자리를 구하던 중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를 하자 전화를 받던 상대는 “우리는 외국인만 고용해요”라고 한마디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더라고 말한다. 막노동의 세계에서 외국인노동자의 과도한 고용에 대해 그는 성토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외국인노동자문제 토론회에 가 본적이 있다. 토론회는 외국인노동자의 과도한 유입을 허용하는 정치권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되었다. 건설노조의 간부였던 한 참석자는 건설업에 외국인이 너무 많이 유입되어 노동시장 자체가 이미 망가져버렸다고 진단했다. 오랜 시간 민주노조운동을 통해 건설업종사자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해왔는데 남은 것은 외국인노동자뿐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일한 건설현장의 경우 평균적으로 3팀 중 1팀만 한국인 팀이고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 팀이었다고 한다.

도대체 외국인노동자는 왜 이렇게 급격히 증가한 것일까. 그리고 외국인노동자의 과도한 증가는 어떤 문제를 초래하는 것일까. 외국인노동자의 증가의 이면에는 한국산업의 탈공업화현상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시장을 겨냥해 정규직 중심의 제조업으로 성장을 이룬 한국경제는 90년대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후발국 중국의 거센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 역시 한국의 성장방식을 그대로 모방했다. 중국의 저임금에 기반한 단순제조업은 이미 중진국에 도달한 한국의 제조업을 세계 시장에서 거칠게 밀어내기 시작했다.

한국제조업 중 낮은 기술력, 저임금에 의존했던 단순 제조업은 몰락해갔다. 제조업에 일하던 사람들은 건설현장 음식점 등의 서비스업으로 대규모로 이동했다. 서비스업의 평균임금은 제조업임금의 절반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의 저임금이다. 총취업자에서 제조업고용 비중은 1991년 27.6%에서 2007년에는 17.6%로 감소했다. 서비스업의 평균임금은 제조업의 절반을 조금 상회한다. 줄어든 제조업에서 퇴출된 사람들이 찾는 것이 건설현장의 막노동, 식당주방 같은 저임금 일자리다.

한국의 하층노동자들은 제조업의 줄어든 일자리를 저임금 서비스업에서 찾았고 삶을 이어갔다. 건설업의 산재는 다른 업종에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다. 음식점에서 오래 일한 여성들은 관절 쪽 문제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고 진통제를 달고 산다. 저임금이고 비록 몸을 망치는 업종이었지만 일자리가 있는 한 가정을 꾸려갈 수는 있었다. 가난해도 살아갈 수는 있었다. 이들에게 어려움이 닥친다. 외국인노동자다.

▲ 제조업에서 밀려난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은 마지막 선택지로 식당과 건설현장으로 발길을 옮기지만 이런 저임금 일자리에서 넘쳐나는 외국인근로자들과의 경쟁에 부딪히게 된다. 사진은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 /뉴시스 자료사진

통계청에서 실시한 ‘2015년 외국인 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137만명의 고용율은 68.3%에 이른다. 그러나 외국인들의 많은 경우가 영세업체에 일하는 경우를 감안하면 통계는 현실보다 낮을 가능성이 높다. 입장을 바꾸어 한국인이 월급 천만원을 버는 나라에 가서 사는데 거기서 놀고 있게 될까. 아니면 어떻게라도 더 일해서 자기 나라로 보내게 될까. 외국노동자의 한국임금과 자국임금을 비교한 통계에 따르면 평균 6배라고 한다.

외국인은 2007년 100만명을 넘어선 이래 9년 만인 2016년 6월 전체 인구의 3.9%인 200만명을 돌파했다. 법무부는 연평균 8%씩 증가한 것을 고려할 때 2021년 국내 체류외국인이 300만명을 넘어서 전체 인구의 5.82%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5.7%를 웃도는 수치다. 북한으로 막힌 한국은 섬나라와 마찬가지다. 국경이 느슨한 국가나 식민지를 경영한 이유로 과거 식민지출신자들이 많이 사는 나라보다 더 많은 외국인이 산다는 것은 정상적인 것일까.

외국인노동자의 대규모 유입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각 국가마다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부여한다. 무역장벽이 사라지면 기업 활동에는 유리한 국면이 전개된다. 기업의 늘어난 수익이 복지에 사용되면 세계화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수익이 기업내부에만 사용되고 인구유입의 장벽이 허물어져 그 나라 하층노동자들이 외국인노동자와 저임금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세계화는 기득권층만을 위한 도구가 된다.

저임금 서비스업은 복지가 부족한 한국에서 서민들에게 복지의 대체재다. 경제가 저성장국면에 접어들면서 40대중반이면 회사에서 퇴직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40대 중반 이후 사람에게 노동시장에서 갈 곳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이 생계의 곤란에 처해 선택하는 것이 치킨집, 편의점창업이다. 이 창업에서 실패하게 되면 이들은 중산층에서 극빈층으로 전락하게 된다. 복지가 부족하기에 가족을 꾸리는 일은 온전히 가장의 부담으로 남아 있다. 이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건설현장과 식당뿐이다. 그런데 이런 곳은 이제 외국인노동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기득권층과 기업주들은 한국인들이 일하지 않아서 외국인을 들여와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수십년 힘들게 일하던 한국 노동자가 갑자기 배부른 노동자가 되어서 기피하는 것일까. 청소원을 뽑는 시험에 고학력자들이 대거 몰리는 일이 이제는 낯설지 않게 되었다. 모두들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중독인 한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이면 한국인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업종이 제시하는 처우와 환경의 문제인 것이다. 저임금 서비스업인 건설업에서 유독 높은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음식점 종사여성에 대한 사회적 무시는 낮은 처우와 열악한 환경 이 두 가지를 모두 감수하라는 기득권층의 논리일 뿐이다. 이 두 가지를 유지시키는데 외국인노동의 공급이 있다.

외국인은 임금이 낮아도 일하고 환경이 열악해도 일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외국인이 이런 업종에서 일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국과 한국과의 환율차이 때문이다. 외국인은 몇년만 일하고 돌아가도 큰 목돈을 만들지만 한국인에게는 생존만을 유지할 따름이다.

가난한 하층노동자를 외국인노동자와 경쟁시키는 나라는 좋은 나라가 아니다.

※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은 헤드헌팅 브레인코리아 대표와 코위컨스트럭션 대표를 역임했습니다. 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로 지방자치단체의 발전방향에 대한 컨설팅과 민간기업의 조직문화의 개선사업 등의 자문을 맡아 일해왔습니다. 현재 국제관계와의 연관성 속에서 한국사회의 모순을 이해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수년 째 지식인그룹 ‘고전강독회’를 운영하며 동서양 고전을 진지하게 읽어나가는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단행본 ‘낯선 것과의 조우’와 ‘공공부문 개혁논의의 현주소와 충남에 대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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