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경기대 겸임교수 국제정치학 박사]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국제장편영화상, 각본상을 받아 주요 부문 4관왕을 수상했다.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기록이고, 자랑스러운 문화예술계의 경사다.

▲ 김홍국 편집위원

영화 ‘기생충’은 지난해 5월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에 이어 골든글로브의 외국어영화상과 함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오스카상까지 석권함으로써 열풍과 함께 한국 영화의 힘과 저력을 전 세계에 증명했다.

한국 영화 역사는 이제 ‘기생충’ 이전과 이후로 나뉘면서 새로운 문화예술계의 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은 한국 영화 101년 만의 결실이자 아시아계 영화 최초의 새 역사를 썼다.

그동안 오스카는 유색 인종에 인색했기에 “남성, 백인, 보수가 오스카를 대변하는 키워드”라는 비아냥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영화계의 백미인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을 황색의 이방국가인 한국에 헌정했다.

이번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오른 작품 9편도 ‘기생충’을 제외하면 모두 백인의 영화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

▲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작품상을 받으며 환호하고 있다.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건 오스카 92년 역사상 처음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며 감동적이고, 세계화를 통한 글로벌화 시대에 적합한 상징적 사건으로 새로운 영화예술의 역사가 쓰여졌다는 평가를 할만하다.

이번 수상의 성과는 미국 영화 ‘마티’가 황금종려상(1955년)·아카데미 작품상(1956년)을 한꺼번에 거머쥔 이후 64년 만으로, 한국어로 쓰고 한국자본으로 만든 ‘토종 한국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기생충’은 수많은 감독, 배우, 작가, 기획자들의 노력과 함께 ‘한류 열기’를 타고 영화의 수출·배급·합작 등에서도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향후 한국영화의 미래를 주목할만하다.

탁월한 실력과 결단력, 겸양과 배려의 리더십, 역사 만들다

이번 수상은 역시 봉준호 감독의 역량과 치열한 영화예술에 대한 탐색과 함께 그의 리더십에 기인한 바 크다고 판단된다.

▲ 프랑스에서 개봉한 영화 '기생충' 포스터. 2019.06.24. (사진=CJ ENM 제공)

봉준호의 리더십은 탁월한 실력과 결단력에서 출발한다. 그는 1996년 장현수, 강우석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 가지 이유>에서 연출부와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하면서 충무로에 입문해 탄탄한 기초실력과 영화에 대한 애정을 길러왔다.

이후 <모텔 선인장>(1997), <유령>(1999) 등의 영화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 하면서 2000년 <플란다스의 개>(2000)로 감독 데뷔를 하면서 그의 영화세계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살인의 추억>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0차례에 걸쳐 일어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김광림이 쓴 연극 <날 보러 와요>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한국사회에 깊은 성찰의 울림을 줬다.

봉준호의 세 번째 작품인 <괴물>(2006)은 봉준호 감독이 3년간 한강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시나리오를 완성한 영화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봉준호의 영화는 추리극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것을 지키기 위해 해결사로 나서는 과정을 통해 한국사회를 포함한 현대사회의 갈등과 모순, 부조리한 세계를 탐색하고 있다.

이는 <마더> (Motherb(madeo), 한국, 2009), <이키> (Iki), 일본, 2011, 단편), <설국열차> (Snowpiercer (seolgugyeolcha), 한국, 2013) 등 최근 후속작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제작하는 영화마다 다양한 현대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사회적 통찰력과 고뇌를 담았고, 이를 작품화하는 결단력으로 성공적인 영화세계를 구축하곤 했다.

그의 영화와 사회에 대한 깊은 탐색과 고민, 사회적 해법에 대한 통찰력과 예지력이 그의 영화를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영화로 주목받게 했다.

▲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영화 '기생충'이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제26회 미배우협회(SAG) 시상식에서 '앙상블상'을 받아 봉준호(뒷줄 왼쪽 두 번째) 감독과 배우들이 프레스룸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우 송강호, 박소담, 이정은, 최우식, 이선균이다.

그의 리더십은 겸손과 겸양을 통해 더욱 위대한 영화감독으로 도약하게 한다. 그는 촬영현장에서 진행스탭과 배우들과 어울리며 친화력이 가장 뛰어난 감독으로 꼽힌다.

그의 겸허한 자세와 타인을 높이는 태도는 오스카 시상식장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수상 소감을 통해 “영화 공부할 때 늘 가슴에 새긴 말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바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한 말이다.” “나는 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사랑한다.” 봉 감독이 자신과 나란히 감독상 후보에 오른 선배 영화인을 향해 경의를 표했다.

이 장면에 대해 일간 뉴욕포스트는 9일(현지시간) "봉준호는 '성자'였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봉 감독의 특별한 수상소감을 다룬 것은 그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준다.

뉴욕포스트는 "경쟁 후보로 오른 동료에게 감사를 전하는 건 흔하지만, 패자에게도 진정한 기쁨의 눈물을 쏟게 한 승자를 본 적 있는가?"라며 "그게 바로 봉 감독"이었다며 극찬했다.

▲ 11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영화 '기생충' 촬영 장소인 한 슈퍼마켓에서 일본일 관광객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봉 감독이 감독상 수상소감 도중 영화 '아이리시맨'으로 후보에 올랐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게 진심 어린 존경을 표해 객석의 환호를 받은 것은 바로 그가 사랑받는 영화감독으로서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토양이 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는 늘 감독과 아티스트는 동역자라며, “나의 작품이 아니다. 공동작품이다.”라고 말했고, “배우는 나의 동반자요 친구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작품은 위대한 배우들이 있어 가능했다고 말하곤 했다. 감독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어떤 이들이 감동하고 함께 손을 내밀지 않을 것인가?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경제부 정치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로 YTN 등에서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MBA(기업경영)를 취득했고, 리더십과 협상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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