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영풍 경영권 분쟁의 심판은 국민연금이 아닌 시장

2024-10-17     박병호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겸임교수
고려아연 CI(왼쪽)와 영풍그룹 CI.(사진=각 사 제공)

[이코노뉴스=박병호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겸임교수]  시끄럽고 탈 많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1라운드 격인 영풍⦁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가 막을 내렸다.

영풍⦁MBK 연합은 고려아연 지분 5.34%를 추가하면서 38.47%의 지분을 확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일가와 우군들의 33.99% 지분보다 4.48% 포인트 앞선 상태에서 이제 2라운드를 맞고 있다.

영풍⦁MBK 측은 14일 “오늘이 한국 자본시장에서 의미있는 이정표로 남게될 것”이라며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로서, 경영지배를 공고히 하고 투명한 기업 거버넌스 확립을 통해 지속성장과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병호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겸임교수

반면 고려아연은 “고작 5.34%의 성적표로 ‘공개매수 성공 호소인’ 행사를 하고 있다”면서 “고려아연 경영진과 임직원 일동은 국가기간산업을 지켜낸다는 일념으로, 우리 기업을 해외에 팔아 넘길 수 없다는 필사의 각오로 대응하겠다”고 맞섰다.

◇ 앞으로 다가올 2라운드와 3라운드

2라운드에서는 최윤범 회장 일가가 고려아연과 베인캐피털의 자사주 공개매수를 통해 영풍⦁MBK와의 격차를 2% 포인트 이내로 줄이고, 이 경우 현 경영진과 우호적인 기업들인 현대차, 한화, LG그룹이나 기타 대리점 또는 고객 등의 소수 지분까지 합하면 싸움이 될 만한 지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풍⦁MBK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장내 매집을 통한 추가지분을 확보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장내 매집을 통해 확보하는 수량이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그렇더라도 50% 이상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여러 쟁점의 법적 다툼과 언론을 통한 홍보전이 말 그대로 이전투구처럼 진행될 게 뻔하다.

3라운드에서는 주주총회에서의 표 대결이 진행될 것이다. 경영권을 가진 이사회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주식회사의 최고 의결기관인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이 이루어질 전망인데 어느 쪽도 50%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표 대결이 벌어지면 그때까지도 주식을 들고 있는 다른 주주들에 의해 1차전의 승자가 결정될 것이다.

◇ 1차전 승자 결정에 대한 국민연금의 캐스팅보트 가능성

3라운드에 들어서면 시장에서의 유통 가능한 주식은 전체 지분의 16% 미만에 불과한데 현재 국민연금이 들고 있는 고려아연의 지분이 7.7%에서 자사주 공개매수 후 소각하게 되면 8.4% 수준까지 올라가게 된다. 국민연금이 선택한 쪽이 다른 주주들의 표심과 관계없이 승자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결국은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Casting Vote)를 가지게 된다는 말인데 캐스팅보트란 의회에서 가결이냐 부결이냐 결정할 때 가부동수가 되면 의장이 결정하는 제도에서 나온 것으로 가부동수일 때 이를 결정하는 제3의 세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공수 양측은 모두 국민연금을 찾아갈 것이다. 국민연금의 선택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치인이나 정부 관계자를 찾아가고 시장에 읍소하고 구애를 보낼 것이다.

막대한 자금이 이미 풀렸고 상할 만큼 상한 양측의 감정은 돌이키기 어렵게 된 이상 모두 절박하게 국민연금의 선택을 바라게 될 수밖에 없다.

◇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면 안 되는 이유

국민연금은 저절로 쥐게 된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막대한 후유증이 국민연금을 괴롭혀 본연의 연금 가입자를 위한 운용수익률 관리가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격하는 측과 수비하는 측 모두 시장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쪽 편들기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다.

세계 1위 제련업체의 위상과 경기와 상관없이 안정적인 수요를 가진 비철금속이 사업 아이템인데 도 불구하고 그동안 고려아연의 성장과 주주가치 제고 성과는 물론 각종 영풍이 제기하는 의심스러운 투자에 대한 해명 등을 보든지, 석포제련소 등 영풍이 지금까지 보여 준 부진한 경영 실적을 보면 시장은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어렵다.

※ 영풍 측 지분은 기존 33.13%에서 공개매수로 5.34%를 추가. 현재 38.47%를 확보한 상태(그래픽=뉴시스 제공)

 

지금은 갑자기 주주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분쟁으로 주가가 올라간 것을 제외하면 어느 측의 말도 신뢰하기 어렵고, 분쟁으로 인한 후유증은 주식을 팔고 떠나지 않는다면 남아있는 주주들에게 부담이 될 것은 분명하다.

둘째,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국내 상장기업은 270개에 달한다. 경영권 안정을 외치는 지배주주와 달리 시장에서는 경영을 잘하는 기업 지배주주의 경영권은 당연히 보호돼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매각되는 것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시장의 기능인데 이러한 판단은 시장이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민연금은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시에 지배주주가 아닌 일반 주주들의 주식 가치를 훼손하는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이 있으며 부당 합병에 따른 막대한 손해는 궁극적으로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돌아간 사례가 있음을 시장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심판은 국민연금이 아닌 시장

1차 승자가 나와도 기존 이사들을 전원 교체할 수 있는 지분율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4라운드를 시작으로 2차전이 전개될 수도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에도 시장은 고려아연의 가치를 극대화하면서 지배주주가 아닌 전체 주주의 가치를 더 높게 하는 쪽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에 비해 국민연금은 단지 다음과 같이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시장이 심판이 되어 결정한 방향을 지지하고 뒤받쳐 주어야 한다. 시장의 선택과 선택 방향이 불확실하거나 지금과 같은 이전투구의 싸움에서는 중립을 취하고 ‘proration’(비례할당) 방식으로 보유하는 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동시에 운용수익률 제고를 위해 가진 주식을 공개매수에 응하든지 프리미엄을 받고 파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연금 운용수익률을 올리는 게 더욱 중요하지 의결권 행사를 위해 주가가 하락할지도 모르는 주식을 계속 가지고 가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 아니다.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오이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않으며 자두나무 아래서는 갓을 고쳐 쓰지 않는다는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박병호 한국패럴런트후원협회 대표 겸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겸임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IB사업본부장, 리서치본부장, 우리금융지주 IR담당임원, 중견제조업체의 대표를 지내는 등 다양한 직무를 두루 경험한 전문가입니다.

최근에는 비영리 사단법인 한국패럴런트후원협회를 만들어 패럴런트의 취업과 후원/지원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