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지난 3일 불기 2561년(2017년) ‘부처님오신날’(석가탄신일)을 맞아 대한불교 조계종에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일요일 서울의 모든 성당에서 사용하는 미사용 팸플릿(주보)에는 비교적 긴 염 추기경의 메시지 전문이 실렸다. 국교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성탄절과 석탄절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는 것도 특이하지만 이때마다 불교와 천주교의 수장이 서로 축하메시지를 교환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

염 추기경은 메시지에서 요즘 우리나라 안팎에서 많은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언급한 뒤 "고통 중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가치는 부처님의 자비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민족이 어려움 속에서도 발전을 거듭하며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불교의 위대한 가르침이 많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치하했다.

염 추기경은 끝으로 “우리나라는 여러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유례없는 나라”라며 종교인들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표양이 되고 더욱 큰 희망의 징표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의 메시지에는 불교용어인 중생, 자비, 광명 등의 단어들이 그대로 들어 있다.

중동 지방에서 이슬람국가(IS)의 발호로 이라크, 시리아에서 기독교 국가인 미군, 러시아군이 손을 잡고 계속 소탕전과 살육전을 벌이고 있는 것과는 다른 상생의 분위기다.

중동의 테러와 전쟁은 종교적인 갈등만이 아니라 미국과 서방국의 석유를 둘러싼 경제전쟁이며 러시아, 중국 등과의 패권전쟁의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한 국가실체가 없는 집단에 대한 기독교적 응징이라는 면도 있다.

부처님오신날은 어릴 때는 ‘초파일’(음력 4월 8일)로 불렸다. 이날은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근처 절에 가서 밥과 떡 등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어 동네잔치 분위기였다.

부모님들은 공휴일이 아닌 관계로 초파일 전후 일요일이나 방과 후 빨리 산에 있는 절에 올랐다. 물론 성탄절에도 성당과 교회에 가면 빵과 과자 등을 나누어 주어 어린이들은 신자가 아니어도 동네 친구들을 따라 함께 가기도 했다.

석탄일은 우리나라 외에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에서도 공휴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75년 공휴일로 지정됐다. 일본에서는 공휴일은 아니지만 양력 4월 8일, 음력 4월 8일, 5월 어린이날 등 다양한 날짜에 지낸다.

▲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진행된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에 참석한 각 당 대선후보들이 합장예불을 올리고 있다. 오른쪽부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뉴시스

불교의 연중행사 가운데 가장 큰 명절로 기념법회·연등놀이·관등놀이·방생·탑돌이 등 각종 기념행사가 열린다. 중국·일본·인도 등지에서도 연등놀이가 행해진다.

‘부처님오신날’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 대한불교 조계종이 지나치게 ‘민속화’된 불탄일에 대한 불교적 의미를 복원하고 한자어로 되어 있는 불탄일(佛誕日) 또는 석탄일(釋誕日)을 쉽게 풀이하여 만들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이 제일 크고 석가모니가 출가한 것을 기리는 '출가절',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어 도를 이룬 것을 기리는 '성도절', 석가모니가 80세에 세상을 떠난 날을 기념하는 '열반절' 등 4대 명절이 있다.

불교국인 스리랑카, 네팔 등지에서는 양력 5월 15일을 석가탄신일로 지내고 있다. 1956년 11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도대회에서 결정된 것이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우리와 홍콩, 싱가포르 등은 음력 4월 8일을 쓰고 있다.

유엔(국제연합·UN)에서도 1998년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도대회의 안건이 받아들여져, 양력 5월 중 보름달이 뜬 날을 석가탄신일로 정해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 염수정 추기경/뉴시스 자료사진

1996년(불기 2540년)부터 행해지는 석탄절 전주 토요일밤 동대문운동장에서 종로를 거쳐 조계종 본사까지의 제등 거리행진은 외국인들에게도 큰 볼거리이다. 불교문화마당, 어울림마당(연등법회), 대동(회향)한마당 등 행사가 추가되어 종합적인 축제가 됐다. 석탄절 오전 10시에 서울의 조계사에서 봉행된 부처님 오신 날 법요식에는 대선주자들이 참석했다.

조계종외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 불교종단의 전국 사찰들도 봉축법요식을 가졌다. 법요식은 법회 주요 의식(法會 主要 儀式)의 준말이다.

선거전에는 네거티브 공방을 벌이면서 서로 중상, 비방을 하지만 ‘야단법석(野壇法席)’에 나란히 서서 합장을 한 대선 주자들의 사진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종교적인 갈등이 비교적 적은 나라여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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