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이것은 전치(轉置: displacement)다. 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걱정을 마스크에 대한 걱정으로 뒤바꾸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마스크는 코로나보다는 만만하므로.

▲ 김미영 칼럼니스트

나의 마스크 노심초사는 대략 2월 20일 정도에 발동한 것 같다. 15일은 그야말로 해빙무드였다. 토요일인 그날 후배랑 인왕산엘 갔는데 정상에서 기차바위 가는 길(초심자는 찾지 못해 올라간 길로 내려오고 만다는)은 병목현상이 빚어졌더랬다.

종로구 부암동 주민센터로 내려와 밥 사먹고 서촌 회화나무 카페를 가니 등산복 아저씨들이 우글우글. 무리를 피해 성곡미술관 건너 애무시네마 올라가는 길에 있는 작은 카페까지 걸었다.

만나지 못한 동안 읽은 책 얘기에 바빴다. 후배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를 읽었단다. 아 그 키스할 때 코는, 그거?

거기서 종은 조종(弔鐘)이란다. 그래서 for whom the bell (rings 가 아니라)tolls라고. 누가 죽어 조종을 울리는지 묻지 마라. 그가 죽은 것은 네 안의 그가 죽은 것이고 네가 죽은 것이니. 뭐 그런 뜻이란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기념하여 코로나 맥주 한 병씩 마셨다. 경복궁 역에서 후배를 보내고 저 앞에 서 있는 606번 버스를 뛰기 귀찮아 안 탔더니 그 직후부터 이 쪽 차선이 텅 빈다. 광화문 태극기 시위 때문에 버스들이 우회한단다. 걷다 버스 타다 하며 오니 하루 걸음수가 2만6400보, 올해 최고다.

19일에는 두 주 휴강했던 도자기 수업이 재개되었다. 선생님은 수강생들이 두어 달 동안 낸 작품들을 다 구워 오셨다. 서로 예쁘다 칭찬하며 감탄하며 마스크 쓰고 분주한 와중에 내 옆의 여인이 말한다.

아침에 나오는데 남편이 야 14명(?) 신규 발생했다는데 어딜 가 하더라고. 우리 남편도 눈 뜨면 뉴스 검색부터 하는데 그런 말 없던데요? 어디 또 뭐 가짜뉴스가 판치나보지, 어머 그런데 그 집 남편은 아내를 야야 그러나봐? 속으로 그러고 말았다.

▲ 지난달 29일 서울 북한산국립공원 사모바위에서 멀티암벽 산악회와 북한산국립공원 공단직원들이 3.1운동을 기념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기원하는 희망메시지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뉴시스

그 다음 전개는 모두 아는 바. 도서관이 다시 무기한 휴관이고 강좌도 다음 공지가 있을 때까지 휴강. 20일 낮에 우유 사러 동네 생협엘 갔는데 매대가 약탈당한 것처럼 허룩하다. 생필품 사재기의 시작? 그제야 마스크 생각이 났다.

그동안 우리 식구들은 미세먼지 용으로 사뒀던 마스크를 사용했다. 일년 전 쯤 아들내미한테 미세먼지 마스크 사오랬더니 어디서 수치도 없는 말 그대로의 일회용 마스크 베트남산(20장 한 세트에 3000원)을 잔뜩 사와 지청구를 먹였는데 그거 안 버리길 얼마나 잘했는지.

황급히 마스크 재고 조사. 저 듣보잡 일회용이 60장 남았고 메이드 인 코리아 KF94는 가방에 넣고 다니던 것, 남편 골프백에 있는 것까지 모조리 모아 보니 16장. 뉴질랜드 트레킹에서 이 나라 공기만큼 좋을까 하고 공항에서 사온 헝겊 마스크 두 개.

네 식구가 하루 한 장씩 쓰면 세 주. 나는 마스크 절약 차원으로 집콕하면 네 주 정도. 더러 헝겊을 쓰면 한 달은 버틸 것 같다. 한 달이면 이 상황이 얼추 진정되겠지.

▲ 3일 오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서울역에 마련된 마스크 공적 판매처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뉴시스

이성의 소리는 이랬지만 마음의 소리는 달랐다. KF수치 있는 걸로 100장 넘게 마련해 뒀다는 친구 말이 나의 불안에 기름을 부었다. 온 동네를 돌아다녀도 모두 품절, 매진, 마스크 없어요. 인터넷 들어가도 품절. 후기엔 웬 쓰레기가 왔다는 말들. 가격 올라 환불됐다는 소리.

 

돈 있는데 살 수 없다니 자본주의가 드디어 망한 거? 이 참 특이한 경험일세. 산에 가 놀 게 아니라 약국을 돌았어야 하는데 아 나의 미스테이크!

인터넷이라도 들어가 봐라, 대형병원 근처 약국 돌아 보라는데 한 번 가보자, 니들은 엄마가 이렇게 동동거리는데 반응이 없니, 엄마 무시하니. 이 히스테리가 집집마다 일어나면 그게 패닉이지.

정부에서 그걸 모를 리 없으니 마스크를 공공판매 한단다. 우체국에서 온라인 판매한다하여 인터넷우체국을 검색하니 접속 자체가 불가능. 다음날 (26일) 오전 들어가 보니 순조롭다. 역시 현대인은 아침잠이 많군. 회원 가입만으로도 뭔가 뿌듯.

28일 오전, 동네 마트 안의 약국 앞에 서서 눈을 맹렬히 돌린다. 헝겊 마스크는 있는 것 같네, 저것은 아동용? 면박당할까 봐 묻지도 못하는데 주인장이 뭐 찾으세요 한다. 미안한 어조로 마스크요, 없지요? 하니 그런 것 같아서요 하면서 2장을 내민다. 안에는 3장 남았다. 기대도 안 했는데 이게 있네요 고맙습니다, 콧소리 섞어 인사하니 복이세요 한다.

▲ 방역복을 입은 한 시민이 2일 오후 서울역 내 중소기업명품 마루매장 브랜드K 코너 앞에서 구입하고 있다./뉴시스

별 게 다 복이네. 약사 앞에서 가격을 확인하기 송구하다. 밖으로 나와 확인하니 2장에 5000원. 별 흉흉한 숫자가 다 들리던데 이 정도면 좋네 했다. 알고 보니 서울은 우체국에서 안 팔고 약국으로 돌리는 모양. 그 마지막을 요행 얻어 걸린 것. 마스크를 관상 보고 파나?

그 행운에 마음이 좀 풀려 해해댄다. 엄마 생일 선물로 뭐 받고 싶어? 아들 소리에 마스크 100장! 했다. 농담이지만 마음 한 켠에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엄마 좋아하는 과자라며 반갑지도 않은 탄수화물 덩어리만 사다 안기며 부록으로 일제 마스크 두 장을 건넨다. 수입 식품 코너에 있더라고, 꽃가루 방지용 인 듯.

다들 어떻게든 꿍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네, 했다. 유심히 보니 천 마스크가 꽤 늘어났다. 내 딸도 일회용 마스크를 오래 하니 얼굴이 가렵고 안 좋다고 천 마스크를 쓰겠단다. 그렇다고 싸진 않다. 연남동 힙한 가게에서 1만7000원 주고 샀단다.

3월 2일 신생아 돌보기 봉사 가는 날. 전날 뒤척거리며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거긴 가난한 동네니까 비싸게 파는 마스크가 종종 남아 있을지 몰라.

지하철보다는 내 맘대로 창문 열어 환기할 수 있어 버스가 나을 것 같다. 한참을 걸어 한강 다리 앞까지 가서 버스 타고 30분 정도 가다 내렸다. 목적지까지 걸어가며 나오는 약국마다 살핀다. 다들 마스크 없다고 써 붙였다.

그런데 한 약국에 ‘KF94 마스크 입고’ 라고 써 있는 것 아닌가. 눈을 의심하며 들어갔다. 중년 남자 서너명과 젊은이 한 명이 있다. 자태도 찬란한 마스크가 수 십 장 걸려 있다. 일인당 몇 장 되요? 제한 없어요. 신나서 양 손에 욕심껏 움켜쥔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 중인 3일 제주국제공항 3층 출국장에서 특수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 중국인이 출국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뉴시스

그런데 이상하다. 경쟁이 없다. 사람들이 들어와 보고 잠시 주춤대다 그냥 나간다. 나만 산다. 처음엔 나만 사기당하는 건가 싶었다. 정품이죠? 어쩌고 하며 봐도 뭘 알겠냐마는 이리저리 살펴본다. 회사 이름이 낯설지만 내가 마스크 제조업체를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별 이상 없는 것 같은데.

깨달았다. 3장 들이 한 세트에 1만2000원. 비싸서 안 사는 거구나. 그걸 나는 12세트나 샀구나. 더 사고 싶었지만 들고 있는 가방이 작아서 더 못 넣을 것 같아서. 마스크를 남들 눈에 보이게 들고 나가는 건 철면피한 것 같아서. (들치기 걱정은 안 했다. 그만큼 분노 게이지가 높은 것 같진 않다.)

▲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6회국회(임시회) 제6차 본회의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경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질문 때 전광판에 마스크 무상공급 예산반영과 관련한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뉴시스

나는 거기서 마스크를 안 사고 나올 만큼 감상에 빠지진 않는다. 자본주의 구루 행세하는 빌 게이츠를 역겨워 한다. 문제를 개인 도덕화하는 것은 공모다. 최근 <자본주의적 리얼리즘>을 읽으며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나,

그 약국 문을 나오면서 그 동네엔 있을지 모른다는 나의 사회학적 상상력(?)이 징글징글했고 그것이 맞은 게 서글펐다. 수십 년 공부해서 기껏 이런 실용을 하는구나.

나의 염치는 ‘그 약국에 30여 세트의 마스크를 (사지 않고)두고 나오기’에서 ‘공공판매 마스크를 찾아 줄 서지 않기’ 정도다. 이 찜찜함을 덜기 위해 신촌역 1번 출구와 2번 출구 사이에 있는 맙수 아저씨께(돈을 놓으면 고맙수 한다) 두어 세트 드릴지도 모르지. 어쨌거나.

내가 수십년 공부한 사회학은 마스크 배급제를 답으로 낼 것이다. 지금 마스크는 보편복지에 의거할 사안이다. 말부터 앞세워서 곧잘 하고도 욕 먹는 정부는 이제 발상을 전환하자.

월급 받고 일하는 통장, 반장들이 집집마다 마스크를 돌리게 하자. 마스크 부자들은 그것을 다시 홈리스에게 돌리고. 조직 뒀다 뭐하나. 사람들 밀착 줄 서서 감기 걸리고 바이러스 감염되게 하지 말고. 서너시간 줄 서서 마스크 5장 사들면 기쁠까 화날까? 정부는 사회심리학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려대, 홍익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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