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미래연구소 칼럼

[이코노뉴스=강철구 전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북미 대결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북한은 지난 7월에 화성-14호 미사일을 두 차례나 발사하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보여주었고 9월 3일에는 수소탄 폭발시험을 통해 핵무장이 거의 완성단계에 있음을 과시했다.

▲ 강철구 전 이화여대 교수

미국은 이에 대응하여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을 계속 벌이고 초음속폭격기 B1-B를 비롯한 전략무기들을 수시로 한반도에 전개해오고 있다.

8월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이 ‘분노와 화염’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고, 9월 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북한을 파괴하겠다고 노골적인 경고성 발언을 쏟아냈다.

이에 역시 유엔총회에 참석했던 이영호 북한 외무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로 규정하며 강력히 반발했고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불로 다스리겠다’고 맞받아쳤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말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며 당장 전쟁이 벌어져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같이 보인다.

그러나 다른 면도 있다. 미국의 많은 유력 인사들이 군사행동 대신 외교적 해법을 계속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계속 외교적 해법을 주장해 왔는데 9월 말에는 북한과 2~3개의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공개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틸러슨 장관은 그렇다 쳐도 군인 출신인 국방장관이나 고위 장성들조차 군사행동을 선호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도 군사행동을 최종 옵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군사적 옵션 채택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북핵 문제와 관련해 카메라 앞에 나서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나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의 곤혹스러운 얼굴표정들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사실 북한이 수소탄 시험까지 성공시키고 ICBM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적 옵션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미국이 선제공격으로 북한을 파괴한다 해도 북한의 ICBM을 모조리 없앤다는 보장이 없고 그렇게 되면 보복공격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EMP(electromagnetic pulse·전자기펄스)탄 몇 발이면 1년 내에 미국인의 90%가 사망한다는 예측이고 보면 자칫 미국의 붕괴도 피할 수 없다. 미국으로서도 선제공격이 결코 만능처방이 아닌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말은 과격하게 하나 그것은 단지 협상용으로 보인다. 북의 핵포기를 전제로 대화를 하려 하나 북이 응하지 않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심산일 것이다.

이는 백악관의 최고 전략가인 스티브 배넌의 태도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배넌은 지난 8월 19일에 ‘군사적 해결책은 없다’고 정부의 공식입장과 배치되는 발언을 했다가 해임되었는데 그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계속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그의 발언이 단순한 개인 의견이 아닐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하게 한다.

당시 그를 즉각 해임한 것은 보수충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이유에서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핵과 ICBM 보유를 인정하는 상태에서 북미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그것은 북미 대결에서 미국의 전적인 패배를 의미한다. 북미평화협정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주한미군 철수일 텐데 그것은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나아가 세계패권까지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70여년간 세계제국을 유지해 온 미국인들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제스처도 취하지 않고 그것을 덜컥 받아들이는 경우 가뜩이나 지지율이 떨어진 상황에서 탄핵될 가능성도 있을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 아슬아슬한 대결 국면은 북한이 한 차례 결정적인 군사적 시위를 벌인 다음에야 끝날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아마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사거리의 ICBM 발사든지 북의 이용호 외무상이 말한 대로 태평양상에서의 수폭실험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불안감에 휩싸인 미국의 여론이 움직여 즉각적인 북미평화협정으로 귀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완전 폐시키려는 미국과 핵 보유를 인정받으려는 북한간의 갈등과 대립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양새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뉴시스 자료사진 합성

이 협정은 교섭 기간이 어느 정도 걸리기는 하겠지만 북한이 협상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길게 끌지는 않을 것이다. 길게 끄는 것이 북한에게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북미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된다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미국의 돌연한 태도 변화로 인한 한미군사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는 한국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미국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북한에 대해서 한 적대행위로 말미암아 한국은 북미평화협정 교섭과정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거니와 무언가 얻어낸다 해도 대수롭지 않을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자기네 동아시아 패권이 무너지는 판에 한국을 성실하게 챙겨줄 심리적 여유도 별로 없을 것이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을 포함한 집단안보체제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미 핵무장을 하고 승리를 거머쥔 북한에게 그것을 강요할 수 있는 나라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주한미군 철수는 핵을 가진 북한과 그렇지 않은 남한 사이의 군사적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리게 될 것이고 그와 함께 정치적 균형도 완전히 북한에 기울 수밖에 없게 된다.

한국사회 내에서 갑자기 친북 세력의 힘이 엄청나게 커지고 국론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분열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게 되면 너무나 큰 북한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한국 사회는 혼란 속에서 자멸하여 북한에게 무혈 합병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진보 쪽에 속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주한미군이 철수한 이후에 북한과 남한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서로 협력하는 평화공존이 가능할 뿐 아니라 통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남한과 북한이 다른 권력의 주체라는 객관적인 사실을 경시하는 생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럴 경우 힘의 우열이 양자의 관계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어떤 형태건 한 쪽은 지배하고 다른 한 쪽은 예속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냉정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 철수는 일본에게도 큰 충격을 가할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 군사력에 크게 기대어 온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을 계속 믿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미국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면 독자 핵무장에 나설 것이다. 필자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 강철구 민족미래연구소 고문은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1979~2012년 서원대, 이화여대 등 대학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쳐왔습니다. 강 고문은 현재 민족미래연구소를 만들어 우리나라가 지향해야할 미래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론과 강의를 하는 등 활발히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역사와 이데올로기’, ‘우리 눈으로 보는 세계사’가 있으며 ‘민족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역서를 갖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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