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 경제신간 리뷰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5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 저격수’로 잘 알려진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했다.

▲ 김선태 편집위원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 이용섭 일자리 위원회 부위원장에 이은 세 번째 경제 분야 지휘관이다. 국회 청문회를 거쳐 취임이 확정되어야 하겠지만 벌써부터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은 상당한 압박감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기업 구조에 대한 김상조 교수의 비판은 그간 주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 문제와 관련되어 화제를 뿌려왔고 그 핵심 중 하나가 ‘미래전략실 해체’ 주장이었다.

그런데 지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김 교수가 박영수 특검의 자문을 맡고 국회 증언까지 나서면서 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이 과정에서 구속된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실제로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다. 김상조 교수가 더욱 주목 받게 된 배경이다.

김상조 교수는 지난해부터 문재인 대통령을 수시로 만나 포괄적인 경제 정책을 논의해 왔고 그 과정에서 공정위 조사국 부활, 집단소송제 도입, 전속고발권 폐지 등 재벌개혁과 관련된 다수 대통령 공약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점에서 김 교수가 맡게 될 공정거래위원회와 재벌 개혁 사이에 어떤 상관 관계가 있을 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정과 정의사회』에 실린 김 교수의 글을 살피는 이유다.

‘재벌공화국과 경제정의’라는 제목을 붙인 이 글은 오늘날 재벌이 낳은 폐해가 권력의 그것 못지 않게, 어떤 점에서는 ‘그 관계가 역전되었다 볼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이 말은 재벌의 성장으로 인한 경제력 집중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재벌이 성장을 위해 취한 ‘시장 지배력의 오남용’을 비판하려는 것이다.

▲ 『공정과 정의사회』 = 김상조 등, 조선뉴스프레스, 440쪽, 2011. 11. 10.

김 교수가 보는 가장 핵심적인 오남용은, 재벌기업들이 산업간 연관관계를 통해 국내 부가가치 및 고용 창출에 기여하지 않고 마치 ‘고립된 섬’처럼 홀로 부를 독점하면서 중소기업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가로막는데 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대기업들이 국내 중소기업들을 자신의 하도급 업체로 만들어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대가로 그들을 극한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재벌의 구조 개혁과 하도급 거래 공정화 즉 공정 거래의 연결고리가 여기에서 생겨난다.

특히 김 교수는 ‘삼성의 지나친 권력 행사’가 고질적인 악폐를 낳았음을 강조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첫째 사외이사를 거수기로 만든 것, 둘째 이와 관련하여 소수 지분으로 주주총회를 좌지우지하는 일, 셋째 가장 중요한 문제로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을 꾀해 온 행태 등을 든다.

고 이병철 회장의 재단 출연을 통한 주식 이전,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주식을 헐값으로 취득한 경우가 그렇다. 김 교수는 또한 국내 재벌 총수 일가나 3세들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대신 계열사의 사업기회를 가로채거나 자신에게 그룹의 일감을 몰아가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려 해왔음을 지탄한다. 명백히 회사와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불법부당 행위를 죄의식 없이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지배력을 기초로 재벌계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을 하도급화해 투자 기회를 박탈하고 자신들은 핵심공정과 연구개발 분야에 자원을 집중한다. 반대 편에 선 중소기업은 영세화와 양극화가 고착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즉 다른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중소기업이 생겨나며, 그 속에서 영세기업 비중은 늘고 소기업 및 중기업의 비중은 줄어만 간다.

이 불평등은 다시 중소기업 노동자의 근로조건 악화와 고용 불안정성 심화, 비정규직 양산으로 이어진다. 재벌이 잘 되어야 나라가 산다는 이른바 ‘낙수효과’는 청산할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상조식 공정거래의 골자가 ‘하도급 거래에서 재벌의 우월적 지위를 배제’하는 것임이 확인된다. 그런데 이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 지나치게 비대한 ‘재벌의 경제권력’에 비추어 볼 때, 불공정 하도급 거래의 문제는 “검찰·법원 등의 사법기관, 그리고 공정위·금융위·국세청 등의 감독기관이 제 할 일을 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단순히 대기업의 시혜적 지원이나 우수 대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 이른바 시장친화적 수단만으로 이 관행을 근절할 수 없다. 일정 수준의 재벌 개혁을 추진함은 물론, 중소기업이 대항력을 갖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중소기업이) 개별 하도급업체 차원에서는 대등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유사한 상황의 하도급업체가 공동으로 거래조건을 협의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상의 부당공동행위(담합) 규제를 일정 조건 하에서 완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법률적으로는 ‘독점 및 불공정거래에 관한 사안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설치된 장관급 중앙행정기관’이지만 김상조 교수가 지휘봉을 잡으면서 그 위상이 현저히 달라지게 되었다. 당분간 재계는 김 교수의 거취와 행보에 비상한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김선태 편집위원은 서울대 독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북토피아 이사, 전 내일이비즈 대표를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출판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현재 휴먼앤북스 출판사 주간과 (사)지역인문자원연구소 선임연구원을 맡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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