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우의 세상이야기

[이코노뉴스=남경우 대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간의 한미 정상회담이 끝났다. 문 대통령의 말대로 한반도가 평화체제 구축으로 이어질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2000년 북한 방문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

▲ 남경우 대기자

2000년 2월 나는 반도 남쪽을 떠나 외국여행이라고 처음으로 간 곳이 북한 남포였다. 그 해 6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두 정상이 만나 역사적인 6.15선언을 발표했다.

그 후로 나는 중국 인도 일본 미국 유럽 등지로 돌아 다녔지만 첫 해외(?) 나들이가 북한이었던 것이 뭔가 내 삶에 중요한 메시지가 아니었나 하는 내멋대로의 해석을 해보곤 한다.

 북, 옷감을 보내달라 요청

사연은 이랬다. 당시 내가 다니던 내일신문 대표 최영희 여사가 한국여성단체 대표단 자격으로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조선여성협회와 회담을 가진 후, 하나의 미션을 가져왔다.

그것은 남쪽의 옷감을 북으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이 주제로 내일신문 간부회의가 열렸는데 아무도 이 문제를 풀어보려는 간부가 없었다. 우선 어떻게 옷감을 모을 것이며 또 어떻게 전달해야 할 지가 막막한 사안이기도 했다.

어찌어찌 홍보실장이었던 내가 이 문제를 맡게 되었다.

나는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던 당시 산업자원부 이희범 차관(현재 2018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설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남북화해를 주요 정책과제로 삼았던 당시 김대중 정권의 청와대의 기류 때문이었는지 나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주었다. 덕분에 한국의 섬유업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어 30만야드의 옷감을 모을 수 있었다. 이는 약 10만명 정도의 옷을 지을 수 있는 양이라고 했다.

다음 문제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옷감을 인천 항구에 수거해 오는 일이었다. 이 문제도 대한항공 관계자에게 부탁해 관계사인 대한통운을 통해 컨테이너박스 10개 분량의 옷감을 모을 수 있었고, 대한통운을 통해 북한 남포를 왕래하는 미얀마 선적의 배를 수배해 북한수송수단도 준비했다.

통일부와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서 교육 및 수속을 마친 후 찬바람이 여전한 인천항구에서 북한으로 왕래하는 미얀마 배에 인도원 자격으로 승선하게 되었다. 미얀마 인들이 운행하는 배는 오전 11시경 인천항을 떠나 서해의 공해상으로 나간 후 다음날 오후 무렵에야 남포갑문에 도착하게 되었다.

당시 인천항구는 대형 소형 선박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반면 남포갑문을 통해 들어간 남포항은 대형 선박 두 개에 소형 선박 몇 개정도일 뿐인 작은 포구였다. 북풍이 몰아치는 배 위에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별스런 상념이 스쳐갔다. 망망대해, 칠흙 같은 밤, 남한, 북한, 분단 ……. 수 없는 말로도 당시의 감정을 정돈하기 어려웠다.

▲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이후 문재인 정부하에서 남북한간 대화의 물꼬가 터일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5년 북한 자체 기술로 제작된 첫 40t 컨테이너 기중기가 설치된 남포항의 모습. (사진=조선중앙TV 캡처/뉴시스)

늦은 오후 배는 남포항에 정박했고, 나는 해외선원구락부(호텔에 해당)에 짐을 풀고 안내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그분들과 저녁을 먹었다. 전등은 수시로 꺼져 결국은 촛불을 킨 후에야 저녁을 끝낼 수 있었다.

그 날 요리는 동해 털게 찜이었는데 요샛말로 이야기 하면 조미료가 완전 없는 자연식이었다. 음식은 소박했지만 맛은 깊었고 정성스러웠다. 물론 남한 사회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상추 한 잎 없었다. 푸성귀를 보관할 수 있는 냉장시설이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 "남조선에서 오신 선생님 반갑습니다"

주위 보이는 건물들은 모두 잿빛이었고 대동강변 하구의 언덕은 민둥산 그 자체였다. 겨울이어서이기도 했지만 아마 땔감이 부족해 산에 있는 초목을 연료로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프로그램은 별로 없었다. 영화를 보여주려 했는데 이것도 전기가 자주 끊겨 마지막까지 보지 못했다. 그러니 구락부 영내를 어슬렁거리며 항구 일꾼들끼리 하는 배구 경기를 옆에서 지켜본다거나 탁구대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같이 탁구를 치면서 운동하는 게 고작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들과 탁구치며 나누었던 몇 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남조선에서 온 선생님 반갑다’고...그 날 저녁은 백두산 들쭉술을 마셨는데 우리의 접대원은 노동당원이자 외교부 서기관급의 관리들이었다.

이렇게 2박 3일이 흘러 역순으로 남포를 떠나 남포갑문을 통과해 인천항으로 돌아왔다. 그때가 2000년이었다. 나는 그 후 북한에서의 2박3일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부족했고 을씨년스러웠던 남포항구였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었는데 당시의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 가장 최고조에 이르렀던 힘겨운 시기였다. 17년이 지났다. 지금의 남포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그 후 북한 소식을 버릇처럼 훑어보기 시작했다. 지금의 북한경제는 아주 빨리 발전하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과연 어떨까? 문재인 정부하에서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될 수 있을까. 같은 민족이 적대하며 살아가는 것도 청산할 때가 되었다.

※ 남경우 대기자는 내일신문 경제팀장과 상무, 뉴스1 전무를 지냈으며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모임인 북촌학당에 참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 해법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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