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한필이 컬럼니스트] ​이웃 동네 사는 친구가 하루는 퇴근 무렵에 회사 밖으로 잠깐 나올 수 있냐고 전화를 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전남 여수에서 지인이 소라와 미역을 좀 보냈는데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잠깐 들러서 전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 요즘도 이웃과 음식을 나누는 이가 있다니!' 그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마워서 하려던 야근을 접고 소주나 한잔 하자며 짐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쯤인가에 충남 서산 사는 친척분이 게를 보내와서 그 친구 집에 가져다 주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거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대학

전문(傳文)8

수신제가(修身齊家)

故(고) 諺有之(언유지) 曰人莫知其子之惡(왈인막지기자지악)  莫知其苗之碩(막지기묘지석)

此謂身不修(차위신불수)  不可以齊其家(불가이제기가)

[그러므로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은 자기 자식이 잘못 되어 가는 것을 알지 못하며, 자기가 씨 뿌린 곡식의 싹이 커가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스스로를 닦아 나가지 않으면 자기 집안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는 사물의 양면을 볼 줄 알아야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어른이 될 수 있고, 그를 통해 집안을 바르게 다스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전해오는 속담을 빌어 그 내용을 다시 확인해 줍니다.

​​오랫만에 가족동반 모임을 가면 다른 집 자식들이 훌쩍 큰 것이 보입니다. 하지만 매일 보는 우리집 아이들은 고만 고만해 보이지요. 그 만큼 가까이서만 봐서 그런거겠지요.

나도 모르게 내쪽으로 당겨져 있는 겁니다. 아이들이 커가는 것은 육체적 성장 뿐 아니라 내면 세계의 영역도 마찬가지여서 '머리도 영글어' 갑니다. 한 여름 과일나무에 매달린 아직 시퍼런 열매들처럼 '풋과일'이라 해도 동그랗게 모양새도 갖추고, 단단해져 갑니다.

부드러운 것은 점점 거칠어지고, 말캉한 것은 점점 단단해져갑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내쪽으로 끌어당겨야 합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먹어야 합니다. 입안으로 끌어당겨야 합니다.

​생명이 존귀하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살아있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쪽으로 잡아당겨야 하는 굴레 같은 것이 있습니다. 오늘 글에서는 그것을 악(惡)이라 표했습니다(曰人莫知其子之'惡').

생존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끌어 모으고 굳어져가는 것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필요악이란 것이겠지요. 이것이 심해지면 이제 아수라장의 아귀로 점점 변해가게 됩니다.

입은 조그마한데 끊이없이 먹어야 하는 괴물이 겪는 고통은 크겠지요. 마음은 점점 작아지고, 욕망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서 내게로 당길 힘만 추구하는 어른으로 자라 갈 가능성이 크겠지요. 그래서 베푸는 행위가 아주 중요해집니다. 나에게로 당긴 것을 타인에게 나눠주고, 또 나한테 모자란 것은 타인으로 부터 받을 수 있다면 돌고 도는 순환이 생겨서 서로 무탈하게 잘 자라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식물중에서도 벼는 문명전환을 할 정도로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논에 씨앗을 뿌리고 모내기를 하고, 매일 나가서 피를 뽑아주고, 물을 대주고 하는 농부마음은 부모마음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그 곡식 씨앗이 눈을 떠서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자라가는 것이 매일 논에 나가는 농부의 눈에는 잘 보이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오랫만에 찾아간 이웃 마을 최씨 집 논에서 자라는 벼들을 보니 파르스름하게 녹색 머릿결을 참빗질 한 것처럼 바람에 살랑대는 폼이 훌쩍 커 보입니다.

한 여름을 지나 가을 서늘 바람이 불어올 때 쯤 되면 이제 녀석들은 잔망스레 수다떨 듯이 서로 엉킨 채 알알이 굳어진 잔톨뱅이 몸들을 드러낼 것입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렇듯 자연도 익어간다는 것은 굳어져 가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크다, 머리가 크다, 차다, 충실하다, 단단하다'는 뜻의 석(碩)자를 쓴 것이겠지요(莫知其苗之'碩'). 발 밑의 논물과 한여름의 소나기와 뜨거운 햇빛이 '쌀'로 달려가는 녀석들의 살집을 통통히 채워주겠지요. 논바닥에 뿌리 내린 여린 한 몸이 주변 환경과 교류 대사하면서 곡식으로 성장하게 되겠지요.

​​그래서 이제 오늘 말씀은 한 집안을 잘 다스리려면 어느 한쪽으로만 굳어 쏠리지 않게, 마음의 중심을 고루 돌려 균형을 잡아주고, 어디 넘치는 곳은 없는지, 어디 모자란 곳은 없는지 두루 살필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해서 구성원들이 혼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한테만 당기려 하지 않고, 서로 잘 교류하고, 주변 환경과도 대사할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한다는 말도 됩니다. 그리하려면 힘과 지혜가 필요한데 이것은 결국 자신을 닦을 때만이 구할 수 있는 것이어서 수신제가의 제일 덕목은 역시 자신이 먼저 공부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됩니다.

이리보면 아내와 함께 동네 고양이의 늘어진 몸짓을 바라보며 생맥주 한잔 기울이는 여름 밤 풍경 역시 월급쟁이 아빠의 훌륭한 공부거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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